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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광장 : TK리부트] ④ 내란 청산이 제1과제
10년, 9년.
대학생 김지유(22) 씨는 아마 평생 12월 3일 새벽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친구와 만나 신나게 놀고 귀갓길에 방금 헤어진 친구가 전화를 해서 계엄 사실을 전해줬다. 교과서에서나 들어봤던 ‘계엄’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와닿지 않았다. 지유 씨는 “교과서에서나 봤던 계엄이 일어날 것이라고 다시 생각하지 못했는데, 친구들 중에는 그날 국회로 갔던 친구도 있고 나중에는 남태령과 한강진 집회에도 친구들이 많이 갔다”면서 “(계엄을 일으킨 적 있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 기간을 찾아봤다. 10년이랑 9년이었다”고 말했다.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지유 씨에게 끝모를 윤석열의 독재 기간이 청춘의 시간을 앗아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지유 씨는 그래서 두려웠다. 그는 “내란 이후 다들 그러셨겠지만 새벽에 잠 못자고, 혹시나 뉴스 속보가 뜰까봐 새벽에 벌떡 일어나고, 뉴스 계정을 살피고 겨우 다시 잠들고 했다”며 “만약에 탄핵이 안 되면 어쩌지, 우리의 싸움이 더 길어지면 어쩌지, 도대체 얼마나 싸워야 할까 하는 막막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 봤던 뉴스 기사를 떠올린 지유 씨는 “대한민국이 트라우마 사회라던 기사가 생각난다”며 “우리나라는 굴곡이 굉장히 많았다. 일제강점기 이후 독립으로 새로운 사회를 꿈꾸려고 했을 때 다시 이념 논쟁으로 남북 분단이 됐고, 수많은 독재 정권과 싸움도 있었다. 참사도 계속 일어났고, 이번엔 내란도 일어났는데 이런 식으로 국민 대부분이 국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회”라고 꼽씹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내란 사태가 제대로 종식되기 위해선 내란세력 청산과 6공화국 이후를 상상하는 일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고 했다. 지유 씨는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아서 많은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것처럼 내란 이 확실히 종식되기 위해서는 내란세력 청산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긴 시간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다. 시민의 힘으로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탄핵 정국, 즉 지난 4개월여 동안 지유 씨는 ‘이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에 대한 답 없는 고민을 이렇게 끝도 없이 써내려 갔다. 지유 씨가 생각하는 이번 내란 사태의 원인은 혐오 정서와 정치적 무관심,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라 생각한다.
지유 씨는 무엇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이번 내란 사태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았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독재 정권을 유지했던 이들에 대한 청산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과거가 현재와 미래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본 것이다. 그는 “내란 직전에 대학생단체에서 광주역사문화기행을 다녀왔는데, 금남로와 전일빌딩, 묘역 등을 둘러봤다”며 “그 이후에는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가장 긴 무덤이라는 대전 골령골에도 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시국에도 우파들이 결집을 많이 있는데, 이승만을 굉장히 영웅화하고, 박정희의 잘못 대신 공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지않나.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들이 모여 오늘의 내란사태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심각하게 느낀 우리 사회 문제로 좌우이분법이 더욱 강화되고, 10·20 청년세대의 우경화, 사회 근본 신뢰 파괴를 꼽았다. 지유 씨는 “예전에 뉴스민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에브리타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보수집회에서 ‘좌파’ 단어 하나로 사람을 악마화하는 것이 굉장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대학생 시국회의 향한 에브리타임 온라인 괴롭힘···“정신과 치료 받아”(‘25.1.21)]
지유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당시 발표한 계엄 포고령에서 ‘반국가세력’도 같은 맥락으로 읽었다. 그는 “좌우이분법 강화되는 상황은 10·20대 청년세대의 우경화가 가장 직접적”이라며 “학창시절에도 커뮤니티 등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풍자하고 밈으로 활용하는 놀이가 있었고, 내란 이후에도 윤 대통령이 좌파들을 다 총으로 쏴서 죽였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마치 놀이처럼”이라고 했다.
내란의 밤에서 당연히 시민들을 지키는 군인과 경찰이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시민을 위협하는 상황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했다. 지유 씨는 “헌법재판소 판결도 혹시 하는 불안감이 컸다. 내란으로 인해 국가의 근본이 되는 헌법과 이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헌법재판소, 국민을 당연히 지킨다고 생각했던 군인과 경찰 등에 대한 신뢰회복이 앞으로 중요하다”고 짚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