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도 없는 공장, 구미 최초 비정규직 노조 이야기

[서평] '들꽃, 공단에 피다'(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음, 한티재 출판) /홍명교 '오늘보다' 편집실장

18:42

*이 글은 월간 ‘오늘보다’ 2017년 7월 발간 예정인 30호 ‘책보다’에 실릴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도 게재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브레히트가 말했듯, 인류는 알렉산더나 시저, 진시황만을 기억한다. 후세 사람들은 라마의 건축노동자, 만리장성의 미장이들, 비잔틴의 노예들, 스페인 함대의 침몰에 슬퍼했던 이름 없는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지배자의 기록뿐이다. 문명과는 한없이 ‘이질적’이고, 자신의 언로를 갖지 못한 피억압 대중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첨단 미디어를 통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고 찬양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오늘밤 인터넷을 통해 내일 뉴스를 읽으며 ‘자유롭게’ 댓글을 남길 수 있고, 소셜미디어네트워크에서 쉼 없이 흘러가는 토픽들을 움켜쥐고 집단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통치 권력에 의해 ’허락된 한도 안’에서 말이다.

매스미디어와 뭇 지식인들은 ‘퇴진 촛불’ 이후 우리 사회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평한다.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이 ‘위대한 승리’의 행동대장이고, ‘촛불’은 좌절에서 저항과 축제, 그리고 승리를 이룬 ‘완벽한’(?) 서사로 마무리됐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겐 열리지 않은 청와대

26일부터 청와대가 청와대 앞 도로를 24시간 내내 개방하기로 했다. 50년만의 전면 개방이다. ‘열린 청와대’를 구현하고, ‘시민 편의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검문소도 없애고 바리케이드도 사라진다. 5개월간의 촛불 이후 비로소 통치 권력은 ‘열리’고, ‘민주화’된 것일까?

헌데 어떤 이들은 쫓겨나고 있다. 며칠 새 수십여 명의 수십여 명의 비정규직, 하청, 해고 노동자들은 정부종합청사 앞 농성 천막을 빼앗기고, 쫓겨나야 했다. 바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지난 2015년 5월 29일 아사히 사내하청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노조가 만들어진 지 2주 만에 138명이 가입했지만, 얼마 후 170명의 노동자가 무더기 해고됐다. 노조 설립 불과 한 달만이었다.

▲’들꽃, 공단에 피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음, 도서출판 한티재

<들꽃, 공단에 피다>(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음, 도서출판 한티재)는 아사히글라스 구미공장에서 노조를 만들고 해고된 후 2년 넘게 거리에서 저항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스물두 명이 피눈물로 써내린 ‘기록’이다. 이들은 비정규직 16명에 대한 권고사직 강요를 계기로 노조를 만들었다. 박정희 시대엔 섬유업의 중심이었고 외환위기 이후엔 전자산업, 그리고 오늘날에는 비정규직 천국이 된, 구미공단에 세워진 최초의 비정규직 노조였다.

<들꽃, 공단에 피다>는 공장과 작은 이발소, 식당 등에서 일하며, 지극히 사소한 행복을 꿈꿔온 노동자들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놓은 인생 이야기다. 고교 시절 현장실습을 통해 처음 공장에서 일했고, 어딘가에서 어용노조를 경험하며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져봤거나,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극렬한 투쟁을 경험해본 적도 있고, 법은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 여기기도 했지만, 어느샌가 같은 공장에서 만나 함께 일해온 동료들이다. 노조 만들기 전엔 얼굴도 이름도 몰랐지만, 노조 결성 후엔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가 됐다.

