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고군분투하는 인디밴드에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12:14
Voiced by Amazon Polly

◆ 서울 편중 & 지역 소외가 문화예술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력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점점 도시국가로 변모하는 중이다. 다만 그 도시국가가 우리가 상상하는 고대 그리스의 맹아적 시민민주주의 모델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오히려 스스로 자멸하다시피 ‘제국’의 길을 걸었던 막판의 아테네에 더 가까운, 중심부 도시가 주변부를 공생이 아니라 착취하는 형태에 가까워 보인다. ‘지방은 식민지!’라는 담론이 21세기 초입에 일찌감치 나올 만큼 심각해진 수도권 편중 현상은 이제 ‘지방소멸’ 혹은 ‘지역 공동화(空洞化)’로 치닫는 우려가 표면화되었지만, 개선될 여지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국토균형발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데다 즉흥적이기 짝이 없는 ‘메가시티’ 서울로 경기도 인근 지역을 편입시키겠다는 발표가 사실상 표몰이 용도로 제기될 정도라면 근본적으로 대책이 없는 것은 물론 문제 자체에 무관심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선거 참패와 함께 소리소문없이 ‘공’약은 사라졌지만, 누구 하나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문제인데도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서 서울 확대를 정책으로 내놓는 건 폭주 기관차 마냥, 브레이크 없이 가 보자는 심산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 문제가 왜 심각한가 하면 균형발전을 통해 해당 국가와 사회가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편중을 심화시켜 미래 동력 고양보다는 차별 심화로 나아가는 방향성이 극명하게 엿보이기 때문이다.

본 사안에서 부동산 가격이나 일자리 차별은 누구나 다 아는 쟁점이겠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해악은 전방위적으로 부정적 영향력을 드리운다. 먹고 사는 문제와는 좀 동떨어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궤로 묶이는 게 문화예술 영역일 텐데, 사실상 ‘돈’ 되는 영화는 몽땅 서울에서 결정되고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지역 영화는 싫어도 ‘독립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모순의 늪이 발생하고 만다. 이는 영화뿐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 영역에서 작동하는 원리다. 부와 기회가 서울에 편중되어 버리니 지역에 남아 있는 해당 분야와 종사자들은 ‘잉여’ 취급을 당하거나 수준을 의심받는 게 당연시되고 만다. 아무리 노력하고 연마해도 김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독립’과 ‘예술’을 부르짖어도 자체 순환되는 생태계와 시장 형성이 요원하니 안정된 생산과 경쟁이 이뤄지기 힘들다.

그렇다면 공공지원으로 가치가 인정되지만 ‘돈’은 안 되는 문화예술(인)을 보전해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활약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그런 의도로 중앙/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이 문화예술을 후원하기는 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생성 및 발전해야 할 해당 분야가 관의 시각과 잣대에 종속되는 부작용, 즉 구미에 맞고 그럴싸해 보이는 분야에만 지원마저 편중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방향이 최선이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정반대로 기우는 게 일상이다. 어떤 건 정부 비판적이라 거르고, 어떤 건 ‘쌈마이’해 보여서 배제된다. 시민의 접근성이나 효용보다는 결정권자들의 취향이 ‘결정적’이다. 대구라는 지역은 그렇게 늘 공허한 ‘고급’ 취향이 아니면 ‘성장’ 동력이 되냐 마냐에만 관심을 쏟아왔다. 그 성과가 과연 얼마나 뽑혔는지는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언자’,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지역 영화의 현실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제화’ 경로를 밟아 작은 기득권을 얻은 소수를 제외하면 노력해도 자립 불가능한 구조 안에서 편향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못하거나 애초 장외를 고수하는 독립적 문화예술은 공통으로 겪는 상황이다. 실력이 있으면 서울에 올라갔겠지? 하는 시선 자체가 편향적이라는 인식을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 스스로가 지역 소외와 격차를 당연시하는 실정에서 노력은 무력해지고 만다. 그렇게 현실 모순은 확대 재생산된다. 그렇게 지역의 문화예술은 서울과는 차별화되는 고유의 지층을 퇴적할 수도 활동을 지속할 수도 없이 파도에 끊임없이 쓸려나가는 모래의 처지를 거듭하고 만다. 실력이 없어서 지속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조건이 극악이라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앞뒤가 단단히 뒤바뀐 전제다.

