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북한을 4차산업혁명 시험대로 만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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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기운이 한껏 무르익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회담에서 북미 정상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명시적으로 합의하고 약속했다. 70년 가까이 쌓인 갈등과 반목의 흔적이 한순간에 일소될 수는 없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그래픽=천용길 기자]

이러한 흐름에 맞춰 남북교류와 협력을 위한 구상과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금처럼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실현 가능성이 높았던 적은 유례가 없었던 만큼, 앞으로 남북 교류와 협력에 거는 기대는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교류와 협력 방안이 나오는 현상은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북한을 4차산업혁명 전진기지로 만들겠다고?

남북화해, 평화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전환기에도, 오랜 기간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성장제일주의와 개발주의 망령은 ‘북한특수’를 타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일제히 ‘남북경협주’, ‘대북관련주’라 불리는 주식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들 주식은 김정은과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 북미나 남북 협상의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강세와 약세를 반복하고 있다. 그뿐이랴. 휴전선 인근 부동산값이 연일 폭등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기북부 신도시에서는 벌써 부동산 ‘웃돈거래’가 성행하고 있으며, 강원도 군사보호시설 인근 지역에서는 개발제한구역을 풀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북 교류와 협력을 구상하고 제안하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동일하게, 아니 더 극악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발표되는 남북 협력 구상과 제안 대부분은, 북한을 산업 수준이 낮은 저개발 국가로 보거나 낙후한 투자 대상국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북한 사정과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북한을 활용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며칠 전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 ‘[이광형의 퍼스펙티브] 기득권 저항 적은 북한, 4차산업혁명 전진기지로 만들자’(7월 16일자)는 이 같은 인식과 태도가 얼마나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결정판이었다.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리셋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이라는 긴 이력으로 자신을 소개한 이 교수는 “북한은 아직 3차산업혁명이 완성되기 이전의 산업사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4차산업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테스트 베드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득권의 저항이 적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며 특이점 시대(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는 기술시대)의 남북한 개발 협력에 관한 단계별 구상을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득권 저항 적은 북한’이라는 기괴한 인식도 문제지만, 이 근거를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로 들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애써 해석하자면, 북한은 산업이 낙후한 저개발 국가이기에 어떤 형태의 산업체계가 이식되더라도 쉽게 안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리고 북한 기득권층의 저항이 적을 것이기 때문에 4차산업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테스트 베드(기술 시험장)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라고 한다.

‘테스트 베드’라니. 결국 우리에게 북한은 기술과 자본의 시험장일 뿐인가? 통일을 염원한다는 이 교수에게 북한은 “세계최초의 5G 통신 테스트 베드”이자, “각종 센서와 결합한 스마트 도로”를 만들 땅이며, “자율주행자동차 시대”에 “전기차 충전소와 수소 충전소”를 설치할 공간에 불과하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에서 이렇게 마음껏 활개를 쳐도 북한의 기득권층은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왜? 기득권층은 더 잘살게 될 테니까.

물론 이 교수와 협력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연구진 60여 명이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깔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려 그가 칼럼에서 밝힌 바대로 그들은 “민족적 염원의 발로”에 의해 “통일 준비와 4차산업혁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한의 과학기술연구자들은 북한을 동등하게 보고 있지 않다. 나아가 이들은 북한 인민을 ‘살아있는 인격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사진=pixabay]

이러한 발상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이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만난다면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강국임을 자부하며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앞둔 남한이 국민소득 146만원에 불과한 북한과의 협력, 그것도 테크놀로지 분야에서도 ‘윈-윈(Win-Win)’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까. 희토류만 20억톤이 매장되어 있다는 북한의 지하 자원 개발이 아니고 말이다. (중략)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시험 운행 중이던 우버 자울주행차가 보행자를 치는 사망 사건을 보면 평양에서 자율주행차 시대를 더 빠르게 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여파로 엔비디아, 누토노미 등이 자율주행차 시험을 중단했고 회의론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 류현정 IT조선 본부장, ‘새 남북 협력 모델로 4차 산업혁명을 제안한다면’(조선비즈 4월 6일자)

위 칼럼의 필자는 남북 경제 격차는 북한과 협력에 커다란 장애 요인이며 테크놀로지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점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북한이 보유한 자원만이 남북협력의 유일한 장점일 수도 있다는 맥락을 넌지시 던진다. 자본의 논리대로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에 펼치는 필자의 논리는 끔찍하다. 우버의 자율주행차 사망사고를 보면서 평양에서 자율주행차 시대를 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사고 여파로 기술회의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졌음을 우려하며, 애초부터 자율주행에 적합한 도로와 인프라를 평양에 깔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북한이 자율주행차 교통 시스템의 ‘퍼스트 무버’로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모순이 북한에서 반복되지 않게 하자?

