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의 파괴, 인권의 파괴, 법치의 파괴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의 의도

12:20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2일 직무능력과 성과중심인력운영, 근로계약 해지의 두 개 파트로 구성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직무능력과 성과중심의 인력운영을 위한 가이드 북 <공정인사지침> 및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발표했다. 방대한 분량의 지침을 통해 ‘가이드’ 하고 있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 권리의 제한을 위한 구체적 방편이다. 쉬운 해고를 야기하고, 법 기준을 위반한 해고를 정당화하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라는 방식을 통해 노동권을 침해 할 수 있다고 한다. 노동자의 집단적 힘은 무력화되고 노동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은 손쉽게 몰수되게 되었다. 이 뿐인가, 가이드라인을 통한 현장 변화는 판례의 변화를 시도하며, 법 위에 섰다. 정부의 폭압적인 노동개악 밀어붙이기는 결국 가이드라인을 통한 행정부의 통치라는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해고의 정당성 판단 권한을 기업에게 양도하는 쉬운 해고 지침

저성과자 해고는 [저성과자를 가리기 위한 평가 -> 교육대상 선정 -> 교육 -> 업무부여 -> 해고]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고용노동부 지침에서는 평가의 합리성, 공정성, 수용성 등에 대해 엄밀히 다루며 평가를 통한 교육대상자 선정 및 해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바로 이 정밀한 묘사를 통해 저성과자 해고 제도의 본질을 가리고 합리성을 부여하려 한다. 그러나 저성과자 해고제도는 노동계에서 누차 지적하고 반대해 왔듯이 쉬운 해고를 만들어 낸다. 저성과자를 가리기 위한 엄밀한 평가과정과 평가의 공정성 등을 기술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으로 규율되는 해고 규제 절차가 아닌 기업 내부의 인사절차를 통해 해고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쉬운 해고의 문을 여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평가 절차를 정교화 한다고 해서 그 내용적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평가라는 것이 고용의 문제와 연관될 때, 이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에 대한 규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근로기준법상 해고 규제는 ‘더 이상 해당 노동자와의 근로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사유만으로 정당해 지는 것이 아니라 절차 또한 요구함으로써 생계수단을 박탈하는 해고에 대한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저성과자 해고는 이런 근로기준법상 해고 금지의 원칙을 뛰어 넘어 기업 내부의 인사평가 절차를 밟는 것으로 해고가 정당해 진다고 하는 제도이다. 법원에서 근로기준법에 따라 해고 사유가 정당한가, 노동자가 항변할 수 있는 기회는 부여 되었는가 등의 절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노동자의 근무실적을 가지고 저성과자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정당한 해고사유가 갖추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곧 해고의 정당성 판단권한을 기업 측에 넘겨주는 것이 된다.

정교한 평가과정으로 포장하여도 결코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평가,
결국 평가조차도 ‘해고’라는 무기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

– 해고 사유 확대를 통해 노동자 권리 위축
고용노동부 지침은 해고사유 명확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및 배치전환 등의 절차를 갖추면 저성과자 해고가 정당화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해고 사유의 명확화’라는 것부터 문제는 발생한다.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을 이유로 한 해고절차에 있어서 가이드라인이 명시하고 있는 해고사유 등 근거의 명확화는 곧 해고사유의 확대를 뜻한다. 이 지침과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정책은 기업들로 하여금 인사지침에 일반해고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여 노동자를 어떤 사유로든 해고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특히 징계 해고시 통상 징계와 관련한 절차를 취업규칙 등에서 규정하고 있기에 그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일반해고로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경우 징계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정부 지침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일반해고 사유를 자세하고 다양하게 기재하도록 유혹한다. 그를 통해 정밀하게 묘사한 평가절차와 달리 해고사유의 확대 기재만으로 현장의 권리는 위축되는 효과를 가져 오게 된다.

