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 라울은 왜 인도로 돌아갔을까

이주노동자, 코로나19 보다 공포에 먼저 감염되다

15:11

[편집자 주]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내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1차 대유행이 할퀴고 지나간 대구는 극심한 감염병으로 직접적인 피해만큼 사회과 품은 또 다른 아픔도 명징하게 드러냈다. <뉴스민>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기획을 통해 이주민과 난민, 학생과 교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통해 감염병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짚고, 감염병에 대응하는 공공의료체계의 현실도 짚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2) 우디트는 ‘성실 근로자’로 재입국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3) 훌란은 3월에 넷째를 낳았고, 열흘 만에 참외를 땄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4) 감염병의 시대, 이주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5) ‘특수근로형태근로종사자’로 살아남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6) 이름만큼 어려운 ‘특고 지원금’ 받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7) 나만 없는 고용보험

▲오전 8시 출근시간대 성서공단의 모습

프롤로그 : 접경지대, 성서공단

오전 7시, 평소대로라면 성서공단은 공장이 하나둘 잠이 깨는 시간이다. 가동을 준비하는 공장의 숨소리가 낮게 깔린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시간, 수탉이 울면서 시작하는 성서공단의 풍경은 도시인에게 생경하다. 길을 오가는 사람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인도네시아, 네팔, 파키스탄, 베트남···동남아시아에서 넘어온 이주노동자들이 거리를 메운다. 이들은 대체로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출근한다. 승용차를 타거나 지하철 성서공단역에서 내려 걷는 한국인 노동자와 대비된다. 이주노동자들은 공단 인근이나 계명대 인근에 밀집해 산다. 공장까지 걷기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애매한 거리다.

오후 6시부터는 한국인 노동자의 퇴근 모습이 보인다. 저녁 8시를 넘기면 잔업을 끝낸 이주노동자의 퇴근 모습도 보인다.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는 섬유업체의 이주노동자 퇴근이 자동차 부품공장 이주노동자 퇴근 시간보다 좀 더 늦다. 이들은 퇴근길에 와룡시장에 들러 아시아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거나 동남아시아 음식점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성서공단과 계명대학교 원룸촌 사이에 있는 와룡시장은 이주노동자로 붐빈다. 이주노동자로 가득 찬 와룡시장 식당을 처음 보는 정주민1은 왠지 모를 거부감(히스테리)을 느낀다. 공단 주변 곳곳에 마련된 이주노동자의 종교시설은 종종 혐오로 인한 경찰 신고가 접수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 이곳을 이주노동자의 게토라고 할 수는 없다. 이주노동자는 게토처럼 정주민과 단절된 곳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가지 않는다. 이들은 정주민 사회에도 어느 정도 융합됐고 또 어느 정도는 구별되는, 긴장과 공생 속에서 점점 경계선을 허물어가는 접경지대2에 살고 있다.

▲성서공단 인근 와룡시장. 이주노동자가 주된 손님이다.

코로나19는 쓰나미처럼 대구, 그리고 성서공단을 휩쓸었다. 그 자리에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주노동자와 정주민의 접경지대가 있다. 접경지대에는 전염병의 폭발적인 지역감염 확산이라는 미증유의 사건 속에 공포에 빠진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는 치솟는 중국 우한의 사망자 수, 미디어에 비치는 이미지, ‘읽을 수 없는’ 안전 안내 문자의 경보음으로 공포를 체감했다. 감염 공포 때문에 체불임금을 정산받지도, 집기를 처분하지도 않은 채 출신국으로 돌아갔다. 귀향 행렬이 이어지는데 비행기는 뜨지 않았다. 비행기가 뜨지 않자 출입국 일시보호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추방하지 못해 가득 채워졌다. 단속에 걸린 이주노동자는 오랜 한국 생활을 정리할 틈도 없이 가족을 남기고 한순간에 증발했으나 보호소에 고였다.

경기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이주노동자 해고가 시작된다. 맡은 일이 힘들고, 어렵고, 위험해서 대체가 어려운 이주노동자는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불합리한 처우에 이주노동자가 저항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장이 일부러 임금을 1~2달 체불하는 일도 흔하고, 수틀리면 미등록 노동자를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해고된 이주노동자는 직장이 없어 졸지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해고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장이 멈추거나 가동률이 떨어져 생계곤란을 겪는다. 이들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공장에 일이 없는 날에는 인근한 경북의 농장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했다. 물론, 고용허가제 위반이다. 제도와 현실은 들어맞지 않는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정심시간, 길게 늘어선 줄은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정심시간,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공단에 마련된 종교시설에서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불안정 노동에 노출된 이주노동자에게는 사회 안전망도 작동하지 않는다. 공적 마스크 보급을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운 이주노동자는 답답한 산업용 방진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기숙사 밖을 나서지 않았다. 정주민도 구하기 어려운 KF마스크는 만근에 잔업, 주말 출근이 기본인 이주노동자가 구할 수는 없다. 공적 마스크 5부제도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거나 미등록인 이주노동자에겐 별 소용이 없다. 감염이 두려운 이주노동자는 때 묻은 일회용 마스크와 장갑을 두 겹씩 겹쳐 썼다. 이들은 코로나19가 두렵고,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것이 두렵다. 미등록 신분을 들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입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재난지원금 역시 꿈꿀 수 없다.

