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얘들아, 어린이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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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어린이집 상담철이다. 딱히 궁금한 것도 바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아이가 잘 지내는지, 친구 관계는 원만한지 평소에 묻고 싶었던 것을 확인할 좋은 기회다. 아직 어린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특히 더 궁금하다. 다행히 별다른 이야기는 없다. 그래도 선생님의 ‘잘해요’, ‘똑똑해요’라는 이야기에 내심 기분이 좋다. 물론 다른 아이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모두 첫 돌 즈음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내는 유급 육아휴직이 끝나는 타이밍에 경제적 이유에 쫓겨 출근해야 했고, 동시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다. 사실 맡겼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부모가 할 일을 남에게 떠맡기는 기분이었다. 괜히 어린이집에 눈치 보이고, 아이에게는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심정은 늘 ‘빚쟁이’ 마음이다.

첫째 아이는 유달리 힘들어했다. 안 간다고 떼쓰기는 일상이고, 어린이집 앞에서 30분 이상 울고불고 난리 피우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발가벗은 채로 옷을 안 입고 버티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화가 나고 아이는 아이대로 사나워졌다. 성질이 나서 씩씩거리며 어린이집에 억지로 보내고 나면 내 속도 뒤집히고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오후에도 늦을까 부랴부랴 데리러 가면 신발장에는 우리 아이 신발만 덩그러니 있었다. 아이는 서러움에 북받쳐 울면서 뛰어나왔고, 덩달아 같이 서럽고 미안했다. 꼴찌만은 면하게 해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만만치 않았다. 아이도 부모도 못할 짓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버틸 뿐이었다. 그냥 우리 아이가 예민하고 별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첫째 녀석이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많이 무서웠다고 한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때리기도 했다는데 정도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 선생님이 무서웠다면서 어린이집과 선생님 이름까지 생생히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이가 상당한 공포감을 느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 어린이집 선생님 중에 가장 활달하고 싹싹한 사람이었는데,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당시에도 아이가 ‘혼났어’, ‘맞았어’라는 이야기를 가끔 했지만, 애가 하는 말을 다 믿을 수 있겠냐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 맡기는 것도 미안한데 별난 학부모가 될까 싶어 싫은 소리 한 번, 내색 한 번 안 했는데 확인이라도 해볼걸. 그렇게 무서워서 가기 싫었던 아이를 억지로 떠밀어 넣었으니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

▲[사진=대구교육청]
다행히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 했다. 기간이 좀 필요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고 들어가 버렸고 활짝 웃으며 나왔다. 어린이집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이 없었다. 짜증을 많이 안 내고 애교가 많아 선생님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가끔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괜히 어린이집에 안 가려고 떼를 부릴 때가 있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잘 따라줬다. 고맙고 대견한 일이다. 그렇게 첫 돌도 되지 않아 어린이집에 보냈던 아이가 이제는 세 돌이 다되어 간다. 어린이집 활동사진첩 한 장, 한 장에 남겨진 아기에서 소년이 커가는 아이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그래도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은 있다. 한번은 둘째 아이 어린이집에서 가을이면 매년 인근에 있는 수목원 국화축제 가족나들이를 하는데 작년에는 아이 혼자 덜렁 보냈다. 담임선생님은 배려한다고 “아버님, 시간 안 되시면 안 오셔도 괜찮아요. 제가 데리고 다니면 돼요~”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단체사진에 가족 없이 혼자 참석한 아이는 불행히도 우리 아이밖에 없었다.

사실 시간은 되었지만, 낮에 아빠 혼자 어린이집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용기를 조금만 더 냈다면 아빠와 같이 단체사진을 찍었을 텐데 말이다. 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두고두고 후회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설움을 주지 않으리라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매번 한다.매일 아침, 잠도 덜 깬 아이와 등원전쟁을 한다. 이제는 웬만하면 억지로 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물론 쉽지 않다. TV도 보여주고, 책도 읽어 준다. 장난감도 손에 쥐여 주고, 달라는 간식도 준다. 이게 다 “이제 어린이집 가자.” 출동을 위한 사전 작업이다. 기분을 잘 맞춰준 날은 흔쾌히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한다. 괜히 기분 상하게 해서 애나 어른이나 하루의 시작을 꿀꿀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어린이집 입구에서 눈을 마주치며 “재밌게 놀아~” 한층 높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아이가 기분 좋게 들어가면 내 기분도 좋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또 한다. “죄송한데, 누나 머리 좀 묶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빠의 육아 중 가장 힘든 부분인 딸아이 머리 묶기도 그렇게 완료했다. 솔직히 엄마보다 선생님의 머리 묶는 솜씨가 훨씬 낫기도 하다. 기분 좋게 어린이집에 간 날은 아이에게 덜 미안한 ‘빚쟁이’가 된다. 그렇게 아이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씩 갚아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