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구 보고서] (7) 나만 없는 고용보험

13년을 일한 금희 씨도,
15년을 일한 진희 씨도,
10년을 일한 창현 씨도,
7년을 일한 정연 씨도
당장 일자리를 잃으면 기댈 곳이 없다.

15:53

[편집자 주]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내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1차 대유행이 할퀴고 지나간 대구는 극심한 감염병으로 직접적인 피해만큼 사회과 품은 또 다른 아픔도 명징하게 드러냈다. <뉴스민>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기획을 통해 이주민과 난민, 학생과 교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통해 감염병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짚고, 감염병에 대응하는 공공의료체계의 현실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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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정부는 제4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특수·프리랜서 등 고용취약계층에 50만~150만 원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영세 자영업자, 특고·프리랜서, 무급휴직자를 지원하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이 예상보다 늘어나자 4,000억을 증액했다. 전체 신청 176만 건 중 59만 건(33.5%)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특고·프리랜서 노동자다.

대구시 특고·프리랜서 지원 사업에는 모두 3만 1,233명이 지원했고, 2만 9,124명이 지원금을 받았다. 총 지급액은 135억 6,000여만 원, 1인당 평균 46만 5,000원 꼴로 지급됐다. 방과 후 학교 강사 등 교육 관련 강사(27%), 보험설계사(22%), 학습지교사(6%), 스포츠강사(5%), 대리운전기사(4%) 순으로 집계됐다. 산후도우미, 이·미용사, 퀵서비스, 방문 판매 등 기타 분류가 31%로 가장 많았다. 지급 대상에서 탈락한 2,120명 중 절반가량인 1,018명은 고용보험 가입이 원인이다. 정연 씨처럼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이들이다.

기타 분류 : 장례도우미, 웹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채권 추심사, 딜러, 퀵 서비스, 학원 차량 운전사, 예체능 강사, 바둑 강사, 산후도우미, 부동산 관련 업종, 이·미용사, 도배사, 리서치 조사원, 전화 상담사, 바리스타, 운동선수, 목욕관리사, 작가, 웨딩 업종, 통역사, 성악가 등 예술인, 방문 판매원, 매장 판매원, 문화해설사, 행사 안내 도우미, 호텔 등 안내 데스크, 매장 관리자, 주차 요원, 전자제품 수리 기사, 쇼호스트, 기자 등

정연 씨는 고용보험이 못마땅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입된 고용보험 때문에 지원금을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반대로 금희 씨는 고용보험이 없어서 10년을 일해도 아무런 사회보장을 못 받는다 걸 알고 있었다. 일한만큼 안정적으로 고용보험을 가입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1987년이었다. 대학생이던 금희 씨는 맹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비 200만 원, 당시 한 한기 등록금이 69만 원이었다. 금희 씨는 “그때 우리 아버지가 자영업자라서 의료보험이 없었어요. 그 기억이 생생해요”라고 말했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를 시작으로 한 의료보험은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됐다.

▲학습지 교사 이금희 씨

“전 국민 고용보험 얘기가 나왔을 때 ‘이거다!’ 생각했어요. 요즘은 의료보험이 다 되잖아요. 전 국민 의료보험도 된 지 얼마 안 돼요. 물론 저는 지역가입자로 더 많이 내지만 그 혜택을 받잖아요. 만약 제가 일하다가 코로나 걸려서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전  국민이 일자리가 줄어들고 비정규직 일자리만 자꾸 생기는 상황에서 그냥 밖으로 내던져지면 굶어 죽는 거예요” – 이금희

우리는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이 대표적인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라고 배운다. 고용보험은 실직 전 180일 이상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실업급여를 제공한다. 일정 기간 급여를 지급해 실업으로 인한 생계 불안을 완화하고, 재취업을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 대표적으로 구직급여, 취업촉진수당 등이다.

하지만 13년을 일한 금희 씨도, 15년을 일한 진희 씨도, 10년을 일한 창현 씨도, 7년을 일한 정연 씨도 당장 일자리를 잃으면 기댈 곳이 없다. 고용보험이 보장하는 출산전후 휴가와 휴가급여, 육아휴직도 없다. 퇴직금도 없고, 사용주가 부담하는 산재보험도 본인이 개별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노동자인 듯 노동자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기 때문이다.