의료 시스템이 과부화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은 어림도 없다. 저소득층 외국인 주민 무료의료지원기관인 대구의료원이 이주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의료기관이었으나,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일정 기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출산을 앞두거나 다친 이주노동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민간 병원에서 해결해야 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가 청구됐다.

이주노동자에게 느슨한 사회 안전망을 메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민간의 몫이 됐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미등록으로 전락할 위기의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나오면서 지낼 곳을 잃은 이주노동자,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거나 긴급 의료지원이 필요한 이주노동자에게 정부나 지방정부의 행정력은 미치지 않았고 이주노동조합, 교민회, 여력 있는 이주민 개인이 나서 문제를 풀어냈다.

2020년 9월, 코로나19 확산이 소강상태였던 대구에서도 다시 수도권발 지역감염이 확산하는 추세다. 대구 신규 감염자가 하루 수백 명씩 나오던 2, 3월보다는 안정됐지만, 경기 위축으로 가동을 중단하는 공장도 늘고 위기 상황을 버텨내던 이주노동자도 한계를 향해 가고 있다. 위기를 겪는 이들의 사정은 절박하다. 이들은 자신의 생계뿐만 아니라 고향 일족의 생계라는 이중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이들의 존재를 통해 한반도가 중국으로, 몽골로, 동남아시아로 연결된다.

▲성서공단. 달구벌대로를 경계로 아래쪽 성서공단과 위쪽 주거단지로 구분된다. (구글어스 갈무리 화면)

***

라울은 왜 인도로 돌아갔을까.

3월 3일, 코로나19 전국 확진자 4,812명(사망 28명), 대구 확진자 3,601명(사망 22명).

희뿌연 하늘 아래 듬성듬성 줄지은 야자나무 사이로 건조한 바람이 불어온다. 인도 펀자브 주(州) 출신 라울 싱(가명, 31)은 한국에서의 도피 생활 3년 만인 3월 3일 인도로 되돌아왔다. 뉴델리 공항에 내려 고향 땅을 바라보는 싱과 아내 타냐 카우르(가명, 31), 딸(5)의 표정에는 고향을 찾은 이의 그리움이 묻어나지 않는다. 싱과 카우르가 가진 것은 가방에 옷가지 몇 벌과 현금 4,000달러가 전부였다. 이것이 3년간 한국 생활로 남긴 것이다. 나머지는 대구에 있는 셋방에 모두 두고 왔다. 오토바이, 생활 집기, 셋방 보증금 200만 원마저 챙길 새가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내에 대한 명예살인 시도로 인도에서 도망쳤지만, 2월 대구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포도 그 못지않았다.

대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하루 100명 단위로 발생하자 라울은 패닉에 빠졌다. 코로나19 보다 ‘우한 폐렴’이라는 말이 더 쓰이던 시기. 라울에게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대구는 우한과 같게 느껴졌다. 주변과 교류 없이 살던 라울은 대구 상황을 침착하게 살펴볼 수 없었다. 일을 마치고 와서 밤마다 휴대전화로 대구 상황을 다룬 기사를 검색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확인했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영문 기사를 검색했지만 자세한 소식은 없었다. 다만 감염이 치솟고, 누군가 죽어 나간다는 내용이 많았다. 영어가 지원되는 국내 긴급재난상황 안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으나 두려움을 더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곳에는 코로나19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가 있지 않았고 확진자가 방문한 장소를 경고하는 단편적인 정보만 있었다. 거리는 텅 비었고, 라울은 방안에 고립됐다.

불안에 떨다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며, 라울은 결국 다시 인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2월 25일, 몽골인이 코로나19로 한국에서 사망했다는 뉴스와 대구 봉쇄를 검토한다는 가짜뉴스가 결정적이었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의 건강도 보살펴줄 것 같지 않았다. 여태껏 한국에서 라울은 적법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불청객일 뿐이었다. 항공편을 검색해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했다. 난민 인정을 위한 소송이 법원에서 진행 중이고 중도에 출국한다면 불리할 것이 뻔했지만, 상관없었다.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고, 그 무엇보다 딸의 안전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딸과 아내의 안전을 위해 한국에 온 것인데 코로나19는 그들의 안전을 위협했다.

