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① 다시 ‘먹고 사는 일’

100명 중 42명, 4.15 총선 주요 의제로 ‘먹고 사는 일’ 꼽아
영세 제조업 비중 높고, 자영업 많은 대구·경북에 소득주도성장은?

20:23

[편집자주] 뉴스민은 대구KBS 밭캐스트 제작팀과 지난 12월 안동, 포항, 구미 등 경북 3개 도시와 대구 곳곳을 다니며 주민을 만나 총선을 앞둔 민심을 들어봤다. 현장에서 만난 대구·경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전한다.

[시민 인터뷰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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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명이었다. 지난해 12월 13, 14, 16일 사흘 동안 경북 안동, 구미, 포항과 대구를 찾아 시민 100명을 만났다. 그중 42명이 다가오는 4.15 총선에서 중요한 의제로 ‘먹고 사는 일’을 꼽았다. ‘경제’, ‘민생’, ‘부동산’, ‘집값’, ‘취업난’, ‘일자리’ 등 중점 키워드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먹고 사는 문제로 귀결됐다.

100명 중 31명이 상인이어서 유독 먹고 사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경북은 2019년 3분기 기준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27.8%로 전국 17개 시·도 중 세 번째로 높다. 대구도 22.9%로 8번째로 높다. 광역시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대구·경북에서 일하는 사람 4명 중 1명은 자영업자라는 말이 된다. 상인을 많이 만났다고 해서 실제 대구·경북 여론보다 과대 대표 됐다고 볼 여지는 크지 않다.

신년을 맞아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지난해 12월 25일부터 29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방증한다. 한국지방신문협회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ARS 여론조사(유선 10%, 무선 90% RDD 방식, 성·연령·지역 비례 할당 무작위 추출)를 통해 4.15 총선 의제를 확인했다. 표본은 10,002명(응답률 4.6%)이고 표본오차는 ±0.98%p(95% 신뢰수준)였다. 대구·경북민은 1,014명이 참여했다.

여론조사에서는 현 정부 정책에 대한 긍·부정 평가도 진행됐는데, 대구·경북에서 가장 부정 평가가 높은 분야는 경제(57.2%)다. 전국적(49.9%)으로도 경제 분야에 대한 부정 평가가 가장 높은데, 7개로 나뉜 지역 권역 중에서도 대구·경북이 가장 높다. 이어서 부산·울산·경남에서 52.5%가 부정 평가 분야로 경제를 꼽았다.

자영업 비중 경북 27.8%, 대구 22.9%
“절단났다”는 상인들 볼멘소리 이유는?

“절단났다” 포항 죽도시장 안에서 5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문정근(67) 씨는 체감 경기를 그렇게 표현했다. 국가가 조사해서 발표하는 수치에서는 문 씨가 말하는 ‘절단’난 경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은 2010년 6.8%를 기록한 이후 2018년까지 4%를 넘긴 적이 없다. 올해에도 1분기 1.7%, 2분기 2%, 3분기 2%를 기록했다.

▲포항 죽도시장 상인 문정근 씨는 경기를 묻자 ‘절단났다’고 표현했다.

경북만 따로 보면 2017년 -1.2%, 2018년 -1.1%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긴 했다. 하지만 1인당 지역내총생산을 보면 전년대비 2017년엔 2.7% 늘고, 2018년엔 -0.9%로 조금 줄었다. 개인소득을 봐도 경북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2~6%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민간소비 영역도 마찬가지다. 대구도 큰 차이는 없다. 문 씨가 말하는 ‘절단’난 경기는 통계자료만으론 해석할 수 없는 ‘경험의 복합’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죽도시장에서 전집을 운영하는 최한민(33) 씨에게 힘든 경기는 손님들의 닫힌 지갑을 보며 체감된다. 그는 “시장에 있어 보면 다니시는 분들 지갑이 안 열려요. 한번 쓱 보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라고 말했다. 최근까지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 그는 “포스코가 살아야 포항 경제도 사는데 여전히 포스코는 힘들다고만 하고 있더라”며 지역에 자리한 대기업과 지역 경기를 연결해 해석했다.

안동 중앙시장에서 상회를 운영하는 우재경(65) 씨도 마찬가지다. 우 씨는 “작년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안 돼”라며 “나만 느끼는 게 아니고 우리 집에 물건 갔다 주는 사람들, 종합을 해봐도 어느 한구석에 장사가 된다는 데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장사만 50년째 하고 있다는 그는 연차적으로, 그리고 동료 상인들의 상황을 종합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금명선(67) 씨 역시 비슷한 이야길 했다. 금 씨는 자기 점포에 재료를 대는 김태수(68) 씨와 인터뷰를 지켜보곤 “저 아지매가 우리한테 재료를 대주는 분”이라며 “우리가 장사가 잘되어야 저 아지매도 재료를 많이 대주는데, 우리가 안 되니까 힘들다고 하지”라고 말했다. 금 씨는 전국 3대 시장이라는 서문시장 내 작은 매대에서 칼국수, 수제비를 빚어 판다.

