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세 번째 시집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출판기념회

노동운동 떠나 마을 목수로 살면서 동학과 전태일 삶에 남다른 관심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와  ‘이젠 돌아가야겠다 마을로’ 등 58편 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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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남구 여울아트홀에서 조선남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삶창) 출판기념회 ‘길과 나무와 마을 이야기’가 열렸다.

스스로 마을목수로 소개하는 조선남(본명 조기현)의 이번 시집은 표제시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와 늙은 노동자의 남은 바람처럼 읽히는 ‘이젠 돌아가야겠다 마을로’, ‘달팽이 집’ 등 시 58편을 ‘길’부터 ‘겨울 숲에는 그리움이 있다’, ‘집’과 ‘전태일’까지 4부로 나눠서 싣고 문학평론가 정지창의 발문 ‘길을 걷는 마을 목수’를 더했다.

“고단하다
내 생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던 날들

이제는 돌아가야겠다
마을로,
마을로 내려가서
늙은 마을로 내려가서

빌딩의 그늘에 가려진
가난한 골목길에 평상이라도
하나 만들어 놓아야겠다

상처받은 늙은, 골목길에
꽃씨 한 줌, 뿌려야겠다

이젠 돌아가야겠다. 마을로
더 이상 팔리지 않는 내 노동의 가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골목 어귀에
나무 의자 하나 내놓아야겠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
피곤한 몸 잠시라도 쉬어가게”

_ ‘이젠 돌아가야겠다 마을로’ 전문

그는 “괜히 아내에게 미안하고 출판사에 미안하고 안면 봐서 시집 한 권 사야 하는 지인들에게 미안한 그런 시시콜콜한 일상들. 그런 시어빠진 김치 같은 민주주의. 사람 사는 것이, 뭐 다 그렇지, 별수 없는 것을 그런 것을 책으로까지 내야 하겠어? 내가 쓴 시는,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그런 시다”고 시인의 말에 적었다.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출판기념회 ‘길과 나무와 마을 이야기’에서 조선남 시인_여울아트홀(사진=정용태 기자)

출판기념회는 작가의 식구와 친구, 추천평을 쓴 송필경 ‘전태일의 친구들’(사) 이사장과 정형봉, 김채원 이사를 비롯한 회원,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과 회원, 이명은 생명평화아시아 이명은 사무국장, 김석균 흙건축연구소 살림 대표,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장, 최수환 농부장터 이사장, 장우석 물레책방 대표, 이철산, 오현주 시인 등 축하객 40여 명이 참석해 독자 및 저자의 시 낭독, 여울어쿠스틱밴드, 황성재, 최태식, 이동우의 축하 공연 등으로 채워졌다.

송필경 이사장은 추천평에서 “소박한 말로 노동자의 느낌을 응축한 조선남의 시는 ‘검이불루(소박하되 누추하지 않다)’란 옛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조선남의 시는 쉬운 말로 쓰되 가볍지 않습니다. ‘순’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몸으로 겪고 깨달은 말로 쓴 조선남의 시는 정직합니다. 삶에서 가장 큰 미덕인 정직을 조기현은 몸으로 보여주고, 소박한 글로 나타냅니다”고 말했다.

현재 저자와 함께 남산동 전태일 옛집을 수리 중인 김석균 목수는 “길, 숲, 집, 전태일이 그의 시를 이루는 네 기둥이더군요. 딱 그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발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머리보다도 가슴보다도 발이 먼저인 사람입니다. 조 시인 역시 청년 노동자였지요. 그의 시가 되어 흘러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오현주 시인의 요청에 따라 무대에 오른 시인은 그의 시 가운데 ‘이별을 위한 서시’를 골라 읽으며 출판기념회를 찾은 독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잘 가라
짧았던 환희의 순간과
음울했던 내 유년의 기억과
첫사랑의 가슴 아픈 이별까지도
잘 가라
이어 현실로 되살아오지 않는
민주주의여
잘 가라
과거의 기억만 뜯어먹고 사는 좌파의 이념까지도
잘 가라

더 이상 위협적이지도 못한 그대들만의
파업 노래도 잊기로 했다

나는 가난한 나타샤를 사랑했고
가난한 나는,
가난한 벗들과
기초수급에 목말라하는 벗들과 함께
슬픈 눈 내리는 밤,

그 슬픈 눈으로 사라져가는
생명과 함께
할 것이다

잘 가라
내 사랑 민주주의여
그대들만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는
그대들만의 민주주의여
잘 가라

가난한 벗들에게도 따사로운 햇살이 그리운
우리들의 봄을 찾아갈 것이니
이별을 서러워 말자
잘 가라”

_’이별을 위한 서시’ 전문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출판기념회 ‘길과 나무와 마을 이야기’ 단체사진_여울아트홀(사진=정용태 기자)

정지창 문학평론가는 발문에 “그가 만나는 사람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은둔형 외톨이가 된 소녀나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든 독거노인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도 목련꽃은 화사하고, 잡초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할머니의 꽃밭에는 귀한 생명을 받은 꽃들이 곱게 피어 있다”고 평했다.

조선남 시인의 본명은 조기현, 1966년 대구에서 났다. 1989년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해방글터’ 동인이다. 시집으로 <희망 수첩>, <눈물도 때로는 희망>이 있으며, 마을에서 목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용태 기자
joydriv@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