앞서 소개한 칼럼에서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는 “한국의 모순이 북한에서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제안을 던진다. 유일하게 공감이 된 언명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였다. 그는 “한국에서 4차산업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북한에는 만들지 않게 조언해 주어야 한다. 지나치게 강력하게 보호하여 빅데이터 산업을 옥죄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의 우를 범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 모순은 무엇일까. 그의 진단에 따르면, 산업과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있는 사회다. 빅데이터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지나치게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가 바로 한국(남한)의 모순이다. 그가 꿈꾸는 통일 시대를 맞이하는 남북 협력은 자본과 기술의 자유로운 이식일 뿐이다.

지난 5월 16일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남북협력에 관한 주제 발표를 맡은 임정수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가 한 말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산업 기반이나 규제 등 유산이 없는(legacy free) 북한의 경제 상황이 오히려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북한을 4차산업혁명의 시험 무대(테스트 베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오래 전부터 얘기됐지만 현실화되지 못한 스마트시티를 북한의 도시에 구현할 수 있고, 남한에서는 규제 때문에 불가능한 원격 진료나 인공지능 의료 시스템도 북한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조선비즈 5월 17일자) 기술과 자본의 기반이 없다는 것이 유산이 없는 것으로 지칭될 일인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남한에서는 규제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을 북한에서는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남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제에는 타당성이 분명 존재할 텐데, 북한사회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전혀 적용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이를테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빅데이터 규제, 안전과 윤리적 책임 문제가 남아 있는 인공지능 의료 시스템의 제약이 왜 북한 사회에서는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하는가. 북한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인가.

4차산업혁명은 남북 협력을 구상하는 최근 논의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화두다. 정부나 민간 혹은 심지어는 일부 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낙후한’ 북한에 ‘4차산업혁명’의 빛이 내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북한에 이식하여 4차산업을 발전시키자는 내용이다. 이들은 남한처럼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도 북한에서는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면 좋다는 식이다.

그러기에 북한은 최적지인 셈이다. 이러한 구상에는 북한에 사람들의 의사나 태도, 혹은 정서는 하등 상관이 없거나 필요치 않다. 어차피 그들도 잘살게 될 테니까.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남한의 개척자들은 북한이라는 미지의 땅에 황금알을 낳는 ‘4차산업’을 건설하고 싶은 것이다. 그 옛날 유럽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이 그러했듯이 북한은 이들에게 기회의 땅, 신세계인 셈이다.

무엇이 평화의 길인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한반도에 찾아온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는 더없이 소중하다. 때를 놓치면 다시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를, 하늘이 내린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평화의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의 모습이 미덥지 않거나 몹시 불길하기까지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이런 우려는 앞서 살핀 바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북(北)을 대하는 그릇된 태도와 방식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녹색평론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나온, 『녹색평론』 161호에 실린 두 편의 글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반도 평화의 길’이라는 특집에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멈춰서는 아니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남북교류의 출발점은 농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글에서 김 전 장관은, 친환경 유기농을 바탕으로 하는 남북 농업협력과 이를 통한 경제협력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 기반을 다져나가는 길이라 힘주어 밝히고 있다.

같은 호에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은 ‘제대로 된 북한 발전 계획’이라는 글을 통해, 남북협력과 북한 발전 계획의 구상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안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북한의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이득을 얻게 될 기업과 연계된 컨설팅회사나 이들과 부패사슬로 연결된 정부기관의 제안은 무엇이 되었든 폐기되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개방과 협력이 진행될수록 우려가 되는 자원, 노동력, 에너지, 개발계획, 금융과 자본, 교통, 교육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사안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전하고 있다. 그의 견해대로라면 앞서 제시한 ‘4차산업혁명’과 같은 기술우위론에 기반한 자본과 기술의 북한 사회 개발 논리는 결코 허용돼서는 안 되는 일이다.

두말할 것 없이 ‘평화’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그 길 위에 어떤 난관이 놓여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가 꿈꾸는 평화는 남(南)이 북(北)을 지배하는 방식으로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북(北)은 남(南)의 자본과 기술이 제멋대로 해도 되는 ‘테스트 베드’가 아니다. 세상 누구도 그렇게 후안무치한 짓을 저지를 권리를 부여받지 않았다. 실체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기술전체주의를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4차산업혁명론’을 들먹이며 북한 사회를 착취하고 지배하려는 기술결정론자들은 당장 그 시도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南)과 북(北)의 인민들은 평화로 위장한 기술전체주의에 결코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