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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보고서가 장애인과 동행할 수 있는 적절한 구조와 방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기여를 환영하고 참여를 촉진하는 새로운 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 자체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장애인을 외면해 온 방식을 모방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누구와 어디에서 살지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 (중략) 학대 등의 차별은 장애인을 거부하는 문화를 보여줍니다. 이런 문화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가치가 낮다는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내놓은 메시지 중 일부다. 교황은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촉진해야 함에도 교회가 그것을 막는 사회와 마찬가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 우려는 지난 2023년 한 토론회에서 이기수 신부의 입을 통해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이 신부는 이 자리에서 “아이큐 30, (앵무새) 장애 1급 정도 된다. 50에서 55, 이건 강아지, 의학적 수치다. 3급은 70에서 80, 코끼리 정도”라고 했다. 장애인 탈시설을 반대하기 위한 근거로 내놓은 주장이다.

장애계는 전국에서 175개나 되는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의 탈시설 요구를 외면하고, 지난 2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후엔 이 법 무효화를 요구하며 법률 폐지를 위한 청원 운동까지 전개한 천주교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달 18일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천주교가 탈시설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일 대구에서도 천주교의 장애인 비하에 대한 사과 및 탈시설 권리 보장을 촉구하며 결의대회가 열렸다. 낮 12시 40분께 중구 계산성당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개최한 ‘한국 천주교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보장 촉구 결의대회’에는 장애인 당사자, 탈시설 당사자, 비장애인 활동가 등 약 200명이 참석했고, 경찰은 이들의 성당 진입을 막기 위해 인간벽을 세웠다. 성당 측은 기도를 하려 성당을 찾았다는 교인에게도 묵주기도를 암송해 보라고 요구하는 등 성당 시설 내로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박동균 대구장애인차별철폐투쟁연대 사무국장은 “우리는 물리적 행위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며 “직접 천주교에 장애인의 탈시설을 왜곡하고 비하하고 폄훼해왔던 천주교를 대상으로 규탄하고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결의대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박 사무국장은 “천주교는 경찰의 방패 뒤에 숨을 뿐이다. 경찰의 방패에 우리 동지들이, 장애인 당사자들이 다쳤다. 목소리가 가로막혔다”며 “며칠 전 선종하신 교황님께서는 장애인의 보호를 보호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사회 참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탈시설 정책을 전체주의적 정책이라며 비하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4월 18일 서울에서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간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그리고 활동가들이 있다. 그 활동가들은 지금 천막도, 천장도, 난간도 없는 종탑에서 위험천만한 고공농성을 13일째 이어가고 있다”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천주교와 대화하려 25일에 대화의 장을 마련해달라고 천주교 측과 협의를 봤다. 그런데 대구대교구 소속이고 들꽃마을이라는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신부가 우리의 기다림을, 대화의 목소리를 무참히 짓밟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천주교의 탈시설을 폄훼하는 행태는 자기네들이 운영하는 175개의 거주시설에서 받을 수 있는 돈 때문에 장애인 거주 시설을 절대로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그들은 돈 때문에 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두고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 자리에는 오랫동안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던 장애인 시설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장애인들도 참석해 탈시설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희망원에서 30년 넘게 살다가 2019년 탈시설해 자립한 서금순(70) 씨는 “제가 지역 사회에 나와 이렇게 살고보니 그 끔찍한 시설에서 온갖 폭력과 구타와 욕설,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겪으며 살았던 제가 너무 후회스럽다”며 “저는 모든 시설에서 감옥같이 갇혀 사는 동지들을 구하고자 소리 높여 외친다”고 말했다.
서 씨는 “지금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부디 시설에 갇혀 있는 동료들이 이제는 하루 빨리 시설에서 나와 자유와 희망과 행복을 누리며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보내 주시라”며 “주교 재단에선 우리 아픈 삶을 잘 알면서도 탈시설 권리보장을 반대하며 동료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1998년 천안역에서 납치돼 희망원에 강제입소한 전봉수(70) 씨도 결의대회에 참석해 “어떤 스님이 돼지국밥을 사준다고 따라갔다가 약먹고 잠들어서 눈 떠보니 희망원”이라며 “희망원에선 아무도 제 가족을 찾아주지 않았다. 20년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희망원에서 독방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문을 잠갔다. 희망원에서 죽는 사람도 많이 봤다. 지금은 20년 만에 가족을 만나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들 약 한 시간 계산성당 앞마당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한 후 성당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을 둘러싸고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벌였다. 다이인 퍼포먼스는 여러 사람이 한 장소에서 죽은 듯 드러누워 항의의 뜻을 밝히는 퍼포먼스다. 퍼포먼스 이후에는 계산성당 앞에서 종각네거리까지 행진해 제135회 노동절 맞이 집회에 참석했다.

한편, <비마이너>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TFT 구성을 위한 실무자 간담회를 하려고 했지만, 천주교 측은 장애계가 간담회를 개최하면 농성을 중단할 것이라고 한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하며 간담회에 불참했다. 장애계 측은 천주교 측과 주고 받은 공문을 공개하며 천주교 측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관련기사=천주교, 장애계와의 간담회 파기… 고공농성 장기화 위기(‘25.4.26 / 비마이너)]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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