뉴델리에서 방을 하나 빌렸다. 주변과 교류할 생각은 없었다. 과거 아내의 가족이 총기를 갖고 고향 펀자브에서 뉴델리까지 찾아온 적 있기 때문이다. 계획도 없이 귀향했지만 가능하다면 캐나다 시크교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옮겨가길 원했다. 3월 22일, 인도 정부는 인도 전역에 강력한 봉쇄 정책을 시행하면서 모든 것이 다시 뒤틀렸다. 통행금지령이 떨어졌고, 라울 가족은 셋방 바깥을 나설 수 없었다. 음식은 정부가 배급해줬지만, 통행금지령을 어기고 나간 사람은 경찰에게 매질을 당했다. 사람 잡는 집게나 코로나 헬멧도 등장했다. 비로소 라울은 후회했다. 잠시 잊고 살았지만, 인도는 이런 곳이다. 조금만 더 차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면···.

석 달을 꼬박 방 안에 갇혀 살았다. 외출은 특별한 경우에만 할 수 있어서, 온라인으로 한시적인 허가권을 얻는 경우에나 가능했다. 학교는커녕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딸은 자꾸 채근했다. 매일같이 한국에 다시 돌아가자고 울었다. 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지낸 딸은 한국말을 쓰고 한국 음식을 먹는다. 그러는 동안 한국에서는 알지 못했던 코로나19 정보도 얻었다. 우한 사례는 특별한 것이고, 언론에서 느낀 공포는 과장된 것이었으며, 위생과 치료를 엄격히 한다면 설령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사망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깨달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4,000달러도 바닥을 보였다. 일가족이 체류하는데 월 800달러 정도가 들었는데 일을 할 수 없으니 수입이 없었다.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해봤지만, 대사관은 한국인을 보살피는데도 여력이 충분치 않았다.

▲라울의 딸이 대구에 마련된 셋방에서 쉬고 있다.

6월 6일, 코로나19 전국 확진자 11,719명(사망 273명), 대구 확진자 6,886명(사망 188명).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매일 뒤지다 한국행 오픈티켓을 발견했다. 즉시 3매를 예매했고, 성공했다. 6월 6일, 가벼워진 가방을 메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국외 입국자 전용 KTX를 타고 대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았다. 대구역에서는 국외 입국자 전용 택시로 예전에 살던 셋방까지 이동했다. 보증금은 아직 남아 있었고, 대문 앞 오토바이도 누가 훔쳐 가지 않았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집주인은 3개월의 여정을 특별히 캐묻지 않았다.

법무부의 취업 허가도 아직 유효했다. 라울은 서둘러 성서공단의 한 섬유공장에 취직했다. 노동집약 산업인 섬유산업은 임금 상승과 함께 대구를 떠나 중국으로 갔고, 다시 베트남으로, 인도로 향했지만, 인도 사람 라울은 산업의 흐름을 거슬러 대구에 왔다. 섬유산업의 원시림.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대구 섬유산업은 언제나 위태했지만, 코로나19는 산업 또한 위협했다. 공장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했다. 월급은 근 100만 원. 하지만 라울은 이 모든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예전에 일하던 공장에서 두 달 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집단 정리해고를 당한 적 있다. 다른 공장에서는 근로기준법을 어기고 월급을 다음 달 말에 지급했다. 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이 없어 조그만 치료에도 병원비가 과도하게 청구됐다. 한국에 산다고 해서 특별히 장래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괜찮았다. 딸과 아내가 위험하지만 않으면 됐다. 라울은 벽에 걸어둔 카라3를 끼고 방 한켠에 마련해 둔 기도소 앞에 섰다. 거기서 라울은 가족의 안전을 빈다. 한국에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빈다.

▲방 한켠에 마련해 둔 기도소 앞에서 라울은 가족의 안전을 빈다. 한국에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빈다.

이주노동자, 코로나19 보다 공포에 먼저 감염되다

대구 이주노동자는 공포에 먼저 집단감염 됐다. 옷가지만 챙겨 대구를 떠난 라울의 사례처럼 급히 대구를 떠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던 2~3월, 다수 이주노동자의 한국 탈출이 확인됐다. 법무부가 2019년 12월부터 6월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진 신고 접수를 받은 결과, 신고자와 출국자가 2~3월에 집중됐다.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실시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관리 정책으로, 자진신고자에게는 단기 방문 비자(C-3)를 통한 재방문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전국적으로 12월 5,000여명, 1월 6,000여 명이던 신고자는 2월과 3월 각각 8,000여 명, 1만 3,000여 명으로 치솟았다. 앞선 두 달보다 배 가량 더 많은 기록이다. 급증한 자진출국 신고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포 때문으로 해석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별다른 사정이 없다면 한국에서 더 오래 체류하려 하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2019년 12월부터 6월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진 신고 접수를 받은 결과, 신고자와 출국자가 2~3월에 집중됐다.

