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망가지는 게 능사는 아닌데···‘차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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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인표의 전성기는 1990년대 초중반이었다. 1993년 MBC 공채 22기로 배우의 길로 들어선 다음해 <사랑을 그대 품안에> 주연을 맡아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스타 반열로 올라선다. 그처럼 짧은 기간에 유명세를 타는 건 이례적이다. 당시 차인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차인표의 일거수일투족은 각종 연예프로그램과 스포츠신문에 나왔다.

인기 요인은 큰 키에 수려한 외모, 근육질의 몸매와 더불어 당시 해외파에 대한 막연한 환상 등이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부잣집 도련님에 오토바이와 가죽재킷을 통해 보여주는 남성미, 색소폰을 연주하는 신사 이미지는 실제 모습과 흡사했다. 그의 손짓에 여심은 요동쳤다. 그간 마초적이거나 지적이기만 하던 남성 캐릭터와는 차별적이었다.

미담은 그를 환상의 인물로 만들었다. 어딜 가든 매너 좋은 행동으로 귀감이 되고,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신애라와 1995년 결혼해 순애보적 면모를 보였다. 특히 한창 인기 있는 시기에 입영한 것은 대중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마당에 미국 영주권까지 포기하고 신애라와 결혼하기 전 입대해서다.

1990년대는 연예인들의 군입대 기피가 심하던 시기였다. 해외 국적 취득과 지병 등으로 많은 연예인들이 입대하지 않았다. 차인표의 입대는 연예인의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트렌드로 바뀌는데 일조했다. 대스타가 입대하자, KBS와 국방부는 차인표를 중심으로 국방부 홍보 드라마 <남자 만들기(1995년)>를 촬영했고, 이어 군대를 다룬 드라마 <신고합니다(1996년)>도 제작됐다. 두 드라마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제대한 뒤 청춘스타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차인표는 제대 후 출연한 <별은 내 가슴에(1997년)>에서 조연인 안재욱에게 인기를 추월당했다. 주연이었으나 드라마 초중반부터 비중 없는 조연으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드라마에서 주·조연을 맡았다. <그대 그리고 나(1997년)>, <왕초(1997년)>, <영웅시대(2004년)>, <홍콩 익스프레스(2005년)>, <하얀거탑(2007년)>, <명가(2010년)>, <대물(2010년)>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에서도 간혹 등장했으나,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접속(1997년)>, <반칙왕(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친구(2001년)>, <두사부일체(2001년)> 등 오히려 그가 출연을 거절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거나, 명작 반열에 들어섰다. 차인표는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나 주목을 받는 연예인으로 기억되진 않는다. 하지만 각종 기부활동과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도 집필했다. 점잖고 진지하고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이미지가 뿌리내렸다.

그러던 그가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영화로 돌아왔다. 지난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차인표>다. 왕년의 대스타 차인표가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내용이다. 얼개는 단순하다. 1990년대 대스타였던 차인표의 현재를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풀어냈다. 차인표는 이 영화를 통해 반듯하고 강인한 완벽남의 이미지를 내려놨다. 코미디 장르에 맞춰 얼간이처럼 망가진다. 영화 속에서 한물간 배우로 자신을 희화화한다는 점은 높이 산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고착화된 이미지에 대해 변신의 갈등을 느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미지 변신이 멀쩡한 사람을 얼간이처럼 바꾸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차인표는 허세를 부리는 한물간 배우로 그려진다.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대의 배우들과 자신이 동급이라고 여기는 속물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 매니저(조달환)에 빈정 상하고, 자신에게 아는 체하는 팬들에 마지못해 사진을 찍어준다. 그런 그가 손에 개똥을 묻히고 흙탕물에 곤두박질치고 붕괴된 여고 샤워실에 알몸으로 갇히는 수난을 당한다. 러닝타임 동안 입꼬리 한 번 올라가지 않는다. 영화 곳곳에 웃기려는 과도한 설정이 뻔히 보여서다. 일차원적 슬랩스틱에 더불어 개연성 없는 흐름은 106분의 러닝타임을 1,006분처럼 느끼게 만든다.

배우 차인표를 내세웠지만 정작 영화에서 차인표의 모습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 오직 건물더미에 갇혀 알몸으로 구조되어 논란이 될 것을 피할 궁리만 한다. 박영규, 조달환 등 조연들은 그저 변죽만 울리다 사라진다. 모든 등장인물이 공허하게 맴돌고 우왕좌왕한다.

배우 차인표를 설명할 수 있는 게 20여 년 전 이미지밖에 없는가. 뭐든 열심히 하는 그는 네티즌에 의해 ‘분노 시리즈’로 희화화된 적이 있다. 굳이 점잖고 바른 사람을 망가트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웃길 수 있고, 재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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