– 결코 주관을 배제할 수 없는 평가제도
또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라고 하지만, 그 평가를 위해 평가항목을 만들고, 평가 기준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업측의 일방적인 관점이 배제되기 어렵다. 평가항목을 구체화하고 객관화 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평가항목을 설정하는 과정은 업무와 무관하게 무리한 계량화를 낳아,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노동 과정이나 노동자간 협업의 과정, 노동과 노동 간의 연계라는 실체적 과정을 담아낼 수 없다. 이뿐 아니라 이에 대해 객관적이라고 세워지는 기준은 결국 ‘사회성’이라거나 ‘협조성’과 같은 상대적인 감성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노동자의 태도에 대한 주관적 평가일 수밖에 없다. 이 정성평가는 정량화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정량화하는 것이 옳다고 표현되며 ‘평가’라는 행위에 있어서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된다. 즉 정부 지침에 따르면 평가자의 주관은 결코 배제되지 않으며 오히려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게다가 평가항목은 기업의 경영전략에 부합해야 한다고 하는데, 경영전략이 노동자의 권리를 저해하는 것이라면 이는 제한되어 마땅함에도 경영전략이라는 말로 무조건적으로 인정되는 듯한 뉘앙스를 품고 있다.

– 직무간 불합리한 차별까지 합리화하는 직무 기반 평가
정부는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여 채용하고, 직무에 기반하여 평가한다는 선전으로 이를 정당화시키려고도 한다. 그런데 정부나 인사관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직무에 따른 성과 평가를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분석과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즉, 이 직무와 저 직무가 어떻게 다른가를 명확하게 구분해 구별 짓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직무에 대한 분석과 비교 평가 과정은 직무의 다름을 강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에 기반하여 성과를 측정한다는 것은, 직무간 차별을 정당화 하겠다는 것을 함의한다. 직무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고, 직무에 기반하여 평가하고, 그에 따라 해고하겠다는 것인데 각 직무가 기업에 공헌하는 정도는 누구에 의해 평가되는가, 직무간 차이가 차별로 이어진다면 그 차별 수준을 정하는 자 역시 기업일 수밖에 없는데, 그 차별은 과연 정당하며 그 평과과정은 또 공정한가라는 무수한 문제를 발생시킴에도 ‘직무에 기반’한다는 것만으로 사회적인 합리성을 갖춘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정부의 오만이다.

– 낙인효과를 통한 노동자 통제, 고용불안정 극대화
평가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상급자의 일방적 평가가 아니라 평가를 다면화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이 역시 차등화를 위한 평가제도 속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해고자를 가려내기 위한 교육이 진행되고,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낙인 효과는 발생한다. 그리고 기업들은 이러한 낙인 효과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한다. 평가를 통한 경쟁, 임금연계를 통한 경쟁의 격화에 더해 고용까지 연동시킴으로써 불안정성은 극대화된다. 즉, 평가는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노동자에게 성과에 따른 보상을 부여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위한 기제일 뿐이며,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고’라는 극단적 부적 보상을 부여하도록 한 것이다.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에게 책임이 없더라도 집단적 해고가 가능하게 만든 법이다. 그런데 저성과자 해고는 임의적인 해고마저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저성과자 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기업이 만들어낸 각종 저성과자 지표 속에서 모욕을 당하거나 혹은 이로 인한 소송 과정에서도 자신이 저성과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저성과자라고 낙인이 찍히면, 모든 것이 노동자의 잘못이 되기 때문에 인격적으로도 심대한 침해를 당하게 된다.

‘성과’를 매개로 기업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평가제도,
결국 해고를 기업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지침

– 노동자 교육과 배치에 대한 기업책임은 없고 ‘해고’라는 노동자 책임만 존재
저성과자를 교육하고 배치전환하여 적합한 직무를 찾고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일을 못하는 자라는 낙인을 찍어 노동자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평가의 과정뿐만 아니라 교육의 적합성, 배치전환의 판단이라는 것 역시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그 타당성 역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타당성을 확인하는 방법이라면 새로운 직무에서 노동자가 기업이 만든 기준에 따라 좋은 평가를 내는 것일 텐데, 결국 그 배치전환이 타당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노동자의 해고로 이어진다. 노동자 인사 조치에 대한 기업의 결정에 대해 성과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지워진다.

해고대상자 판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거나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면 해고할 수 있다거나 하는 판단은 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경영상태가 악화된 상황에서 실적이 저조한 경우 역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으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결국 기업의 경영상의 모든 책임은 기업이 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 개인에게 돌려지는 것이 된다. 결국 절차를 정교화 한 것과도 무관하게 개선의 여지가 없다거나 지장을 초래한다는 등 사용자의 일방적, 주관적 판단으로 해고자는 최종 결정되게 된다.

