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진실이란 무엇인가?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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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국민 작가 ‘장 폴 뒤부아’의 장편 소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가 지난 9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그의 소설은 지난해 아멜리 노통브(현대 프랑스 문학에 커다한 반향을 일으킨 소설가)를 제치고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는 않는다.’ 소설의 제목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편견과 차별, 혐오로 획일화된 사고방식 속에서 개인의 존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는 취지다. 주인공 폴 한센은 뒤틀린 세상에 맞서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해나간다. 우리는 어떤가. 어떤 게 진실이고, 무엇이 옳은지 알기보다 얕은 경험을 맹신해 가장 정확한 진리로 여기지 않는가.

여덟 살 지능의 30대 청년 윤석구(김대명)는 열네 살 여자아이 장은지(전채은)를 성폭행하려다 미수로 그친다. 독립·예술영화 <돌멩이> 속 편견과 오해로 빚어진 사건이다. 사건의 목격자는 청소년쉼터를 운영하는 소장 김 선생(송윤아)이다. 그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쉼터에 입소한 은지가 밤늦게까지 귀소하지 않자, 그 아이가 자주 어울려 노는 석구의 정미소를 찾는다. 방 안에서는 기절한 은지와 벗겨진 옷가지가 보이고, 석구의 손이 은지의 몸에 닿아 있다.

단편적 사실은 석구를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아간다. 범죄를 의심할만한 사실이 제기되면 무죄를 입증할 만한 사실적 논거로 반박하는 게 정석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그는 반론이나 해명을 하지 못한다. 오직 “은… 은지… 아파요”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김 선생이 목도한 장면은 단편적 사실이다. 진실은 편견과 오해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진실에 닿으려면 최대한 많은 사실 조각을 모아야 한다. 이를 토대로 수많은 주장과 논증이 오가고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지고 나서야 실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석구와 은지를 향한 시선은 편견과 오해로 물들어 있다.

석구는 농촌마을에서 혼자 정미소를 운영한다. 아침이 되면 카세트를 틀고 모자를 눌러 쓴다. 밥을 챙겨 먹고 계란을 챙겨 이웃들에 나눠준다. 마트에서 고기 시식을 하고 동네 순찰을 돈다. 마지막으로 저수지에서 돌멩이로 물수제비를 뜨면 한가로운 하루가 저문다. 몸은 어른이지만 지능은 여덟 살에 불과한 석구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호의로 포장된 동정을 베푼다. 석구의 동갑내기 친구들은 노래방에 석구를 데려가 여성 도우미 옆에 앉혀놓고 짓궂은 장난을 친다. 몸의 변화를 눈치챈 석구는 당황하며 자리를 뛰쳐나간다. 그런 석구는 성당 노 신부(김의성)의 돌봄을 받는다. 노 신부는 부모를 일찍 여읜 석구를 살뜰히 보살핀다. 노 신부를 만날 때면 석구는 그에게 매미처럼 매달려 의지한다.

어느 날 연못 위 물결처럼 잔잔한 석구의 삶에 파장이 인다. 석구는 죽은 아빠를 찾으러 마을로 온 가출소녀 은지와 우연한 계기로 친해진다. 은지는 죽은 아빠가 살아있다고 여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남은 트라우마로 보인다. 가출의 실상은 엄마와 새 아빠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쉼터 직원은 마을잔치에서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은지가 몰래 마을주민들의 지갑을 훔쳤을 거라 의심한다. 가출청소년에 대한 흔한 의심이다.

편견과 오해의 대상인 석구와 은지는 ‘친구’가 된다. 마트에서 같이 고기 시식을 하고 동네 순찰도 함께 돈다. 석구는 혼자서 한가로운 일상을 보낼 때도 행복했지만 이성 친구가 생긴 뒤로는 하루하루가 새롭다. 하지만 김 선생과 동갑내기 친구들, 마트 고기 시식 코너 직원까지 주변 사람들은 둘의 우정을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특히 김 선생은 석구가 은지에게 몹쓸 짓을 할 것이라고 속단한다. 노파심에 노 신부를 찾아가 걱정을 털어놓는다. 노 신부는 “석구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은지가 석구에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어느 날 밤 석구의 정미소에서 은지는 감전돼 쓰러진다. 은지를 발견한 석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 후 석구는 마을의 모두로부터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린다. 진실은 따로 있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석구와 은지를 향한 편견과 오해 때문이다. 석구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노 신부는 석구를 도우려고 하지만, 그의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는 않는다. 석구의 범죄를 인정하고 그의 선처를 종용한다. 아무도 석구를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범죄자가 된다. 평화롭던 일상에 풍랑이 몰아친다.

석구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마다 파렴치한 그를 마을에서 쫓아내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나부낀다. 석구를 위한 탄원서를 써달라는 노 신부의 부탁에 동갑내기 친구들은 등을 돌린다. 항상 석구에게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네던 마트 고기 시식 코너 직원은 매몰차게 그를 내친다. 매일 석구의 계란을 받던 이웃들은 그를 배척한다. 하지만 석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채 세상에 대한 선의를 놓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십수 년 간 친한 사이로 지내온 노 신부와 김 선생의 대립이 격화되고 그럴수록 석구는 궁지에 몰린다. 석구에 대해 좋은 기억밖에 없다고 말하는 은지마저 접근금지명령이 내려진 석구가 처벌받지 않도록 그를 밀어낸다. 석구는 물수제비를 뜨던 저수지에 한걸음씩 걸어 들어간다.

<돌멩이>의 서사는 단순히 진실 찾기가 아니다. 잘잘못과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는 목적을 띠지도 아니다. 편견과 오해, 차별, 혐오가 가득한 사회에서 각자 믿는 신념이나 가치가 정말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묻는다.

영화 제목인 <돌멩이>는 다양한 상징이 내포되어 있다. 은지는 아빠가 줬다는 돌멩이에 석구 이름을 써서 선물로 준다. 돌멩이에는 은지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다. 또 석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 돌변은 석구의 마음에 커다란 돌멩이가 되어 상처를 준다. 석구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 은지는 석구에게 떨어진 돌멩이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는 돌멩이처럼 느닷없이 날아온다. 굳게 닫힌 치킨 가게 창문에 석구가 던진 돌멩이는 원망이 아니라 “나를 믿어달라”는 메시지다. 자신을 믿지 않는 노 신부에게 “내 믿어요?”라고 묻는 석구의 물음은 한평생 목회자로 살아온 그가 번뇌하게 만드는 돌멩이다.

<돌멩이>는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다. 관객은 진실을 알지만 등장인물 모두 자신의 처지에서 편견과 오해, 속단과 같은 어긋난 믿음으로 석구를 바라본다. 영화가 건네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주연 김대명을 비롯해 송윤아, 김의성 등 배우들은 호연을 펼치고 연출도 짜임새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