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서울역 광장에도 박정희 동상을!

    대구 대표 인물? 쿠데타와 장기 독재는 서울에서 일어났다

    08:34
    Voiced by Amazon Polly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17년 구미에서 태어나 15년을 살았다. 1932년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해 1937년에 졸업했으니 대구에서 산 기간은 5년이다. 그뒤로 문경에 ‘작은 칼’(교사)로 부임해 ‘큰 칼’(군인)이 되러 만주로 떠나기까지 3년쯤 걸렸다. 그리고 6년동안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 관동군을 거친 끝에 귀국했다. 박정희가 가장 오래 산 지역은 서울이다. 조선경비사관학교 입학 이후 한국전쟁 이전에도 주로 서울에 기거했지만, 1960년 육군본부 작전참모장으로 부임해서 사망하기까지의 세월만 쳐도 19년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3월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달빛철도 축하행사차 광주를 가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었습니다.”, “대구에서도 대구를 대표하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할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네요.”, “예컨대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그 앞에 박정희 전대통령의 동상을 건립하는 방안은 어떠할지 검토중에 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5월 2일 대구시의회 본회의에서는 박정희 기념 조례안과 박정희 동상 2식을 넣은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었다.

    홍준표는 불경스럽고 의뭉스럽다. 대구에 5년 산 박정희가 대구 대표 인물이라면 서울에서 20년 넘게 산 박정희는 서울 대표 인물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대통령을 한 인물이 서울 대표를 왜 못하느냐’고 우길 만도 하다. 홍준표식으로 치면 서울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개명하고 거기에도 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서울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기간만 14년이고 여당 대표도 역임한 홍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09년 9월 “박정희 기념관을 먼저 세우는 게 옳다”고 주장하긴 했으나, 이는 ‘노무현 기념도서관’의 김해 건립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나온 수준이며, 김대중 정부에서 건립 추진한 박정희 기념관에 숟가락 얹은 격이었다.

    3월 8일 홍준표는 “우파가 집권 했는데도 건국 대통령 이승만 기념사업이나 산업화 대통령 박정희 기념사업은 좌파들 눈치나 보면서 망설이고 있네요”라고 썼다. “좌파는 뻔뻔하고 우파는 비겁하다”고도 했다. 홍준표에게 ‘우파 집권’이란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집권’을 의미하는데, 그에 따르면 박정희를 기념하기는커녕 5.16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나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비겁한 우파다(아니면 뻔뻔한 좌파?). 김영삼의 인도로 정계에 입문해서인가, 홍준표 역시 그 자신에 따르면 비겁한 우파다. 김영삼 정부는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홍준표는 서울역에 박정희 동상을 세울 의지가 없었다.

    ▲박정희 동상

    이번에도 홍준표는 겨우 ‘광주의 김대중 흔적’을 빌미로 잡아 박정희 동상을 건립하려 한다. 광주역뿐 아니라 광주 지역내 어디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은 없는데 말이다.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도 김대중 기념센터가 아니라 일반 컨벤션센터에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결과일 뿐이다. 김대중 광장과 김대중 동상은 전라남도 신안과 무안에 있다. 이와 ‘동상 대칭’을 이루기 위해 대구시가 나설 필요는 없다. 경북 구미에 이미 건립된 동상만 해도 2개(구미초등학교, 상모동생가 부근)다. 

    ‘경선용’ 아니라면 서울역에도 세워라

    홍준표는 김대중에게 얹혀가며 대구를 ‘박정희 도시’로 치장하면서, 왜 ‘서울역 박정희 동상 건립’으로는 돌진하지 못할까. 홍준표는 구질이 빤히 보이는 선수다. 제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국민의힘 경선 당시, 홍준표는 ‘중도 확장성’을 강조하다 못해 ‘조국수홍’까지 벌이며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여론조사 응답에 의존했다.

    반면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탄핵 반대’, ‘동성애자 엄벌’을 주장하는 등 ‘극우질’에 열심이었다. 2017년은 당선은커녕 2위권에도 들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으니 박근혜 탄핵 반대층과 극우 개신교쪽의 유산이라도 승계해야 할 판이었고, 2022년은 어차피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는 1위를 하지 못하니 민주당 지지층 민심이라도 빌려쓰려 했던 것이다. 그런 홍준표의 박정희 동상 건립은 결국 이런 것이다: ‘다음 대선에선 반드시 국민의힘 경선을 통과해야겠으니 그 아이템으로 박정희를 사용하는 대신, 본선에서는 확장성이 중요하니 박정희 기념은 대구에서 그친다.’

    제21대 대선에서 홍준표가 국민의힘 후보로 지명되는 데 성공한 이후, 여론조사에서 본선 경쟁 후보와 오차범위내 경합하는 것으로 나타나도 박정희 기념사업을 공약한다면, 그때는 홍준표를 다시 보겠다. 다만 이런 조건이 조성되기까지 소요될 시간이 길고, 그가 넘어야 할 고비도 크고 많다. 당장에 진정성을 증명하려면 같은 당 소속의 서울시장을 붙잡고 ‘서울역 광장 박정희 동상’ 프로젝트에 동참할 것을 압박해야 한다. 서울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서울에서 장기 독재한 박정희다. 그 동상을 서울에 세우지 못하겠다면 대구시의 박정희 동상건립은 ‘경선용’이다. 대구시의회도 서울시를 향해 결의안을 통과시켜라. 그럴 수 없다면 홍준표 경선 비용을 대는 ‘친홍계’에 불과하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