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초점] 작고 비싼 서울 /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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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투표장 대신 서울로 향했다. 사전투표 덕분에 휴일이 하나 생겼고, 필자는 서울에서 인턴을 하게 돼 급히 방을 알아봐야 했다. 근무지 인근의 몇몇 고시원에 연락해 방을 둘러봤다.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복도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방 40여 개가 한 층에 있었다. 복도를 지나 들어간 방의 시작과 끝을 침대가 연결하고 있었다. 170cm 남짓한 필자가 쪼그려 누워야 할 정도였다. 침대가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책상이 차지하고 있는데, 소인국에서 눈을 뜬 걸리버의 심정이 짐작됐다. 방을 나서며 ‘월세 5만 원을 추가하면 같은 크기에 창문이 있는 방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미 월세가 38만 원이었기에 포기했다.

서울은 ‘작고 비싼 것’들로 가득하다. 관악구에는 작고 비싼 원룸이 즐비하고, 노량진에는 작고 비싼 고시원이 즐비하다. 강남은 작고 비싼 사치품이, 종로에는 작고 비싼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작고 비싼 것들로 가득한 도시는 ‘명품’과 비슷하다. 장인정신으로 만든 기계식 명품 시계와 쿼츠식 대량생산 시계 중 후자가 더 정확한 시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덜 정확하고 수천에서 수억을 호가하는 명품을 선망한다. 서울이 딱 이렇다. 작고 비싼데 수요는 넘쳐난다. 반면 크고 저렴한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에 항상 밀린다. 대학은 ‘인서울’, 집은 ‘수도권 아파트’, 취업은 ‘평택이 남방한계선’ 이런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서울이 더 작고 비싸진다는 소리다.

끊임없는 수요가 서울과 수도권을 뒷받침한다. 서울, 경기, 인천의 인구를 더하면 2,600만이다. 국토의 약 12%에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셈인데, 청년층이 매년 수도권으로 이동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K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수도권으로 향한 20대는 60만 명이다. 주요 기업 1,000곳 중 75%가 서울과 수도권에 있으니,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청년층의 지속적인 유입 덕분에 마르지 않는 수요가 형성됐고, 늘 수요가 있으니 ‘작고 비싼’ 서울은 늘 잘 팔린다.

날마다 비대해지는 수도권과 날마다 쪼그라드는 지역을 보면, 서울에 성장 억제제 같은 강력한 처방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정부는 지난 2021년부터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과 고향사랑기부제 등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으로 인구 유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청년은 일자리를 위해 수도권으로 가고 기업은 인력이 풍부해 수도권으로 모여든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조사한 전국 스타트업 분포도 조사에서 80% 이상이 수도권에 위치했다. 이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선 서울이 천천히 걷고, 지역이 뒤따르는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서울의 다사다난하고 사람과 부대껴야 하는 환경이 싫다. 그럼에도 결국 서울에서 인턴을 하기로 했다. 변명을 하자면, 서울은 작고 비싸다는 점에서 명품과 유사하나 사치품은 아니다. 되려 필수품에 가깝다. 지역에서 구할 수 없던 인턴 자리를 서울에서 구할 수 있었고, 채용공고도 대부분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올라온다. 서울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 선택지를 골랐을 것이다. 서울의 독주를 막는 것이 다른 선택지를 만드는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박대성
zedddaisy@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