– 성과 평가는 기업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것일 뿐
기업내에서 오로지 노동자 개인에게 귀속되는 성과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노동자의 성과는 개인의 성실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조직체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으며, 해당 기업이 놓인 환경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산업 속에서 해당 기업의 지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정치나 세계 경제 등 외적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기업이 어떠한 경영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과 경영방침은 노동자의 성과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또 쌍용자동차에서 보듯이 심지어 회계조작으로 기업의 경영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는 노동자의 성과와는 전혀 무관함에도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라는 책임을 안기기도 했다. 저성과자 해고제도는 이러한 경영의 책임, 기업의 인위적 성과조작 및 통제 등은 가린 채 오로지 노동자 개인의 성실성이나 업무능력의 문제로 책임을 돌린다. 그 책임전가를 가리기 위해 계량 불가능한 업무조차 억지스럽게 각각의 점수로 쪼개어 진다. 서열화를 통해 일을 못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방식일 뿐, 노동자에게 일을 부여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의 몫은 사라지고, 업무 부진자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 복잡한 절차를 통한 ‘성과 평가’를 통해 해고 정당성이 획득된다고 말하는 정부
결국 기업에 얼마나 공헌하였는가를 평가하는 성과매기기는 실제 성과와는 무관하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줄 세워지는 것일 뿐, 기업 성과에 대한 노동자의 공헌이나 각 직무의 공헌이란 기업이라는 유기체를 사물처럼 사고하여 점수매기는 행위일 뿐이다. 정교한 평가 장치와 절차를 활용하여 그 행위에 합리성을 덧씌우는 것일 뿐임에도, 그 허구적 합리성에 의해 인간이라는 노동자가 점수 매겨지고, 일자리를 빼앗기고 삶 자체를 평가 당한다.

그런데도 정부 지침은 평가의 절차를 세부화하고 기준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평가라는 행위의 상당부분이 합리적인 것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절차를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계량화와 객관화를 시도하여도 평가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다양한 방안을 통해 공정성을 기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류를 절대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기에 더더욱 평가 자체는 해고의 사유로 직결되어서는 안 되며, 해고의 정당성이란 근로기준법상 규제 속에 있어야지 정부의 지침이나 기업의 인사절차의 복잡화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 이미 법을 일탈해 발생하고 있는 현장의 저성과자 해고, 문제의 원인은 정부 정책
즉, 평가의 합리성이 아무리 높다 하여도 해고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평가 결과를 가지고 해고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바로 저성과자 해고제도이다.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며,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악용될지는 여러 사례를 통해 이미 드러나고 있다. KT사례의 경우 노동자들을 익숙치 않은 업무로 강제 배치하고 성과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결국 스스로 퇴사하게 만들거나 해고하였다. 저성과자는 합리적인 평가과정을 통해 우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인력조절 정책에 의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제도 등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면서 현장에서는 이미 제도 활용을 위한 조치들이 준비되고 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사내하청 업체인 맨토스파워는 ‘인사 근무평가 서약서’에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인사평가 결과에 의해,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회사가 재계약을 거부하더라도 어떠한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음을 서약한다”라는 문구를 담아 노동자들에게 서약서 작성을 요구하였다. 서약서에는 심지어 “인사평가 점수 및 평가 내용은 본인에게도 미공개함을 설명 듣고 수긍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는 평가절차를 체계화함으로써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서약서를 통해 회사 마음대로 평가해서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 해고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가로막는 방안을 고안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배제하고, 판례까지 왜곡 ? 변화시키려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판단기준 완화

–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명확하게 배제하는, 법 위에 선 정부 지침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판단기준을 완화하려는 시도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해 노동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다. 정부는 축적된 판례를 통해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기준을 들이민다. 그런데, 정작 판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근거하여 노동자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인정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기에,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정부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노동자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들은 주되게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같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다. 불이익 변경의 판단 기준을 기존판례에 맞추어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즉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의 정책에 맞추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정년 60세 연장이라는, 법에 명시되어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를 사회적 변화라며 끌어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합리화하는 논거로 사용하면서, 예외적으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판례를 끌어다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예외적 판결의 잘못된 일반화 혹은 판결의 왜곡이다.

