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동상’ 유감 / 채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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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의 강한 의지와 대구시의회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국민의힘 30명 찬성, 민주당 1명 반대, 기권 1명) 속에서, 박정희 기념사업을 위한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 대구시민 10명 중 7명이 ‘박정희 동상’의 건립을 찬성한다는 5월 1일 자 <매일신문>의 기사는 대구시민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일부 시민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러한 압도적인 흐름 앞에서는 그저 미미한 저항일 뿐이었다.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 체험함으로써 반성과 교훈을 얻는다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취지가 조금이라도 반영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을 위한 절차이다. 이로써 대구를 찾거나 대구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 출입구인 동대구역 광장에서 10척 거구의 박정희를, 조만간 완공될 대구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 입구에서는 그보다 두 배가 더 큰 박정희를 무시로 알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대구는 ‘보수의 심장’에 걸맞은 마음속 표상을 동상과 광장으로 물질화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었으니, “박정희 동상을 세우고, 아이들한테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하고 인권을 가르치겠나?”라는 어느 시민운동가의 항변은 단지 기우에 그칠 것 같지 않다.

▲박정희 동상

어떤 평가를 거쳤는가?

기념을 위해서는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 현재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하여, 그 인물의 현재적인 의미를 지속적으로 (재)구성하는 담론소통의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언제나 ‘현재형’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카(E. H. Carr)는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므로, 이 상호작용은 또한 현재와 과거의 상호관계를 포함”한다고 하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저 유명한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문장은 역사는 과거(사실)와 현재(주체-해석)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소통을 통하여 비로소 현재화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공의 측면과 과의 측면이 사정없이 대립하는 그야말로 ‘문제적 인물’이다. 그러하기에 충분한 논의도 없이, 문제적 인물 박정희를 공적인 기념의 대상으로 무리하게 내세우는 것은 지금처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가 짖는 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파워풀 대구’는 지금도 앞만 보고 달리는 중이다.

이즈음, ‘좋은 측면도 있고 나쁜 측면도 있으니, 균형을 가지고 평가하자’라는 식의 오래된 주술이 등장한다. 물론 이것의 숨은 의도는 기계적 중립으로 포장된 ‘우회적 긍정론’이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늘 공과가 있는 것인데, 과만 들추어내어 반대하는 것은 유감”이라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발언이 이와 다를까?

‘좋은 박정희’와 ‘나쁜 박정희’를 나열하고 이것을 자의적으로 퉁친 후에, 명과 암을 함께 평가하자는 탈맥락화된 균형감각을 앞세우는 ‘우회적 긍정론’으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갈무리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에 대응하여 ‘나쁜 박정희’를 과장하거나, 무조건 그를 비하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의 박정희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그의 시대적 의미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진행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한 최소한의 기회조차 밀려나 버렸고, 단지 일방적인 기념 사업을 위한 공적인 자금과 공간이 유쾌하지 않게 갹출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위한 기념인가?

현재적 맥락이 생략된 혹은 은폐된 역사적 평가는 분명 허전하다. 박정희의 경우도 그러하다. 홍준표 시장의 말처럼 이러한 기념사업이 “박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자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산업화의 출발인 대구에 그분의 산업화 정신을 기리자는 것”에 멈춰 설까? 그토록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그저 과거의 산업화 정신을 사심없이 추억하기 위함일까?

‘좋은 박정희’에 대한 평범한 기념사업이라고 주장되는 이것의 이면에는 특정 정치세력이 ‘좋은 박정희’를 부각하여 지역에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다시금 제고하려는 특정 의도가 진하게 깔려 있다. 말하자면 다소 뜬금없이 그것도 공적인 절차와 비용으로 ‘재소환된 박정희’의 지원을 통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보다 용이하게 실현하려는 특정 정치세력과, 그들의 기획에 기꺼이 동원될 준비가 되어있는 지역의 일부 시민들의 오래된 역사적 블록을 재차 강화하려는 것이 ‘박정희 동상’의 숨은 의도가 아닐까? 만약 그러하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기념’이 아니라 ‘성찰’이다.

기념의 방식은 적절한가?

백번 양보해서, 박정희는 기념할 요소가 있는 인물이라고 인정하자. 또 백번 양보하여, 그를 기념하기 위한 공공기념물이 필요함을 수용하자. 그러나 그것이 굳이 동상과 광장이라면···너무 나갔다.

도시의 공공기념물은 기본적으로 ‘열린 텍스트’이며, 또한 그러해야 한다. 더욱이 장차 건설되는 공공기념물은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주경철은 ‘도시는 기억의 산물이자, 기억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모든 삶의 흔적을 기억하고 전승하는 도시에서, 특히 각종의 공공기념물은 도시가 기억하는, 기억하고 싶어 하는, 기억해야 하는 과거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특정 시기의 정치 상황과 맥락을 압축적으로 내포하는 역사문화경관인 공공기념물은 다양한 독해가 가능한 ‘열린 텍스트’이다. 기본적으로 역사문화공간은 특정 물리 공간이 어떤 연유로 선택되어서 그곳에 공공기념물이 조성되고 이후 세대에게 기억의 터가 되는지, 공공기념물은 어떤 상징들을 적극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표현하는지, 하나의 공공기념물이 주위의 경관이나 역사문화 환경과 조응하며 어떤 이미지를 구성하는지 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시민은 그것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의 주체이다.

문제적 인물 박정희를 기념하려는 광장과 동상은 이러한 역사문화경관에 내포된 ‘열림’을 제한하는 권위주의적이고 제한적인 공공기념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동향(‘대구사범학교’를 비롯하여 대구와의 인연은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대구가 그의 출생지는 아니다)인 대구에서 박정희 정도의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이해 불가한 것은 아니라고 애써 인정하더라도, 일정한 논의와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로 강행되는 기념의 방식이 ‘열려있어야 하는’ 도시의 광장과 동상이라니….

모두에게 개방된 소통의 공간인 광장이 극단적인 대립을 유발하는 논란투성이인 특정 인물의 기념 공간으로 네이밍(‘박정희 광장’)되고,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전근대적이자 권위주의적인 구조물의 상징인 동상이 이러한 논쟁적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지는 모습(‘박정희 동상’)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피로해진다. 도시의 다양성을 축소하고 열림을 제한하는 시대착오와 그나마 멋도 없는 일방적인 기념물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시민의 평범한 감정선이 아닐까? 외람되지만, ‘박정희 동상’ 사태를 바라보는 대구시민의 심기가 좀 더 불편해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대구가 좀 더 평범해졌으면 좋겠다.

채장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