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갤럭시 조립, 주말 대학 수업···삼성 하청 노동자 백혈병

케이엠텍, 모르쇠 일관하다 삼성 상대로 기자회견 하자 그제야 찾아와
휴대전화 조립 중 시큼한 냄새, 과일향 악취 호소하자 "마스크 쓰라"
반올림, "휴대전화 뒷면 고온 압착 시 발암물질 노출 가능성"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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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년생, 21살 이수현(가명) 씨는 삼성 협력업체 경북 구미 케이엠텍에서 일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얻었다. 고등학교 3학년 케이엠텍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을 시작했고, 졸업 후 일학습병행제로 같은 곳에 취직하고 영진전문대를 다녔다. 주중 주야 맞교대로 일하고 주말에 학교를 다니는 고된 일과였다.

수현 씨 아버지 A(53) 씨는 여느 대학생처럼 학교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객지에서 일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아들에게 전해 듣는 공장 생활도 힘들어 보였다. 수현 씨의 일과는 삼성에서 넘겨받은 스마트폰 조립 물량에 맞춰졌다고 했다. S21, S22, S23, 매번 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작업량도 늘었고, 일하다 공장 울타리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학교 가는 주말 통학버스가 갑자기 오지 않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공장에 작업량이 많은 날이었다. 수업은 공장근무로 대체됐고, 일하지 않으면 결석처리 된다고 했다.

지난해 9월 A 씨는 새벽 3시, 아들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다고 했다. A 씨는 당장 차를 몰아 구미로 향했다. 백혈병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가족력도 없고, 아들은 특별한 투병도 한 적이 없이 건강했기 때문이다. 최초 병원에서는 혈압이 너무 낮고 발목에 물이 차, 큰 병원으로 넘겼다. 부산으로 옮겨 2차 병원에서도 큰 병원으로 가야 했고, 부산대병원에서 결국 백혈병과 범혈구감소증을 진단받았다. 그후부터 지옥 같은 일상이 시작됐다.

케이엠텍, 모르쇠 일관하다
삼성 상대로 기자회견 하자 그제야 찾아와
회사 책임 부정에 모멸감

수현 씨는 무급휴직 상태에서 항암 수술과 치료를 시작했다. 7차례 항암 수술을 거치며 머리가 듬성듬성 빠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치료 후에도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건강하던 아들이 중병을 얻었는데, 산재 처리는커녕 회사로부터 특별한 자초지종조차 들을 수 없었다. A 씨는 아들 간병을 하면서 대응을 위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는 동안 수현 씨는 회사에서 해고됐다. 무급휴직으로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해고 통지도 받지 못했다. 지난 2월, 건강보험납부통지서가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것으로 해고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4월 기자회견을 열고서야 케이엠텍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A 씨는 케이엠텍 관리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다시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공장 관리자들이 4월 22일 과일 바구니를 들고 A 씨를 찾아와 2시간가량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A 씨는 사과를 요구했으나 사과받지 못했다.

“우리가 정부 기관도, 봉사단체도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신경 쓸 수가 없다.”
“핸드폰 1년에도 수억 개씩 전 세계에 팔린다. 유해 물질이면 당연히 퇴출되어야 한다. 우리 회사 공정, 바깥 공기보다 청정하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잖아요. 치료비 이런 건 초일류 기업에서는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반기업에는 없다.”
“피해자라는 표현을 쓰지 마세요. 제가 받아들이지 않아요.”
“더 근원적인 거는 엄마, 아버지가 책임져야죠. 일차적으로.”

면담 자리에서 A 씨가 사과 대신 들은 말이다. A 씨는 부당해고에 대한 공개 사과, 복직 등 원상회복과 치료비 등 보상,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휴대전화 조립 중 시큼한 냄새, 과일 향
악취 호소하자 “마스크 쓰라”
반올림, “휴대전화 뒷면 고온 압착 시 발암물질 노출 가능성”
그외 분말 가루, 먼지 흡입

수현 씨와 함께 발병 경위 확인에 나선 반올림은 수현 씨 작업 과정에서 발암물질 노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제조2팀 메인 A파트에서 일했던 수현 씨는 S21, S22, S23, Z플립을 하루 약 2천 개 조립하고 테스트했다. 삼성전자에서 가져온 부품을 조립하고 납땜이나 고온 압착 작업도 했다고 한다. 조립 과정에서 에어건을 쓰면 과일향과 기름 냄새가 났다. 고온 압착 과정에서는 수증기와 시큼한 냄새가 났다.

반올림은 이에 대해 “하루 1,800~2,000개 조립을 하면서 매번 에어건을 사용했는데, 환기가 안 돼 공기질이 좋지 않았다. 플라스틱 잔류 방향족 화합물이나 미세 분진 노출 가능성이 있다”며 “고온 압착 과정에서는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성 성분도 발생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케이엠텍 측이 정확한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며, 측정되지 않는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 간접적 유해인자 노출 공정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장 앞 기자회견 잡히자 회사측 다시 접촉해 와
치료 지원 나서기로 선회

면담이 결론 없이 끝나자, A 씨와 반올림은 구미시의 케이엠텍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자 회사의 입장이 좀더 바뀌었다. 14일 오전 11시 기자회견 이후 공장 관리자 측은 A 씨가 복직된 상태이며, 치료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14일 오전 11시 케이엠텍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케이엠텍 한 관리자는 “백혈병에 대해 딱히 드릴 말씀은 없다. 노동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며 “수현 씨는 2월 1일부터 복직된 상태다. 실무자가 해고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잘못한 것이 맞다. 인사담당자가 심각성을 잘 모르고 기준에 정해진 대로 한다고 조치한 거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료지원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 해주기로 최근에 아버님께 통보했다. 삼성과는 특별한 소통은 하지 않았다”며 “발병 가능한 공정은 없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다소 변화된 입장을 보였지만, 수현 씨가 일하던 공장을 다시 보자 A 씨는 다시 가슴이 저려왔다. 기숙사와 작업장을 벗어나지 못한 아들 생각 때문이다.

“아들이 여기서 일하는 동안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해도 회사에서는 ‘그만두고 나가라’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통금도 있고, 근무시간도 들쭉날쭉해 끼니도 못 때울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문제제기하니까 통금이 늦춰졌다고 하네요. 아직 관리자가 한 얘기가 잊히지 않습니다. 1차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삼성에서 가라고 해서 온 건지,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적반하장을 넘어 환자와 부모를 두 번 죽이는 행태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 어린 나이에 실습생을 거쳐 입사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 아이가 왜 이런 상처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삼성은 1차 협력업체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습니까.”(A 씨)

한편 이날 반올림 주관으로 열린 기자회견에는 27개 대구경북지역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도 함께했다.

이들은 “협력업체의 행동규범을 강조한 삼성이 케이엠텍의 노동현장과 반인권적 대응을 조사하고, 백혈병 피해자 지원도 나서야 한다”며 “케이엠텍은 사과와 관련 자료 공개, 해고를 취소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