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최저임금 받을 권리도 배달이 되나요

09:09
Voiced by Amazon Polly

20대에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2013년은 최저임금이 4,860원. 학교 앞 단골 분식집의 뚱뚱한 매운참치김밥이 2,300원 하던 시절이다. 수업 사이 점심에는 돈가스 식당에서 3시간 서빙을 하고 저녁에는 술집에서 5시간 맥주를 따랐다. 방학 때는 학원 채점 알바를 하고 명절에는 시장 전집, 떡집에서 단기 알바를 했다. 전부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이다.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친구들한테 술도 샀다. 해가 바뀔 때마다 최저임금이 얼마 오르는지 다이어리 한구석에 적었다. 연초가 되면 한 달 예산에 얼마라도 늘어난 게 기분이 좋았다.

그땐 ‘4대 보험 가입을 안 하면 시급을 조금 올려주겠다’라는 제안이 많았다. 시급 4,860원을 5,000원으로 쳐서 주는 식이었다. 단돈 얼마라도 더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거절했다.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돈가스 기름에 손이라도 데면 병원비를 청구할 수 있단 걸 알았다. 주휴수당, 퇴직금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일하는 시간 앞뒤로 일하는 친구들한테도 4대 보험을 꼭 챙기라고 오지랖 부렸다. 편의점은 일이 편하니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말을 쉽게들 하던 시대였다. 난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끝자리까지 달달 외우고 다녔다.

30대가 되니 끝에 두 자리는 항상 헷갈린다. 7,000원, 8,000원대를 지나 올해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렸다. 올해 논의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까지 최저임금을 확대 적용할지’ 여부를 두고 진행 중이다. 물론 이건 노동계 요구고, 경영계에선 업종·지역 등의 기준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시급을 얼마나 올리느냐’가 주요 화두였던 지난 10년보다도 전선은 더욱 복잡해졌다. 최저임금법 적용을 받지 않는 법 밖의 노동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4대보험 미가입을 요구하는 사장님을 상대하던 10년 전과 비교해 노동 형태가 180도 달라졌다.“말도 안 되는 고객 항의에 대응하고 싶어도 플랫폼 회사가 상대인지, 배달시킨 고객이 상대인지 모른다”고 집회에서 만난 어떤 배달라이더가 말했다. 문제의 본질은 양쪽 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상대라는 점이다.

변화한 노동 형태는 청년의 알바문화도 바꿨다. 후배들에게 돈이 필요할 때 쿠팡 알바를 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앱 몇 번 클릭하면 지원 완료, 알바비 떼일 걱정 없고 픽업 버스 시스템 운영, 최저임금보다 살짝 높은 일당까지 “좋아요”, “편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좀 더 붙잡고 물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쏟아진다.

“3일 내리 가면 몸이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오기까지 일주일도 더 걸려요. 지난 학기 때 야간을 뛰고 바로 오전 수업에 들어갔더니 정신이 까무룩 하더라고요. 큰일 나겠다 싶어서 중간에 나와서 집에 돌아갔어요. 그다음부터 야간은 절대 안 가요”, “첫날 관리자한테 혼나고 울었어요. 잠깐 단체로 설명해 주고 나면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데, 처음이니까 당연히 못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인사도 안 받아주고 고정 알바들은 눈치를 줘서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그럼에도 이들 사이에 쿠팡은 그나마 나은 알바 자리로 통한다.

쿠팡, 배민, 카카오대리 같은 플랫폼 노동은 태생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하다. 플랫폼 회사들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노동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 이면의 그림자는 숨기기 바쁘다. 비 오는 날이나 야간에도 도로 위로 내몰고, 사장을 숨겨 권리를 요구할 통로도 막았다. 산재 입증이 어렵고 노동조합 활동도 만만찮다.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이라는 시대가 만든 단어에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개인은 대응하기 어렵다.

기자 출신으로 직접 플랫폼 노동에 뛰어들어 책 <뭐든 다 배달합니다>를 쓴 김하영 작가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묻자고 제안한다. “플랫폼 시대의 정부는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대표적인 예”라며 “회사가 하던 일을 이제 정부가 해야 한다. 20세기에는 회사가 분배와 복지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21세기에는 회사 간 격차가 커지고 노동자 간 격차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사회 전체의 부를 관리하면서 정교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김 작가의 책에서 내가 진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거다. “무엇이든 배달하는 세상, 우리는 배달을 우리 삶에 필수적인 영역이자 전문적인 직업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배달 라이더를 포함한 플랫폼 노동자들을 법안으로 끌어들여 보호하는 것,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 결국 사람이 사람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을 강조한 부분이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그만큼 진전하길 기대해 본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