그래서 대다수의 재능 있는 청년 문화예술 기대주는 지역을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다. 금의환향하듯 바깥에서 성공해 역수입되어야 ‘지역을 빛낸’ 인재로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성공사례로 꼽히는 지역 출신 문화예술인은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지 않는다. 상처와 냉대만 기억에 남는데 굳이 지역사회에 뭘 환원하고 해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 한구석에서 정작 지역을 소중히 여기며 뿌리를 내리려는 신진 예술인들은 의지를 잃어간다. 흔히 ‘인디 음악’이라 불리는 자주적 음악인들의 공통된 처지다. 같은 인디 밴드라도 서울 홍대에 가면 한번 공연장에 들르거나 하다못해 버스킹 무대라도 쳐다보곤 하지만 지역 공연은 무관심하게 흘려버린다. 어차피 홍보도 주목도도 모두 서울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민의 냉대는 결정타를 날린다. 그래서 다들 떠나거나 묵묵히 빙하기를 버티는 데에만 급급한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Drinking Boys and Girls Choir, DBGC)’이라는 3인조 펑크 밴드가 있다. 대구 지역의 극히 작은 ‘씬’에서 만나 교류하게 된 주요 멤버들은 함께 2009년 서울로 상경하지만 여러 어려움으로 낙향한다. 대개 이 단계에서 음악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활동을 축소 제한하며 종말을 맞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들은 좌절을 겪어가면서도 밴드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2012년 현재의 이름으로 팀을 결성한 후 어느새 10여 년이 지났다. 3인조 밴드에서 ‘초동 주체’라 할 2명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이제는 청년의 패기로만 버틸 단계가 아닌데도 여전히 지역에 본진을 두고 활동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단편 다큐멘터리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은 바로 그 미스터리를 파헤치려는 기획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그룹이라지만 주인공들은 인디 ‘씬’에선 제법 지명도가 상당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고평가는 지역을 견결하게 사수해서는 아니다. 이들의 결단과는 무관하게 팀이 바깥에서 노력으로 얻어낸 ‘실적’과 ‘성과’ 덕분이다. 이들은 2019년부터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력에서 전환점이 된 사건은 인디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에겐 유명한 미국의 SXSW(South by Southwest) Festival에 초청받으면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듯 지명도를 획득한 이 팀은 영미권의 비중 있는 음악 행사를 2019년 내내 섭렵하기 시작한다. 광고 음악도 외주를 받고 유력 매체의 인터뷰나 저명한 기획사와의 미팅도 이어진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비상할 타이밍이던 2020년 초입에 모두가 겪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터진다. 이들뿐 아니라 공연예술인들에겐 거대한 재앙 그 자체였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미 오랜 무명생활과 외부의 재난에 노출되며 견뎌온 그룹은 밖에서 공연할 수 없다면 새 음반을 작업해야지! 마음가짐으로 신보를 작업한다. 그렇게 빙하기를 버티며 해빙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이들에겐 그게 일상이던 것이다. 영화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 20여 분 동안 질주와 소회를 교차하며 소개되는 인디 밴드의 속내

영화의 구성은 짧은 분량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룹의 활약상과 구성원들의 인터뷰가 교차하는 간략한 형태를 취한다. 이 상영 분량 속에서 더 많이 넣으려 해 봐야 무리수일 뿐이란 점을 주인공들이나 제작진이나 명확히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원래 무 한 번에 이것저것 다 소화하라 강요하면 체하는 법이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펑크 밴드다. 3인조라는 최소인원으로 밴드 음악을 합주하며 고도의 기술적 테크닉보다는 현장에서 함께 즐기는 음악을 지향하는 팀이다. 펑크라면 흔히 3코드라 불리는 간략한 형식을 지니지만 이들의 장르는 그중에서도 ‘스케이트 펑크’ 혹은 ‘아이리쉬 펑크’에 가깝다. 미국 서부 해안지역에서 따스한 날씨 속에 야외활동을 마치고 저녁에 후련하게 하루를 정리하는 일상의 축제에 어울리는 음악, ‘퍼브’라 불리는 선술집이 동네마다 있고 일과를 마치며 맥주 한두 조끼로 자축할 때 클럽 무대에서 신나게 광광 터져 나오는 경쾌한 록 음악이 그들의 본령이다. 영화는 그런 그룹의 정체성을 시작부터 전면화한다.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로 꼽히는 ‘HIT THE CORNER’가 신명 넘치게 흐르며 작은 공연장에서 이들은 포효를 멈추지 않는다.

