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기념탑…일본의 역사 왜곡 앞에 얼마나 떳떳한가”

12일, 구수정 베트남사회적기업'아맙' 본부장 대구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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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3 12:35 | 최종 업데이트 2016-05-13 12:36

베트남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소식을 한국에 처음 알린 구수정 베트남사회적기업'아맙' 본부장 강연이 대구에서 열렸다.

12일 오후 7시, 대구시 중구 덕산동 대구YMCA 대강당에서 대구지역 강연 모임 두:목회(두 번째 목요일)가 주최하는 '보잔(Vo danh, 무명 아기)을 위한 자장가' 강연이 열렸다. 구수정 베트남사회적기업'아맙' 본부장이 강연자로 나섰고, 70여 명이 모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참석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5월까지 9년에 걸쳐 31만8천 명의 병사를 베트남에 파병했다. 구수정 본부장은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여러 기록을 갖고 있다"며 "유일하게 전투 병력을 파병했으며,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고, 가장 오래 베트남에 주둔했다. 그리고 많은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구수정
▲구수정 베트남사회적기업'아맙' 본부장

1975년 전쟁이 끝난 직후 베트남은 전쟁증적박물관, 밀라이증적박물관을 지어 전쟁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해 푸엔성 붕따우 마을에는 첫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졌다.

구 본부장은 "한국에서는 그와 반대로 월남참전기념탑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고 있다. 그 탑에는 '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돌아왔노라'라고 적혀 있다"며 "과연 우리가 이긴 전쟁인가? 미국도 이 전쟁은 패배한 전쟁이라고 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마냥 떳떳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구 본부장은 베트남 꽝아이성 빈호아 마을 증오비와 꽝남성 하미 마을 위령비에 대해 설명했다. 빈호아 마을에서는 1966년 430명이 학살당했다. 하미 마을에서는 1968년 135명이 학살당했다.

구 본부장은 "빈호아 마을 증오비에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증오비에 적힌 도표에는 170명이 여성이었고, 7명은 임산부였으며, 2명은 배가 갈라져 죽었다고 나온다"고 설명했다.

하미 마을 위령비는 1999년 한국의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지원해 세워졌다. 이 마을은 청룡부대가 주민들을 학살한 후, 이틀 뒤 다시 불도저를 밀고 들어와 시신들을 훼손했다고 전해진다.

구 본부장은 "당시 학살 경과를 적은 비문을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지워달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이 있었다. 주민들이 4차례 회의한 끝에 나를 불러 이렇게 얘기했다"며 "'우리 여기 비문 하나도 안 고쳤지?', '여기 비문 그대로 있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비문을 다시 여는 것은 한국 친구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하미 마을 위령비 비문은 연꽃무늬 대리석으로 덮여있다. 비문에는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듯이 와 양민을 학살했다', '피가 이 지역을 물들이고, 모래와 뼈가 뒤엉켜 섞이고', '한국인들이 다시 이곳을 찾아와 과거의 한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는 등 내용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고 밝힌 한 남성은 "내가 과연 미군의 용병이었나 생각했다. 어떻게 그런 잔인한 일이 일어났을까 많이 생각해봤다"며 "미군은 가장 위험한 곳에 한국군을 보냈다. 우리는 가난했고, 돈을 벌어 살아 돌아가야 했다. 아마 그런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제가 겪은 일도 문제지만, 이 문제가 더 걱정된다.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보상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하겠나 생각에 혼자 울기도 했다"며 "후손들이 이 일을 다시 겪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아직 있을 적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 급하다. 모두 힘을 합해서 노력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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