22명 하청노동자들의 스물두 가지 사연

필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투쟁’을 말한다. 작은 사업의 실패로 아사히 공장에서 일하게 된 오수일은 대선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지난봄 광화문 광고탑에 올랐었다. 여섯 곳의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수십 미터 광고탑 위에서 27일간 굶으며 농성했었다. 남기웅은 LG 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서 냉장고를 만들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침 조회에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나 해고를 통보했던 사장의 얼굴, 그렇게 동료들이 해고된 날에도 기계처럼 일해야 했던 자신을 온몸으로 기억해낸다. 몇 년 후 그가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깨달은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하청 노동자는 어느 공장엘 가나 똑같은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최진석은 공장에서 먹던 배달 도시락을 떠올린다. 밥이 되고, 국은 짜거나 싱거우며, 김치나 단무지, 멸치 정도로 채워진 도시락은 단가 2500원 짜리였다. “사람 밥인지 개밥인지 구분이 안 갈 때도 많았”지만, “배가 고프니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다.

그가 일한 세정라인은 3교대로 이뤄졌다.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회사는 리드(1개 사내하청업체를 총괄하는 현장 관리자로 보인다)를 불러 욕했고, 리드는 조장들을 불러 욕하고, 조장은 조원들을 불러 욕했다. 목표보다 높은 수량을 해낸 조는 칭찬을 받았지만, 다음 달엔 목표량 자체가 올라갔다. 초단위로 물량 생산 시간을 체크했고, 생산시간을 단축하면 목표량은 늘어났다. 노동력을 극도로 착취하기 위한 ‘칭찬’과 ‘시계’였던 셈이다.

▲사드배치 철회 성주 촛불집회에 참석해 몸짓을 하고 있는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몸짓패 허공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노조 만들어서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노조에 가입한 이영민은 노래패 멤버가 됐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아 시작한 노래패지만, 과정이 쉽진 않았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몸짓패 ‘허공’의 멤버인 장명주 역시 춤 한 번 배워본 적 없지만, 지금껏 투쟁해온 시간만큼 몸짓패 활동에 대한 애정과 꿈도 생겼다. 그는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이 어디서든 공연을 요청하면 달려가 연대한다. 그러면서 힘도 얻고, 사업장과 상황이 달라도 함께 ’연대’하는 기쁨도 배워왔다.

글들에서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고백이 있다면, 노조를 만들기 전에 가졌던 강한 편견, 혹은 이전의 노조 경험이 남긴 깊은 상처다. 이런 편견은 믿음직하고 책임감 있는 지회장을 통해 깨졌고, 상처는 노조를 만들고 동료들과 나눈 우애로 아물었다. 물론 이들의 투쟁은 결코 쉽지 않다. 가족들과의 불화, 생계에 대한 극심한 위협, 새벽 3시에 일어나 투잡을 뛰어야 하는 현실, 노동자보단 자본의 편만 들어온 구미시와 노동부, 경찰 등의 철저한 무관심과 탄압.

그럼에도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지회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사업장을 넘어 국경마저 뛰어넘는 연대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찾아 묵묵하고 굳건하게 버티는 조합원들의 헌신 때문이다. 이런 한땀 한땀의 애정과 땀방울이 책의 행간 곳곳에 스며 있다.

벼랑으로 몰린 노동권 반영하는 미시사

어떻게 보면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좁게는 2000년대 이후 몰락한 노동권의 오늘, 넓게는 구미지역 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한다. 차헌호 지회장은 “이십대 때는 정규직으로 일했고, 삼십대에는 폐업으로 직장을 잃었으며, 사십대에는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가 됐”다. “이삼십대는 섬유산업에서, 사십대는 전자산업 공장에서 일했”다. 다른 노동자들이 털어놓는 삶 역시 노동조합을 했건 하지 않았건,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려왔음을 방증한다.

요컨대 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은 ‘고통분담’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며 정리해고제 도입,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나아가 구미시에 집중돼 있던 섬유산업은 점차 후퇴했고, 대신 전자산업이 증대한다. 2000년대 들어선 섬유산업과 디스플레이 관련 산업이 구미를 떠나고, 구미공단의 공장들은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재편된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고용형태가 변화하니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 하나하나가 급변했다. 꿈이 무너지고, 희망이 희미해졌다. 바닥을 향한 경쟁이 일상화되고, 냉소와 체념이 삶을 지배했다. 그것이 노조를 만들기 전까지의 아사히글라스 공장의 공기였다.