곧이어 3명의 밴드 구성원이 함께 공연과는 대비되는 차분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카메라 뒤편의 감독은 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술술 질문을 이어가고 팀원들은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듯하지만, 점점 구수한 입담을 열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그들의 지난 몇 년간 활약상이 소개된다. 우리 곁에 있는 동료 시민이지만 정작 이웃들은 알지 못하던 대단한 경력이 자료 영상과 함께 화면 가득 구현된다. 다소 전형적인 전개이지만 대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필수 코스다. 보고 듣고 있자면 ‘어?!’ 할 만큼 꽤 대단한 밴드가 분명해 보인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가진 어떤 환상과 편견, 즉 미국이나 유럽에서 환대받는 정도라면 실력은 충분히 검증된 셈이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구성원들과의 인터뷰는 2019년의 개화만발과 곧이어 찾아온 코로나 시절의 침잠, 그리고 2021년 이후 재개된 현재까지의 활약상으로 이어진다. 영미권을 넘어 유럽 곳곳을 순회하고 싱가포르와 대만 등 동남아시아에도 초청되며 이젠 인디 록 음악이 기반을 탄탄히 한 나라들에선 소규모 공연장은 충분히 매진시킬 정도로 인지도가 쌓여 있다는 게 눈으로 확인된다. 인디 음악 ‘씬’에서 지명도를 쌓아나가고 성공하는 과정과 경로를 대략적이나마 이들의 활약 단계를 통해 파악할 수 있음은 덤이다.

그런 가운데 이들은 장기간의 해외 일정을 마치고 대구 공연을 오랜만에 기획한다. 자주 지역을 비워도 꾸준히 대구 공연을 이어온 이들이지만 오랜만에 벌이는 단독 공연은 또 다른 도전이다. 동료 밴드로 흔히 홍대씬에서 메이저급이라 할 그룹도 초청한다. 장소도 대관했고 홍보도 한창이다. 이제 매표만 좀 잘 되면 성공적인 공연일 상황인데 문제는 모객이 통 안 된다. 늘 밝은 표정으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구성원들의 어조가 갑자기 긴장을 탄다. 관객에게 강렬하게 각인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자신들이 런던이나 암스테르담에서 100명 단위를 모으는 것보다 대구 공연장에서 50명, 아니 30명 관객 기다리는 게 더 어렵다는 자조다. 막상 공연 한 번 가 보지 않았지만 듣고 있자면 당혹스럽다. 지역 인디 밴드의 활동이 왜 어려운지 별 관심 없었던 우리가 외면하던 현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 오랜만의 성공적인 단독 공연으로 돌아보는 지속 가능성 고민

그런 노심초사의 시간을 지나 다행히 공연은 제법 성황을 이루며 마치게 된다. 신명 넘치는 공연 현장의 열기가 이들이 공연 피날레로 자주 선택하는 스쿨 밴드 풍 명곡 ‘LINDA LINDA’로 분출된 후 공연의 열기를 머금은 구성원들의 취기가 남은 인터뷰는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민 현장을 목격했던 관객이라면 왜 이들이 굳이 그런 고행을 자처하는 것일까 궁금해질 법하다. 그 대답으로 영화는 이행을 개시한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키며 활동하는 이들의 대답은 놀라운 발견보다는 ‘선택’과 ‘결단’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우리도 다 알고 느끼지만, 막상 실행하지 않는 영역이 개방되는 순간이 이어진다. 인디 펑크 그룹의 자주독립 정신으로 그들은 왜 남들이 하라는 코스로만 활동해야 하냐며 반문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맨땅에 헤딩하고 달걀로 바위 치기를 할지언정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것이라며 그들은 결기를 다진다. 실력은 이미 (비록 바깥에서만) 인정을 받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투잡, 쓰리잡을 뛸지언정 자신들의 원칙을 훼절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베짱이’ 소리 안 들으려 생업은 따로 꾸려가는 그들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다음 활동 목표를 소개하고 지역에서 적자 걱정하는 공연을 한 달에 한 번은 꾸준히 이어가는 행위의 의미를 설명하는 그룹의 비전과 그들이 속한 척박한 황무지 같은 생태계에 대한 고찰을 위해 영화는 이제 눈에 익숙해진 3명의 밴드 구성원 외에 제4의 멤버라 할 이를 합류시킨다. 무대에 함께 오르지는 않지만 늘 이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음악 작업할 때 곁에서 동료로 활동하는 지역 예술인 ‘팔로’다. 역시 함께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첨언이 지금까지 밴드가 풀어낸 이야기에 지역 씬 전체를 해설하는 시야 조망권을 더한다. 단순히 이 단편 영화가 묻혀 있지만 잘 나가는 밴드의 성공사례 과시를 넘어 객관화된 주제의식을 다루려는 방향을 확정하는 편성이다. 밴드의 앨범 디자인과 무대 연출, 뮤직비디오 등 홍보영상 제작 등 여러 방면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한 네 번째 구성원이 풀어내는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FACT’ 체크의 기회도 제공하는 셈이다. 그렇게 밴드의 여전히 고되지만 희망찬 비전과 함께 경쾌한 공연 풍경이 돌아오며 영화는 종막을 맞이한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 묵묵히 지역을 사수하는 문화예술인을 기록하는 것의 가치

