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회사 앞 분식집이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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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다 배가 허전하면 길 건너 분식집으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인근에 계명대, 대구대, 영남이공대까지 대학이 3개나 있는데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창가를 채운 화분들은 늘 생기가 넘쳤다. 주로 참치김밥과 라면을 먹었다. 가격에 여러 번 스티커가 덧대진 메뉴판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주인 할머니는 꼭 물김치를 먼저 내줬다. 텔레비전 소리를 배경 삼아 한 끼 든든히 먹고 나면 다시 힘이 났다. 어느 날은 주문 후 음식이 나오자마자 기다리던 취재원 전화가 왔다. 길어질 것 같아 결국 ‘그냥 가야겠다, 죄송하다’ 했더니 기어이 주저앉히곤 음식을 포장해 손에 쥐어 주셨다. 사무실에 돌아와 한 시간 넘는 통화를 끝내곤 포장을 풀었더니 물김치가 같이 담겨 있었다.

며칠 전, 분식집을 찾았더니 상가 임대 현수막과 연락처가 붙어 있었다. 섭섭한 마음에 불 꺼진 가게 안을 기웃거렸다. 카야 토스트가 맛있던 회사 옆 빵집, 고수를 듬뿍 주던 쌀국수집, 중화비빔밥이 맛있던 중국집 유리에도 몇 개월째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고금리, 고물가 장기화 여파’라는 뉴스 속 문구가 멀리 있지 않았다. 회사 주변 동네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도 한 바퀴 돌아보면 임대 종이 붙은 공실이 발에 챈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행정안전위원회)이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대구 소상공인들이 빚을 갚지 못해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대신 변제한 액수는 3년 전보다 3배 이상 급증했다.

▲회사 인근의 한 공실, 식당이 있었으나 몇 개월째 임대 현수막만 붙어 있다.

자영업의 위기는 구조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 건 가운데 75.1%(861만 건) 가량이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이라고 신고했다. 개인사업자 4명 중 3명이 월 100만 원도 못 번다는 의미다. 빚으로도 버틸 수 없는 이들이 가게를 정리한다. 지난해 국세청에 폐업 신고한 개인사업자 수는 91만 819명으로,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2019년 85만 2,572명보다 많다. 신규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은 79.4%에 달했다. 115만 곳이 창업하는 동안 91만 곳이 폐업했다는 의미다. 자영업자 가운데 60대 이상 고령층 비율이 37.3%로 가장 많다는 점에서 생계형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대구는 특히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2022년 기준 대구 자영업자 비중은 특광역시 중 부산(21.1%) 다음으로 높은 19.7%로 집계됐다. 대기업 공장이 많은 울산이 13.8%로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낮고,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15.7%), 수도권인 서울(16.3%), 경기(16.9%), 인천(17.0%) 등 순으로 낮았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을수록 고금리, 고물가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대구에서 폐업 신고를 한 자영업자는 4만 526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영업자 폐업, 경기 침체, 의료 대란, 이상기후 같은 먹고 사는 문제의 해법을 듣고 싶다. 지난주 제22대 국회 개원 후 첫 국정감사가 시작됐지만 야당은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여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건희 리스크는 근본적으로 수습 불가”라며 “민주당은 총체적 집권 준비에 전력투구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대치에 곳곳에서 감사가 중단되거나 정책 논의가 뒤로 밀리는 장면도 보도됐다. 굳이 뉴스가치를 따져 프레임에 말려들고 싶진 않다. 다만 분식집 할머니라면 텔레비전 뉴스를 들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뭣이 중헌디.’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