[청춘먹칠] 1986년 화성에 갇힌 한국사회 / 박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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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10:34 | 최종 업데이트 2019-10-04 11:03

MBC 라디오를 듣던 중 영화 <살인의 추억>의 OST가 흘러나왔다. 영화 OST 선곡은 흔한 일이지만 이 선곡의 이유는 흔하지 않았다. 장기 미제사건이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33년 만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지목됐다면서 <살인의 추억>의 OST를 튼다는 DJ의 말에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나 피해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을까 싶어서다. 영화 채널 OCN과 채널CGV는 <살인의 추억>을 ‘급’ 편성했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는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이춘재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실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동네 사람들에게서 직접 듣는 이춘재의 평판을 방송했다. 이춘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뉴스가 되고, 흥미가 되는 세상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동네 사람들에게서 직접 듣는 이춘재의 평판을 방송했다. (사진='그것이 알고 싶다' 영상 갈무리)

장기 미제사건이었던 것만큼 사회적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1986년 화성연쇄살인 1차 발생부터 10차(8차는 모방범죄)까지 이를 동안 용의자를 찾아내지 못했던 수사의 허점에 대한 지적은 찾아볼 수 없다. 피해자 신변의 보호, 사회 시스템 개선 등을 담은 기사나 프로그램을 담는 미디어 또한 없다. 대신 미디어는 쉬운 방법을 택한다. ‘범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단독’ 타이틀을 달아 방송하거나 신문에 싣는다. 범인 혹은 그의 가족이나 지인의 시각으로 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상관없다. 이 ‘정보’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처제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인가, ‘착한 심성’을 가진 그였다는 것인가. 잔인한 범죄현장의 공포심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함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반인륜적인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기사 클릭 수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사회적 관심이라는 핑계를 방패 삼아 이춘재의 모든 정보를 뉴스 소재로 여길 때, 변두리로 밀려나는 가치가 있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예의, 위로, 보호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1986년에 갇혀있다. 1986년이나 지금이나 피해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가 일어났다는 괴담은 반복된다(관련기사=‘비오는 날 빨간옷’ 괴담까지… “하루하루가 공포”(MBC, 19.09.19)). 범죄현장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한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려 피해자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장면이나 범인의 사람답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한 범행 수법을 그대로 옮겨 말한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19.09.28 방영분)

피해자와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를 먼저 보호하는 것보단 가해자와 그의 주변에서 얻은 가십거리에 ‘사회적’ 가치를 두고 있다. 그렇게 피해자와 유족들의 상처는 또 한 번 파헤쳐진다. 이제는 2019년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미디어는 크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연쇄살인범을 비범한 능력을 가진 ‘악마’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를 악마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할 때 범죄 예방을 위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둘째, 피해 여성들의 특성을 억지로 끼워 맞춰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로 돌리지 않는다. 범죄의 대상이 된 피해자들에게 원인은 없다. 원인은 범죄행위를 한 당사자에게서 찾아야 한다. 셋째,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범죄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흥밋거리로써 범죄 사건을 대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묘사에 집중할 때 사건의 본질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범죄 사건을 흥밋거리로 취급할 때 사람들은 범죄와 관련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습득’하게 된다.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고, 과거에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 2019년의 우리가 할 일이다. 지금의 미디어에는 필터링이 필요하다. 범죄 사건과는 관련 없는 동네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지 않고, 범죄행위의 원인과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는 용의자 가족의 판단을 제거하는 필터링 말이다. 20억분의 1g의 DNA를 분석하여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지목할 수 있었다. 범죄 사건에서 변두리로 밀려나는 피해자를 위한 1g의 공감과 위로 그리고 보호가 모인다면 고통 속에 있던 피해자들은 33년 만의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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