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칼럼] ‘체포자’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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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라는 과목이 논리적 사고 능력을 키워 최선의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공부라고는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과목이다 보니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경우들이 왕왕 발생한다. 우리는 이렇게 수학 과목을 포기한 사람들을 ‘수포자’라 부른다. 이 신조어에는 많은 경우 ‘좋은 대학가기는 어렵겠군’이라는 비아냥도 포함된다. 수포자들은 수학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은 좋은 대학에 못 가게 되고,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어차피 포기하게 될 수학이지만 어떻게든 부여잡아 보려는 나름의 노력은 하기 마련이다. 삶을 조금이라도 더 윤택하게 살아보려는 발버둥처럼 말이다.

한편 요즘의 학교에서는 체육을 포기한, 아니 전혀 하지 않는 학생들이 넘쳐나는데, 우리는 이들을 체육을 포기한 사람, 즉 ‘체포자’라 불러야 할 판이다. 대학입시가 과열되어 체육을 경시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디지털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여가시간에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숨차게 놀던 아이들은 모바일 게임 삼매경에 빠진지 오래다. 그나마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스포츠를 즐기는 친구들은 새 학기가 되면, 같은 반에 뭔가 뛰는 폼(?)이 좀 나오는 애들이 얼마나 되나 추려보기 바쁘다. 커진 덩치에 운동 부족인 아이들은 영락없이 운동 습관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성인들의 뒤뚱거리는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에 같이 운동하기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 매년 체력장을 통해 체력을 평가하고, 체육으로 국위를 선양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 바는 아니지만, 오늘날의 수많은 ‘체포자’들은 미래 세대의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주관하는 국제 신체활동과 건강 조사 결과에서 세계 146국 중 꼴찌 수준에 있고, 그 외 청소년들의 신체활동 조사 지표 모두 심각한 경고등을 울린 지 오래다. 이런 와중에도 수학을 포기해서 좋은 대학을 못갈까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모자라 자칫 체육을 열심히 하는 바람에 공부하는 시간을 더 뺏길까 노심초사를 하는 웃기면서도 슬픈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교육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지덕체로 불리는 각 영역에서 균형 잡힌 인간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 축이 심하게 내려앉은 불안한 모습으로 교육을 끌어 온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신체적 발달을 등한시하는 교육환경을 통해 우리 미래 세대가 건강하지 못한 몸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체포자’ 양산 교육은 이제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손흥민을 좋아하고, 김하성을 좋아하지만, 운동하기 위해 뒤따르는 학습권 박탈은 모든 운동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 아동학대를 유발하는 입시환경과 암기테스트 같은 입시제도는 균형 잡힌 인간을 지향하고, 이를 평가하는 제도라 보기 어렵다.

이제 교육계는 ‘체포자’ 양산 교육을 시급히 중단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책상에만 붙들어 놓는 교육을 지속하지 않기 위해서는 방과 후의 스포츠클럽 활동을 획기적으로 장려하고, 지역 내 건전한 경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 이를 평가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그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교육은 학급 실장으로서의 봉사와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운동부의 주장으로서의 책임과 리더십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과학 동아리에서의 배움과 지식 교류도 중요하지만, 운동장에서의 기술 습득과 경쟁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길 필요가 있다.

어두운 근대사에서의 “體育立國”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체육을 통해 국위선양을 하겠다는 목적에 방점을 찍었다면, 지금 한국 사회의 “體育立國”은 어린 시절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평생 체육의 생활화를 통해 건강과 복지를 실현하고, 모든 국민이 건전한 삶의 질을 높이는데 체육이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담아 새로 써져야 할 것이다. ‘체포자’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탁구를 즐겼다던 옆집 사는 철수 아빠가 올림픽에 나가는 그날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