실은 이 영화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의 탄생과정은 여타의 독립영화와는 좀 다른 편이다. 밴드가 꽤 고심해 기획한 오랜만의 대구 단독 공연 소식이 알려지고 이 의미가 다분한 공연을 기록해 보자는 프로젝트에서 출발해 지역 방송국 시청자 제작 영상 프로그램에서 처음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최소 규모로 진행된 제작과정에서 필자 역시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지키는 정도로 거든 바 있다.

영화를 제작한 조이예환 감독은 서울에서 활동하지만, 평소 자신이 인디 음악의 열정적인 팬이라 밴드를 잘 알고 있었다. 감독의 전작은 홍대 판에서 지명도가 작지 않은 세 인디 밴드의 활동과정과 그들이 겪고 있던 딜레마를 전반의 상승과 후반의 침잠으로 구분해 완성한 장편 다큐멘터리 <불빛 아래서>였다. 해당 분야 작업에선 일가견이 있는 감독인 것이다. (전작의 주인공 격이던 모 뮤지션은 이번 단편에선 우정 출연한 밴드 멤버로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전작이 소규모이지만 극장에서 개봉하면서 지역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고, 평소 음악은 들어왔지만, 개인적 교류는 없었던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구성원이 같은 방송에 패널로 함께 한 덕분에 이들의 인연이 시작되고 이어졌기에 영화는 <불빛 아래서>의 번외편 혹은 지역 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축소판 형태로 독해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전작이 홍대씬이라는, 황무지 가운데 그나마 목을 축일 오아시스가 가까운 공간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위 1%의 도전과 좌절을 다뤘다면,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은 그 전형적인 성공 코스에 편입되길 거부한 이들이 택한 경로와 수난,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결산으로 변주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 단편과 전작 장편을 아울러 본다면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기 안성맞춤이다. 단지 응원을 넘어 이 제한된 생태계의 단면을 동시에 접근할 비밀통로 격이다.

주인공 그룹은 현재도 해외 공연과 국내 활동을 겸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자신들의 호구지책도 만만하지 않을 텐데, 지역 독립영화에도 OST 참여로 종종 힘을 보태는 중이다. 해당 칼럼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지역 독립영화의 ‘큰언니’ 최창환 감독의 장편 <파도를 걷는 소년, 2019>나 김선빈 감독의 단편 <고백할거야, 2021>에서 뇌리에 기억된 음악들이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의 솜씨다. 그들이 지역에서 견디며 활동하기에 지역 독립영화인들의 작업에 풍요로운 요소를 더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지만 영화는 주인공들의 음악 성향처럼 밝고 경쾌하다. 그래서 머리 싸매고 보지 않더라도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음악에 추임새를 따라가며 그들의 진솔한 고민을 경청하면 될 일이다. 보고 나면 같이한 동료들과 함께 맥주 한잔 기울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수다를 부리는 게 제맛일 테다. 그리고 어느새 환상처럼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이 합석한 기분이 따라온다.

<작품정보>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2023│한국│다큐멘터리│23분
연출/촬영/편집 조이예환
출연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배들소, 김명진, 메간 니스벳 + 팔로),
데디오래디오(김인수, 안지, 이교형, 이상혁)

2024 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