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1) “이제 고등학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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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대구에는 장애성인을 위한 질라라비장애인야간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인정은 이뤄지고 있지만, 고등학교 인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질라라비장애인야간학교 학생의 구술을 5월부터 8월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2018년 8월 31일 금요일 늦은 오후, 대구 동구에 자리 잡은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서는 장애성인의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과정 개교식이 있었다. 전국에서 처음이었고, 유일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집이 가난해서, 장애가 중해서 학교문턱을 넘지 못했던 장애성인들이 40여 년만에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개교식 사진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은 2000년 3월 11일 개교한 대구에서 유일한 장애인야간학교이다. 장애를 이유로 학령기 학교 교육에서 배제되어 있던 지역의 장애성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젊고 뜻있는 여러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야간에 모여 함께 공부하던 교육공동체이다.

초기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서는 주로 검정고시 지원을 했는데, 그만큼 ‘졸업장’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때를 놓친 공부였던 만큼 영어, 수학의 벽이 높아 합격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어떤 분이 그랬다. 여기도 학교인데 왜 졸업장을 안 주냐고. 옛날에 학교가기 싫다고 맨날 도망 다니던 동생보다 더 열심히 학교 다니는데 나는 왜 졸업장을 안 주냐고…이제 언젠가의 그분에게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학교 다니면 졸업장 받을 수 있어요.”

그랬다. 2011년 처음 대구에 ‘내일학교’라는 학력인정성인문해교육프로그램이 생겼을때부터 장애성인에게도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무려 7년이 지나고서야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 장애인과정이 생겨났다. 이 과정을 만들기 위해 무려 2년여의 시간 동안 대구시, 교육청과 예산문제, 교원문제, 수업시수와 교육내용, 교실확보 등의 협의가 이뤄졌고, 10명의 중증장애성인의 입학이 성사가 된 것이다.

사람은 다 똑같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교실 밖 활동을 더 좋아하고, 중학2단계에 가는 수학여행을 초등 2단계부터 학수고대하며, 학기 중에는 방학을 기다리다 방학에는 개학을 기다렸다.

하지만 글에 대한 무지는 답답함으로, 공부에 대한 결핍은 열망으로, 가슴 한 구석이 내내 뜨거웠던 그들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정말 열심히 학교를 다녔고, 그렇게 학교 공부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가고, 할 말이 많아지고, 꿈이 생겼다.

“학교 일주일에 세 번 오지. 내일도 와요. 공부 재밌지. 핵교 좋지요.”
“고등학교 공부 계속하고 싶은데요. 졸업장 없으면 사람들이 무시해요.”
“고등학교 입학해서 공부하고 싶어요. 책 읽고, 쓰는 게 좋아요. 나는 공부에 도움 되는 자료도 찾아봐요. 학교 와서 말하면 기분 좋으니까.”

▲중학1단계 1반 수업사진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중학2단계 제주도 수학여행: 4.3평화 기념관 앞에서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초등 전과정 이월드 놀이공원 체험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중학3단계 영남알프스케이블카 체험: 휠체어 탑승가능한 유일한 케이블카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그 사이 두 분이 돌아가셨다. 한 분은 2018년 입학한 1기였는데 중학 2단계를 수료하고 소원하시던 중학 졸업을 못 하고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또 한 분은 초등학력인정서를 받고 소원하나를 이뤘다고 눈물을 지으며 열심히 공부해서 꼭 중학교를 졸업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초등 졸업식 1주일 만에 갑작스런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또 한 분은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신도 함께 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사하는 곳에는 이 과정이 없어 학교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분은 이사 간 곳에도 빨리 학교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그때까지 배운 거 안 까먹게 혼자라도 공부할 거라고 다짐하셨었다.

▲졸업식 사진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처음에는 무료하고 무기력한 일상에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 좋다고 하던 분들이 초등과정을 졸업하니 중학교 졸업이 목표가 되었고 이제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이 진학할 고등학교 과정이 없다.

특수교육법에서는 나이가 많아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니라고 하고, 평생교육법상 학력인정 문해교육과정은 중학교 과정까지밖에 없다. 대구에 단 한 곳인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해 고려되지 않고 있어 등하교부터 교육과정까지 장애성인의 접근이 어렵다. 교육청에 물어봐도 시원한 답이 없고, 교육부에 물어봐도 이렇다 할 뚜렷한 답이 없다.

혹자는 말한다. 중증의 장애인이,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졸업은 해서 무엇하느냐고. 당장 갈 수 있는 고등학교도 없는데 법을 개정하고 정책을 만들 때까지 기다리라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데 40년 이상이 걸렸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그들은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할 각오도 되어있다. 고등학교 졸업을 꿈꾸고, 대학 가는 것을 꿈꾸고, 다른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처럼 행복하게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다는 꿈도 꾼다.

구인모 거창군수는 학력인정문해교육과정을 졸업한 7080 성인문해학습자들에게 아림고등학교 입학의 기회를 주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23회 문해교육상을 수상했다. 그는 7~80대 만학도들의 이야기를, 꿈을 들어준 것이다.

▲졸업식 사진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지금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은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해보려 한다.

“7살 때 엄마하고 한글 공부했어요. 이름 쓰는 거 배웠어요. 학교는 못갔어요. 밖에 나가고 싶으면 아버지가 등에 업어줬는데 그 품이 따뜻했어요. 그게 기억나요.”

“나는 부모님 얼굴을 몰라요. 친구한테 맞아서 팔을 다쳤던 기억이 있고, 5살에 시설로 보내졌어요.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시설에서 안보내주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못하게 하는 게 많아서 힘들어서 도망갔다가, 다시 잡혀 오고 그랬어요.”

이 두 분의 굴곡진 인생사는 인터뷰를 통해 더 깊이 들여다볼 계획이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사무국장 황보경
j-yah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