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구 민주당 진단서 (1) 현실인식의 부재–비호감 민주당 /만월봉

12:33

[편집자 주=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대구에서 단 1석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지역주의’ 부활이 언급됐습니다. 뉴스민 독자 중 한 분이 대구 민주당에 대한 고민이 담긴 글을 보내왔습니다. 실명으로 글을 게재할 수 없어 필명으로 뉴스민에 3차례 연재합니다. 관련해 다른 의견이 있는 분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1. 시작하며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대구지역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김부겸이 이번엔 되겠나?”라는 걱정 어린 시선에서부터 “김부겸이 뭐 했노?”라는 근거 없는 분노에 이르기까지. 지역 분위기는 4년 동안 흘러왔던 역사의 격변만큼이나 크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즉, 20대 총선을 앞둔 지역 분위기는 김부겸에게 우호적이었던 반면, 21대 총선을 앞둔 지역 분위기는 김부겸에게 적대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김부겸 후보에게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야인 시절의 김부겸은 매일 지역 주민을 만날 수 있었지만, 국회의원·장관 김부겸은 매일 지역 주민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지역주민들은 그의 진정성과 인물론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강점(내부요인)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낙선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상당한 표 차로 낙선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김부겸의 낙선에는 그가 제어할 수 없는 외부요인이 너무나도 강력히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싶습니다.

▲김부겸과 주호영

바로 상대가 “주호영”이었기 때문입니다. 미래통합당이 대구지역 공천을 발표하던 날,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처음으로 김부겸이 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수성갑의 후보군은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정순천 수성갑 당협위원장, 정상환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정도였습니다. 비록 미통당 후보가 정권심판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싸우지만, 김부겸이라는 이름값 앞에서는 다소 무게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들 후보와 김부겸 후보가 인물론으로 붙으면 김부겸이 이기는 선거가 됩니다. 그는 대구에서 유이한 4선 의원이자, 현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 출신입니다.

그러나 주호영 의원이라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집니다. 적어도 주호영은 김부겸이라는 사람에게 경력이 뒤지지 않습니다. 4선 의원이자, MB정부에서는 특임장관을 역임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과반에 가까운 득표를 할 정도로 본인의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득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현재는 제1야당의 원내대표이자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연일 받고 있습니다.

주호영 의원은 김부겸의 인물론을 완벽히 봉쇄하는 동시에 정권심판론이라는 방패 뒤에 철저히 숨었습니다. 김부겸 후보 또한 방패를 깨고자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주호영 의원은 거론조차 될 수 없던 ‘대구 대통령론’과 김부겸이 가장 잘하는 ‘진정성, 노력, 땀’ 등을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대구 대통령론’은 반대편에게 호소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되지 못했고, ‘진정성, 노력, 땀’은 지지자들에게만 좋은 홍보수단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주호영 의원은 정권심판을 전면에 부각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했고,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지역의 아킬레스건을 계속해서 건드렸습니다.

그렇게 김부겸은 졌습니다. 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뽑지 않은 수성구민을 욕하고, 그가 속한 도시인 대구를 욕하곤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25:0이라는 이러한 비극이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잘못됐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단순히 25:0이라는 숫자가 ‘대구 사람들이 보수적이라서’라고 편하게 결론 짓지만, 사실 더 깊은 이유가 존재한다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글을 시작하며 김부겸이라는 사례를 통해 왜 대구 민주당의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부겸을 비롯해 홍의락, 김현권과 같은 아까운 인재들을 속수무책으로 잃지 않으려면 지역민들에게 최소한 “당이 파이다(‘별로다’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앞으로 선거에서 어떤 인물이 등장할 것인지, 어떤 구도로 치러지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김부겸이라는 튼튼한 배조차 이번처럼 큰 파도가 와서 덮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물론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김부겸이라는 배를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최선일까요? 민심의 파도가 더욱 매섭고 사나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부겸이라는 배는 괜찮을지 몰라도 그 옆에 함께 항해하던 뗏목과 통통배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때문에 배를 키우는 동시에 파도를 잠재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배를 키우고 파도를 잠재우기는커녕 선거철마다 뗏목만 몇 척 만들고, 파도가 거칠어서, 배를 마련할 시간이 없어서 등의 핑계를 앞세우는 것이 지금 대구 민주당의 현실입니다. 대구 민주당,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할까요. 그 고민을 다음과 같이 풀어내보고자 합니다.

대구 민주당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워 이야기할 것 같지만,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가 부족하다고 꼬집고 싶습니다.