“저희는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일이 없잖아요. 일이 없어졌으니까 실업인데, 우리는 실업이 아니에요. 좋게 말해 프리랜서고 특고지 미화시키는 말이죠. 우리는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우리가 만약 고용보험을 들었다면 지금 실업급여라도 받았을 거 아니에요. 밖에 나와서 기자회견하고 생계보장해달라고 할 필요도 없었지 않을까요. 저희가 고용보험에 가입 못 하는 직군인지 처음 알았어요, 솔직히. 열심히 일한 만큼 월급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태가 되고 깨달은 거죠. 지금이라도 우리도 고용보험에 가입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노동자로 인정받느냐 마느냐 같아요, 이게.” - 김진희

진희 씨는 정연 씨와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데도 하루짜리 고용보험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고용노동부 지원에서 탈락했다. 고용보험에 180일 이상 가입해야 보장을 받을 수 있는데 고용노동부가 왜 ‘고용보험에 10일 이상 가입’으로는 제외 기준을 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방과 후 학교 강사 김진희 씨

“요즘 회사원 아니면,직업을 하나만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우리 선생님들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일 하는데도, 고용보험이 있으면 특고 지원금을 못 받았어요. 방과 후 강사 일하고 다른데서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한쪽 일이 무너지면 이것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봐요. 그 일을 다 해야 생계가 가능한 거잖아요. 그런 부분이 제도화로 보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용보험이 지금의 제도 모양이랑 좀 다르게 가야 안 되겠나 싶어요” – 김진희

지난 5월 국회는 예술인을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고용보험법 일부개정안을 통과했다. 당시 고용노동부 브리핑에 따르면, 특고·프리랜서, 소규모 사업장의 임시·일용 노동자, 경력단절 여성 등 전체 취업자 2,656만 명 중 절반이 고용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뒤이어 특수고용노동자를 고용보험에 당연 가입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지난 9월 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구체적인 특수고용노동자 적용 대상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개정된 고용보험법에 적용되는 예술인과 특고노동자의 실업급여 요건은 기존 노동자보다 제한적이다. 비자발적 이직이라는 사유는 같지만 기존 노동자는 이직 전 18개월 중 피보험 기간이 180일 이상인데 비해 예술인은 이직 전 24개월 중 피보험 9개월 이상, 특고노동자는 이직 전 24개월 중 피보험 12개월 이상을 가입해야 한다. 출산전후급여도 지급되는데 구체적인 지급 요건과 수준은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전 국민이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 3개월 남았다. 정의당은 정부의 고용보험 개정안이 ‘반국민 고용보험’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은 지난 9일 (초)단시간 임금노동자, 특수고용형태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모두 가입 대상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근로계약, 용역계약 등 형식이나 명칭과 상관없이 계약 관계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노무제공자를 모두 적용하자는 거다.

정부안에 따른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되는 특고노동자 직군은 현재 산재보험 적용 직종과 형평성을 맞추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특고노동자는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등 14개 직종뿐이다. 대구시 특고·프리랜서 지원금을 받은 이들 중 기타로 분류된 직종이 가장 많았던 것을 보면, 이번 개정안으로 고용보험을 적용받는 특고노동자는 아주 일부다.

▲지난 6월 22일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대구 발안위원회’를 발족 기자회견

금희, 진희, 창현 씨는 진보당과 함께 직접 ‘전 국민 고용보험’ 입법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6월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대구 발안위원회’를 발족했다.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무급가족종사자도 포함했다.

이들은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청원 등록 후 100명이 찬성하고, 요건 심사 후 청원이 공개되면 30일 이내에 10만 명이 동의하면 관련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지금은 정부가 예산을 풀어서 일시적으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잖아요. 내년에도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다면 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이 올 거 같아요. 대량 실업, 정리해고 이런 게 횡행해지지 않겠나. 회사나 직장에서 내쫓기는 분들이 진입 장벽이 낮은 대리운전, 택배 같은 쪽으로 흡수될 가능성도 많아요. 구직 경쟁이 심해지면 우리 기사들도 어느 순간 실업이 내몰리겠죠. 당장은 몰라도 1~2년 뒤에 고용보험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올 거 같아요” – 황창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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