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삶과 동행하는 우리가 당당했으면”

대구·경북 장애인활동보조노조 준비위 100여 명 모여
수가 인상, 노동시간 줄이기 강요 중단 등 요구
장애인단체, “정부가 공공성을 확보하고 예산 확대로 문제 해결해야”

15:52

“장애인 이용자와 동행하는 우리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고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의 삶과 동행하는 우리의 노동이 정당하게 대우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장애인 활동보조 노동자 이혜숙(59) 씨

21일 오전 11시 대구·경북 지역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들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 대구·경북장애인활동보조분회준비위(준비위)가 대구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 활동보조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했다.

2005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는 2007년 ‘장애인 활동 보조제도’로 정식 도입됐다. 2011년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로 확대된 후, 2012년부터 중앙 정부가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80여 개 중개기관, 6천여 명이 일하고 있다.

10년 전 2008년 당시 시급은 최저임금(3,770원)의 두 배인 7,000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올해는 9,240원이다. 중개기관 수수료 약 25%를 떼면, 약 6,93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6,470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준비위는 주휴수당까지 포함할 경우 최저시급보다 834원을 못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준비위는 중개기관에서 벌어지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연장수당이 발생하지 않도록 1시간당 10분 휴게시간을 적용하거나, 휴일수당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휴일을 대체휴일로 적용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05년 시범 사업 당시부터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한 이옥춘(55) 씨는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데도 근무시간 1시간에 10분씩을 떼어 간다. 쥐꼬리보다 못한 월급이다”며 “이용자가 언제 어떻게 필요로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대기 상태라 쉬는 시간이 따로 없다. 쉬는 시간이라고 해도 쉰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정경애(35) 씨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정 씨는 뇌병변장애 3급으로 월 30시간 서비스를 지원받는다. 중개기관에서 1시간당 10분 휴게시간으로 책정하는 것을 안 뒤로는 긴 머리를 잘라버렸다.

▲한 활동보조인이 대구의 한 중개기관으로부터 받은 월급명세서

정 씨는 “한 달에 30시간 서비스를 이용하는 저는 활동보조 휴게시간으로 한 달에 5시간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중개기관이 근무시간에서 휴게시간을 빼는데, 만약 휴게시간을 제가 주지 않는다면 이 뜻은 제가 활동보조인의 노동을 착취했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거잖아요”라며 “저에게는 너무 부족한 30시간마저도 침해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면서도, 노동 착취를 하게 만든 나 자신에게 실망했고, 활동보조인에게도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발언하는 정경애(35) 씨와 원고를 들어 주는 활동보조 노동자 이정재(53) 씨

장애인 활동보조 업무가 아닌 집안일을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10년 째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는 이혜숙(59) 씨는 “우리가 일하는 동안은 내가 없는 시간이다. 보람을 느낄 때도 많지만, 활동 지원 일을 하면서 이용자 외에 가족들의 빨래와 식사, 설거지까지 해달라는 경우도 많다”며 “중개기관에 호소해 봤지만 참고 일해달라는 말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 결성한 준비위는 올해 하반기 정식 노조 출범을 앞두고 있다. 현재 100여 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준비위는 이날 문재인 정부에 ▲활동보조 최저임금 보장법 제정 ▲활동 지원 수가 인상 ▲정부의 장애인 활동보조인 직접고용 ▲처우 개선비(장기근속수당, 식대, 교통비, 상여금, 명절휴가비 등) 지급 등을 요구했다.

또, 중개기관에 ▲활동보조 휴게시간 확대 산정으로 노동시간 줄이기 중단 ▲노동시간 줄이기 강요로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권 침해 중단 ▲활동보조인 처우 개선 등을 요구했다.

활동보조 서비스 중개기관은 활동보조 노동자의 처우 문제에 공감하면서,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 활동보조 중개기관 관계자는 “활동보조 서비스가 장애인에게도 중요한 부분인데다가 보조인의 처우에도 공감한다. 지금도 정부에서 지침으로 정한 75% 이상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활동보조 서비스 수가가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본질적인 초점이 복지부의 정책과 예산 문제로 맞춰졌으면 하는 바람이고, 앞으로도 노조나 보조인들과 소통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활동보조 서비스가 도입될 때부터 시장화된 서비스로 만들어지면서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새 정부가 사회서비스 관련해서 핵심적인 방향을 잡아주면 좋겠다”며 “활동보조인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고, 예산을 확대해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