1. 현실인식의 부재–비호감 민주당
2. 정책비전과 전략의 부재–무능력 민주당
3. 포용력의 부재–확증편향 민주당

그리고 앞으로 대구 민주당이 다음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전략을 취해야할지를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아직 2년이 남았습니다. 힘들지라도 충분한 시간입니다.

▲대구경북에서 출마하는 민주당 후보들이 ’20조 tk 뉴딜’ 정책을 공약으로 제안했다.

#2. 현실인식의 부재 – 비호감 민주당

갤럽에서 비정기적으로 조사하는 ‘정당 호감도’라는 수치가 있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시작은 이 통계자료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그림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은 2018년 8월 3주부터 2019년 10월 2주까지 대구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정당 호감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이후로도 증가했지만, 자한당에 대한 호감도는 정확히 반비례했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와 자한당에 대한 비호감도 또한 마찬가지로 반비례하는 관계를 보였습니다. 단언컨대 대구의 민심은 총선 직전까지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나아지지는 않았으리라 저는 감히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전국의 민심은 어떻게 측정되었을까요? 이 그림은 2018년 8월 3주부터 2019년 10월 2주까지 전국의 민주당과 자한당 정당 호감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자한당에 대한 호감-비호감도는 수렴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와 비호감도는 작년 3월부터 40%대에서 꾸준한 보합세를 보였습니다. 오히려 10월 2주차 민주당의 호감-비호감도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말미암은 일시적 하락일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보다 자한당에 대한 비호감이 더욱 컸다는 것은 곧 민주당이 전국적인 판세에서 근소하게나마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물론 정당호감도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당지지도라는 수치 또한 존재하며, ‘어느 정당에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보다 냉정한 질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당지지도 통계를 저는 크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구에서 민주당이 미통당에 비해 수차례 정당지지도를 이겼다고 해서 민주당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을까?’ 이 질문에 저는 1초도 망설임 없이 NO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또한 그 질문에 NO라고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당지지도 수치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정당지지도 통계는 여러 정당 중 하나만을 고르는 선택을 강요합니다. 정당에 대한 일체감이 완고한 지지자라면 망설임 없이 자신의 지지정당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수의 유권자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을 당장 선택하는 일을 크게 내켜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선거 전후 상황이 아닌 정당지지도 통계는 정당 일체감이 높은 사람이 여론조사에 응답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통계업체는 수치와 실제 유권자의 선택 간의 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집단의 표본이 한정적이기에 오차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오히려 유권자의 보다 솔직한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당을 좋아(또는 싫어)하십니까?’라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정당 호감도에서 나타나는 유권자의 심리는 대구 민주당이 얼마나 불리한 형국에서 싸우는 것이었던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적어도 대구에서 미통당은 호감입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민주당은 비호감입니다. 적어도 대구에서 자한당은 민주당의 확실한 대안이 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민주당이 싫어도 자한당을 찍기 주저하지만, 대구의 유권자는 민주당이 싫으면 자한당을 망설임 없이 찍을 수 있습니다.

즉. 대구에서 민주당 이름을 걸고 정치한다는 것은 저 높은 비호감의 벽을 뚫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이것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비호감을 줄이고 호감을 늘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구 민주당이 해온 방법은 비호감을 줄이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만족과 자기위로의 향연일 뿐이었다는 것을 저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민주당데이’라는 좋은 예시가 있습니다. 민주당 대구시당은 작년부터 동성로 한복판에서 ‘민주당e데이’라는 행사를 열어 당세를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사가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였는지는 큰 의문이 듭니다. 민주당 데이를 할 때마다 지역 당원과 기초의원들이 (자의든 타의든) 동원됐습니다. 당 소속 국회의원이 와서 연설하고, 민주당 사람들끼리 모여서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김부겸 의원과 홍익표 의원이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민주당데이 행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내부자의 입장에서는 지역에서 억눌리던 민주당이 이 정도 행사를 개최할 수 있음을 자랑으로 여길지 몰라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비호감’인 민주당이 시내에서 자기들끼리 떠드는 정도로 치부하고 말 것입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태극기 시위와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대구 민주당은 이러한 장외투쟁에 당의 역량을 쏟아부은 나머지 다른 할 일을 놓치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인식조차 제대로 되지 않지만,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그릇된 현실인식과 함께 대구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것이 바로 ‘무능’이라는 결정적 문제입니다. 합리적 선택 이론에 따르면 유권자는 철저히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투표를 합니다. 유권자는 상대방이 비호감일지라도 본인의 이익이 극대화된다면, 본인의 선호와 배치하는 선택을 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대구 민주당은 그렇지 않아도 비호감인데다 유권자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주는 노력이 상당 부분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대구 민주당, 무엇이 무능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