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TK리부트] ④-1. 김예민, “단죄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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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광장 : TK리부트] ④ 내란 청산이 제1과제

피해자 보호,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여성단체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지원할 때 따라가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다. 내란 사태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피해자는 국민, 가해자는 윤석열과 내란동조세력이다.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49)는 “재발방지를 위해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어떻게 세울 건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다. 김 대표는 단죄의 역사를 배우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교육이 이뤄져야 내란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 본다.

▲김예민, “교육의 시작은 단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린 과거에 단죄의 역사를 갖지 못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고 5.18 민주화운동을 폭도라 말하는 이들에게 표를 줬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교육이 중요하다.”

Q. 내란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윤석열 개인의 책임을 명확하게 짚어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가장 우선해야 하는 건 개인의 문제라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엉망인 사람일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남용한 거다. 정확히는 권한이 아닌 권력을 남용했다.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행사였지만,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위법 행위다. 윤석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게 우선돼야 한다.

다음은 동조세력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보여진 정치권의 행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린 공무원, 국회의원에게 권력을 위임한 게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정치를 하고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할 권한을 위임한 거다. 그런데 오만한 몇몇이 권한이 아닌 권력을 휘둘렀다. 윤석열과 내란 동조 세력들은 결코 민주주의자들이라 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반민주주의 세력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한 우리 사회 토양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짚어봐야 한다. 절차적, 제도적 민주주의가 아닌 일상의 민주주의가 지켜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

이를테면 여성이 일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살펴볼 수 있다. 여성이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적인가. 머리카락이 짧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라 한다거나,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는 폭력이 행사되는 2024년의 대한민국을 살았고, 그게 계엄 사태로까지 이어진 거다.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집권 초기부터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심지어 생태와 환경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약자들이 전방위적으로 공격받았다. 일상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면서 반민주 세력들이 발효하기 쉬운 토양이 됐다.

Q. 대구·경북 지역이 유독 크게 기여한 게 있다고 보는가?

대구·경북은 내란 동조세력을 키우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 지역은 일당 독재 체제로 정치권력의 변화 없이 이어졌다.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 할 정도로 내란 동조 세력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왔다.

하지만 이건 결과다. 대구·경북에 내란 동조 세력을 키워온 건 정치인 스스로다. 정치인들이 대구·경북에 투자하지 않았고 지역을 나눠먹기 한 과거의 구태의연한 정치를 답습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우리 지역에도 많은 시민이 투표하고 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찍을 사람을 내놓고 투자를 해라. 그리고 돌을 던져라’라고 말하고 싶다.

선거제도 개혁이나 비례대표제 개혁을 말하는 정당은 없다. 그런 요구를 받을 때마다 거대 양당이 입을 모아 과거로 회귀하지 않나. 대구·경북을 콘크리트로 키운 책임은 정치권력에 있다는 사실이 더 조명받아야 한다.

Q. 내란 사태를 지나오며 목도한, 혹은 강화됐다고 보는 우리 사회 문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온갖 안 좋은 게 튀어나왔다. 우선 특권의식의 발로다. 그동안 권력자들은 국민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특권을 발현했을 것이다. 우리는 추측하면서도 ‘설마’하는 생각에 눈감아줬다. 하지만 내란 사태로 권력자들은 특권의식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검찰의 특권의식을 우린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또한 지금, 민주주의나 인권의 가치가 시민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학교 정규교육으로 배운 것, 인권운동가나 활동가가 목숨 걸고 쌓아 온 가치가 아닐지라도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욕설을 한다거나, ‘죽어라’라고 서슴없이 말한다거나 하는 건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는 거다. 민주주의, 인권 등 우리가 지켜 온 가치가 실종된 반면, 우리가 인간답지 못하다고 생각한 가치가 발호되는 것 또한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안 좋은 것 중 하나다.

마지막으론 극우 세력의 준동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방치할 순 없다. 우리 사회가 극우세력과 어디까지 공존하고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선을 긋는 작업이 필요하다. 공공의 선을 긋고 위법 행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들의 활동 범위를 축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

Q. 내란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우리 사회 과제는?

여성단체에서 일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지원 업무를 한다. 이 경우 해결 프로세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피해자 보호, 두 번째는 가해자 처벌과 책임자 처벌, 세 번째는 재발 방지다. 내란 사태의 해결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법을 개정하고 보완해야겠지만, 핵심은 그 법을 악용하는 사람의 문제다. 위법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중요하다.

내란 사태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대외신임도가 하락했다. 4개월간 국민이 입은 피해를 어떻게 보상해 줄 건가. 다음 정부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가 선거운동 과정에 2030 여성을 지우는 발언을 한 일이 있었다. 보수를 천명하며 우클릭하고 집토끼보다 산토끼를 잡는 과정의 정치공학적 발언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국민을 보호할 위치에 있는 인물의 말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실리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전망할 단초가 된다. 여전히 피해자 보호는 되지 않고 정치권력만 작동하고 있다. 표 계산만 하는거다.

다음은 가해자 처벌이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하나 나왔다. 윤석열은 지금도 조사 과정에 온갖 특혜를 받고 있다. 무수히 많은 내란 동조 세력을 처벌할 수 있을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발방지 대책이 가장 중요하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예방교육이나 전수 조사를 실시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사실 일상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가치를 어떻게 세울 거냐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여러 방안이 있지만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교육의 시작은 단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린 과거에 단죄의 역사를 갖지 못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고 5.18 민주화운동을 폭도라 말하는 이들에게 표를 줬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교육이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이 나왔지면 그 대척점에 선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위법, 불법 행위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란 신호를 줘서 단죄의 역사를 만드는 게 대척점에 선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