이주노동자 근무 사업장이 밀집한 성서공단에서도 대구 코로나19 확산 여파가 확인됐다. 성서공단에서 대구경북지역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쟁취를 위해 활동하는 성서공단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1, 2월 체불임금·퇴직금 상담 건수와 무료진료소 이용 건수가 급증했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체불임금·퇴직금 등 노무 상담 건수는 연간 적게는 170여 회에서 많게는 340여 회까지 확인된다. 2020년은 1월 한 달에만 142건을 상담했다. 142건 중 퇴직금 관련 문의가 55회, 체불임금 관련 상담은 13회로 나타났다. 성서공단노조는 이주노동자가 코로나19 확산 공포로 귀향 준비를 서두르면서 퇴직금과 체불임금을 정산하려 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주노동자에게 퇴직금 정산이란 출생국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다.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에 따라 이주노동자는 출국해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으며, 출국하지 않고 받을 방법은 죽거나 국내에서 체류자격이 변동됐을 경우뿐이다.

이들은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탓에 공포를 느꼈다. 지난 3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성서공단노조가 손소독제와 마스크4를 나눠주던 날 <뉴스민>은 근 한 달여 만에 공장 기숙사에서 외출한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방글라데시 출신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업체 사장이 기숙사를 나가면 코로나19에 걸릴 것이기 때문에 외출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알렸다. 이 사장은 기숙사에 있는지 CCTV를 통해 두 시간마다 확인할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성서공단노조는 경북 고령 등 대구 인근 도시를 순회하며 고립된 이주노동자에게 마스크를 나눠주며 외출하지 못해 마스크를 구할 엄두도 못 낸 이주노동자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그들 중에는 기숙사 안에서도 작업용 마스크를 장시간 착용해 얼굴에 자국이 깊게 패인 이도 있었다.

▲2020년 3월 8일 성서공단노조 사무실을 방문한 귀화 이주노동자 김상우 씨는 오랫동안 기숙사를 나오지 않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를 데리고 성서공단노조에 왔다.

법무부는 외국인종합안내센터(1345)를 통해 예방 수칙 등 정보를 안내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정작 이 안내 서비스 자체를 알지 못했다. 2월 코로나19 확산 시기 대구시는 한국어로 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현황을 안내했지만, 외국어로 안내하지 않았다. 구·군에 설치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예방 수칙과 대응 요령을 안내하도록 하거나, 대구시 공식 영문 홈페이지에도 안내문을 올리는 것에 그쳤다. 2월 19일 청도대남병원에서 국내 첫 코로나19 감염자 사망 사례가 발생했고 이후 사망 사례가 속출했다. 정주민은 사망자가 대체로 고령의 기저질환자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알 수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는 감염자 사망과 관련한 뉴스를 차분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심각한 정보 부족은 시간이 지나며 차츰 완화됐다. 그 과정에는 성서공단노조 같은 단체나 교민회, 각 나라별 커뮤니티에서 한국어에 익숙하고 정보에 밝은 개인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 문제는 시작에 불과했다. 인도에 돌아가 고초를 겪고 다시 대구로 돌아온 라울. 그는 대구 성서공단 섬유공장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됐다. 공장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이주노동자 앞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떠올랐다. (계속)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
  1. 본 기사에서는 이주민·이주노동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정주민·정주노동자라고 쓴다.
  2. 본 기사에서 쓰는 ‘접경지대’는 인류학자 레나토 로살도가 개념화한 단어를 차용한 것이다. 그의 저서 <문화와 진리>에서 로살도는 개별 문화는 문화마다 독특한 문화적 유형을 가진다는 식의 한 문화를 동일화해서 이해하는 고전적 시각은 한 문화 안의 다양한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같은 문화에도 형성된 인종, 종족, 계급, 성적 지향 등 동일화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접경지대’란 이러한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3. 시크교인의 쇠팔찌
  4. 마스크 부족 사태로 3월 9일부터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됐지만,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마스크를 자력으로 구할 수 없었다. 당시 외국인은 농협이나 약국에서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살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가 농협이나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기가 쉽지 않았다. 공장 일과가 끝나기 전에 마스크는 다 떨어진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구매 자체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