금 씨에게 고객은 시장을 찾는 손님뿐 아니라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포함된다. 그는 “주변 상인 분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장사 잘되면 나와서 사 먹는데 장사가 안되니까 집에서 김치쪼가리 하고 도시락 싸 와서 먹는다 그러거든요”라고 덧붙였다. 그가 파는 손칼국수, 손수제비, 손칼제비, 잔치국수는 4,000원. 보리밥, 비빔국수, 찹쌀수제비, 떡국은 5,000원이다.

상인들 사이에서만 보이는 확증편향일 수도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길 하다 보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업화, 산업화된 구미와 대구 번화가에서 만난 직장인들마저 비슷한 이야길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구·경북 임금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란?
초년생에겐 도움, 내겐 도움 없다는 50대
자영업 하는 부모님 어려움 답답하다는 30대

대구 달서구에 사는 직장인 이칠호(52) 씨는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같은 경우에도 상가 매물이 많이 나와 있는 게 보이고, 입점이 안 된 걸 보면 많이 어렵다는 게 느껴지는 편”이라며 “저도 월급 가지고 살기 빠듯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바로 피부에 와 닿죠. 아이가 셋이다 보니 교육비부터 모든 지출이 월급으로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더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효과가 이 씨 같은 대구·경북 임금근로자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씨는 “최저임금은 앞으로도 조금씩 더 올라야 사회초년생 같은 분들도 안정적으로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리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서도 “저는 나이가 있으니까 최저임금에서 영향을 안 받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대구·경북에선 정부를 지지하더라도 소득주도성장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달성군에 사는 김장경(37) 씨가 그렇다. 김 씨는 “(선거를 통해) 뽑았던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며 자영업을 하고 있는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저희 부모님만 해도 자영업을 하시는데 제일 이해가 안 된 건 최저시급 인상”이라며 “저도 일하는 사람이어서 최저시급이 올라가는 게 좋지만, 돈을 주는 사람들의 경제가 기반 되어야 하는데, 시급은 올라가면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더 힘든 상황으로 악순환이 된다”고 말했다.

52시간 근로제 역시 그는 오빠를 보며 부작용을 느낀다. 그는 “저희 오빠도 일하는데 갑자기 근무시간을 단축시켜서 결국 실제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걸 보면 전혀 혜택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거든요”라고 말했고, 마찬가지로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표를 줬다는 서문시장 상인 장기수(67) 씨는 “사위가 구미에서 회사 다니는데 옛날엔 한 군데 하더니 지금은 두 군데, 세 군데 뛰거든. 옛날엔 보통 250만 원씩 가져가던 애들이 180만 원 밖에 못 가져간다고”라고 말했다.

2018년 기준으로 대구의 사업체 중 제조업 비중은 12.8%다. 경기(14.6%)와 경남(13.2%)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하지만 제조업 종사자 비중은 18.2%다. 17개 시·도 중 여덟 번째 수준이다. 제조업체 수가 많지만 고용인원이 적은 영세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대기업이 있는 울산이 제조업체 비중은 8.5%에 불과하지만 종사자 비중은 33.4%로 가장 높다는 게 이를 반증한다.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잔업을 통한 추가수당으로 임금을 벌충한다.

경북은 제조업체 비중은 12.6%로 대구보다 조금 낮지만, 종사자 비중은 28.7%로 대구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대기업이 일부 위치한 구미의 영향이지만 구미에서도 최근 대기업이 산업 재편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공장 절반을 경기도 파주로 옮긴 LG디스플레이는 2018년에는 희망 퇴직자를 1천여 명 가량 받았다. 이마저도 구미를 제외하면 임금근로자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같은 대구·경북 산업구조가 어쩌면 최저임금 인상이나 52시간 근로제의 부작용을 그대로 체감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체감된 부작용은 분명하게 정치 지향에서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39년 동안 포항에서 나고 자란 정민규 씨는 경제가 가장 큰 문제라면서 총선에서 후보 선택의 기준을 “빨간색(자유한국당)”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당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으냐는 물음에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안동의 우재경 씨도 마찬가지로 “황교안이 더 잘할 것 같다”고 했고, 대구의 장기수 씨는 “이번엔 다시 한국당을 찍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