– 기업결정은 무조건 합리적이라는 정부의 근거 없는 맹신
판례는 노동자에게 미치는 불이익 정도, 변경의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 내용의 상당성, 대상조치 등 다른 근로조건 개선상황, 교섭 경위, 노조 및 타근로자의 대응,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 일반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엄격히 판단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지침은 기업의 결정에 대해 합리성을 부여하면서 이러한 판단의 요건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합의의 노력을 한 것을 정당성 판단요소로 끌어와 사용하고, 기업이 장래에 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권리를 침탈하는 결정을 하더라도 기업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합리성을 부여한다.

기업결정의 합리성이라는 것에는 노동자의 동의나 노동자의 이해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 기업의 결정이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수용하는 정도, 의견, 동의가 따라야 한다는 점 등은 인식에 없고, 기업은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근거없는 대명제만 정부 지침의 바탕에 깔려있다.

– 결국 판례까지 왜곡하고 변경시키려는 정부의 의도
그리고 지침은 또 다시 이 기업결정의 합리성을 사법부가 극히 예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말로 그대로 대치하여 판례를 왜곡한다. 더 나아가 예외적인 판결을 늘려 판례의 흐름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의도하고 있다.

지금 현재 정부는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는 대가관계나 연계성이 없다고 스스로 부정하면서도 현실에서 연공급형이나 항아리형 인력구조와 무관한 경우에도 임금 깎기에 몰두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고, 정년연장 효과를 무효화하는 기업들의 방침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제기한 사건은 조사도 없이 법이 통과될 때를 기다리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것이 곧 정부가 자신들의 지침을 현실화시키고 법개악과 판례 변화로 확대해 나가려는 방법이다. 정부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을 방치하며 현장을 혼란시킨다. 법을 일탈한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현장의 혼란은 부추겨진다. 이런 혼란은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지게 될 수밖에 없는데, 가이드라인을 통한 행정부의 조치는 많은 사례들을 만들어 그 사법부의 판단을 변화시키는 것까지를 의도한다. 이는 결국 법치가 아니라 행정부에 의한 통치이다.

법과 법원의 판결을 초월한 행정부의 통치

지침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실질적 문제점은 지침의 배경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대한 오해,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한 의식 부재가 그것이다.

정부는 지침의 서두에서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 임금 등 핵심사항을 추상적,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노사당사자가 근로기준법을 가지고 행위규범화 하는 것이 어려워, 불확실성이 높고, 투명성, 예측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근로관계에서 노동조건의 기준을 설정하는 법률이다. 당연히 기준은 획일적으로 정해야 하는 것이며, 그를 하회하지 않게 노동조건이 결정되어야 한다. 또한 추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그 해석은 사법부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법부의 판단은 많은 경우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노동자 권리 침해를 방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에 근거하여,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고자 한다. 그것은 비단 법관들의 노력이 아니라 법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만들어온 합리성이며,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법 감각이라는 시민의 인식 수준이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면, 정부의 정책변화나 자본의 이해가 아니라, 바로 그런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법 감각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에 따른 사법부의 판단이 가능한 것은 법률의 유연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 유연성은 법의 취지와 목적에 따라,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추상적이라는 말로 내쳐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현장의 행위규범이란 집단적 노사관계를 통해 법 기준 위에서 자율적으로 집단적 규범사항을 정하는 것이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취업규칙도 아니고, 법률로 세세하게 규정할 문제도 아니다. 현장에서의 노사 자율이 충분히 보장되어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힘을 형성하여 사용자에 대항하고, 그렇게 형성되는 노사의 힘 관계 속에서 현장의 행위규범은 정해진다. 그것이 바로 경제의 실질적 민주화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한국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하여 약화시키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조건 결정과 해고에 대한 사용자의 결정권만 강해지니 노동관계가 불안정해지고 예측불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바로 그렇게 만드는 정부의 반노동정책이 가장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한국사회의 과제이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가리고, 왜곡하며 오로지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고 통제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통한 현장에 대한 직접 통치를 선언했다. 법은 없고, 그 보다 상위에 자본의 논리가 존재하며, 가이드라인을 통한 현장 규율이란 그렇게 법과 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초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통해 노동관계법령은 무력화된다. 가이드라인이 의도하는 것은 법치가 아닌 정부에 의한 일방적 통치,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