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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혁명을 시작한 이곳에서 첫 선거운동을 시작한 의미를 남다르게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한 말이다. 청계광장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었던 곳이다. 내란 사태 이후 빛나는 응원봉의 물결이 불안하게 이어지던 탄핵 심판을 종국에는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빛의 혁명’이란 이름은 참 세련되게 잘 지었구나 싶다.
누가 지은 건가 했더니, 일단은 이재명 후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던 날 여의도광장에 선 이재명 후보가 “국민 여러분께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계신 것입니다. 전 세계에 없는 ‘무혈촛불혁명’을 이뤄냈던 것처럼, 다시 ‘빛의 혁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걸로 확인된다. 12월 14일 이전에는 ‘빛의 혁명’이란 표현이 언론지상에서 확인되지 않으니, 적어도 ‘빛의 혁명’을 공론장에서 발화하고, 대중화한 건 이 후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빛의 혁명’을 완수하는 일은 그에게 당연하게 부여된 과업인지 모른다. 다만,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혁명이 완수되는 것은 아닐 거다.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로 정의된다.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아이러니하게도 광장에서 우리는 윤석열이 망가뜨린 헌정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고작 대통령 따위를 윤석열에서 또 다른 누군가로 바꾸기 위해 이 고생을 하는 게 아니라는 울분을 토했다.
그러니까 광장은 혁명과 비혁명의 경계에 서 있었다. 이 후보가 서 있는 ‘빛의 혁명을 시작한 곳’은 경계 위인 셈이다. 경계 위에 온갖 의제가 풀어헤쳐졌다. 시민들은 우리 사회가 지금껏 걸어온 길 자체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길이 결국 윤석열을 만났기에, 윤석열을 끝으로 그 길도 매듭짓고, 새로운 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혁명으로 가느냐, 비혁명으로 종결되느냐는 어쩌면 길의 끝에 선 그가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결정될지 모른다.
새로운 길은 어떤 길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후보가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라고 흔쾌히 말하긴 어렵다. 특히,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등장한 홍준표 국무총리설만큼 비혁명을 넘어 반혁명적인 길은 없다. 홍준표가 누구인가. 윤석열의 내란을 한밤중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탄핵은 끝끝내 반대한 인물이다. 다시 말해 윤석열의 길을 이어가려던 이다. 그런 이가 국무총리가 된다면, 혁명은 문자 그대로 물거품이 된다.
물론, 보도 이후 양측이 모두 부인했고, 이 후보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닌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다. 하지만 새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게 되고, 곧장 국무총리 인선부터 해야 한다는 걸 고려하면, 아니 땐 굴뚝에서 났을리 없는 연기도 가볍게 볼 수가 없다. 더구나 이 후보는 이른바 ‘통합’ 행보를 보이고 있고, 직접 홍준표 시장을 향해 덕담 같은 러브콜도 보내기도 했다. 국민 행복이란 목적 달성을 위해선 “작은 생각의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모두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작은 생각의 차이’가 어디까지를 포괄하는지 알 수 없으나, 이미 이 후보는 용산참사를 두고 망언을 한 이인기 전 국회의원이 캠프에 합류하고 논란이 일자, “지금 국민들의 최대 과제는 국민 통합”이라며 “순수하거나 아무 흠 없는 사람들만 모아서 하면 가장 좋겠지만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 행복과 통합이란 명분 아래 ‘작은 생각의 차이’는 넘어서고, ‘흠 조금 있는 사람’도 포용하는 길이 용산참사를 두고 ‘자살폭탄테러’라고 극언한 사람은 품고, 내란을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탄핵을 반대한 사람은 품지 않을거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적어도 그가 품을 수 없는 작은 생각의 차이는 지난 18일 열린 첫 TV 토론회에서 드러났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물음에 “방향은 맞다고 보지만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서 이걸로 새롭게 논쟁 갈등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고 유보했다. 지난 ‘빛의 혁명’의 광장에서 응원봉을 든 이들 중에는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농민, 여성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인기, 홍준표는 없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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