<들꽃, 공단에 피다>의 1부와 2부가 노조 결성 직전 개인들의 삶과 결성 이후 질긴 투쟁을 돌아본다면, 3부는 이들 곁에서 함께 연대하거나 이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밝혀온 기자, 노무사, 활동가 등이 아사히 투쟁을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의 톺아보기다. 당사자들의 진솔한 고백으로 모인 스물두 개의 조각들을 여러 차원의 궤로 엮은 셈이다. 따라서 이 책은 순수한 ‘구술’을 넘어선다. 사회과학적으로 엮고, 제도적 쟁점을 날카롭게 찌르며, 이 대량해고 사태 뒤에 숨은 권력의 역겨움을 폭로한다.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인 노동의 모순을 묵직하게 고발한다.

▲청와대 인근에서 농성을 진행했던 투쟁상업장공동행동. [출처: 투쟁사업장공동투쟁위원회]
광장 촛불은 정권을 바꾸었고, 많은 이들에게 승리의 기억을 안겨줬다. 무소불위 권력처럼 느껴졌던 박근혜 정권의 실체를 드러냈고,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결코 작지 않은 성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촛불의 꿈이 이뤄지진 않았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행했고 그가 스스로 반성한 바 있는 반노동 정책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 행위들에 비판해선 안된다는 식의 이해하기 어려운 ‘서사’와도 대결해야 한다. 그것은 통치 권력이 된 문재인 정권에 무언가를 요구하고, 저항하는 일을 애써 모른 척하거나, 심지어 ‘적’으로 돌리는 태도다.

2017년의 Battleship Island 군함도, 아사히글라스

아직 우리 삶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청와대엔 ‘멀쩡한 통치자들’이 입성했지만, 무료 노동, 끊임 없는 야근, 성과를 위한 무한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의 일터엔 민주주의가 도래하지 않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곳곳에서 일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들만이 아니라 재벌 권력과 갖가지 이해관계를 지닌 정치 권력이 둘러싸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오늘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가하고 있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치졸한 공격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기존의 노동자운동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괄하거나 대변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민주노총 등을 ‘과격분자’로 규정해 코너로 몰고, 노동자운동의 시민권을 박탈하기 위해 애쓴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가 재벌 권력의 이해관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왼편과 아랫물에서 끊임없이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배제’가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힘을 만들 수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대량 해고된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노조를 인정받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를 나라답게” 할 수 있다.

반면, 며칠새 종로구청이나 경찰이 보인 행태처럼 하청 노동자들의 저항을 짓밟거나, 민주당 부대변인 이재성처럼 왜곡하고 막말을 내뱉는다면, ‘나라다운 나라’라고 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되려 재벌 권력이 바라는 모습에 가까울 뿐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가 있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하청, 비정규직, 계약직,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조합 하기 어렵다면 이 헌법은 짓밟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사히글라스는 일제 시절, ‘군함도’를 만들어 조선에서 온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한 전례가 있는 미쓰비시그룹이 만든 기업이다. 요컨대, 오늘날 진짜 ‘군함도’는 영화관이 아닌 구미공단에, 정부종합청사 앞 농성장에 있다. 그들은 ‘승자’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자들이 처한 삶의 진실은 보수언론 등 승자의 기록이 아닌, 싸우는 노동자들의 절규와 기록에 있다.

“누가 일곱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건설했던가? 누가 몇 차례 파괴된 바빌론을 일으켜 세웠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브레히트의 질문에 우리는 여전히 답하지 못한다. 훗날 우리가 이 허망한 질문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름없는 시민들의 ‘말’을 듣고, 또 ‘말’하게 해야 한다.

묻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가?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왜 울부짖는가? 이 책에 그 모든 답이 담겨 있다.

▲지난 5월 29일 구미 아사히글라스 농성장 앞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