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5부제’의 사각지대 이주노동자…“사업주 대리 구매 허용해야”

성서공단노조, 매주 일요일 마스크 나눔...하루 1,500장 나가
건강보험 있는 이주노동자도 일 하느라 약국 구매 어려워
김용철 소장, "이주노동자 마스크, 사업주 대리구매 허용 해야"

12:07

지난 22일 오후 1시 대구시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앞, 이주노동자들이 마스크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섰다. 회사 동료와 함께 오거나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오기도 했다.

▲마스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이주노동자들

성서공단노조(STU)는 지난 15일부터 매주 일요일 성서산업단지 앞에서 이주노동자에게 ‘평등 마스크’ 무료 나눔을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 무료 진료 시간과 상담 시간에 노조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나누던 것을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마스크를 주기 위해 장소를 야외로 옮겼다. 지난 9일 정부가 공적 마스크 5부제를 발표한 후, 이주노동자들은 마스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증과 외국인 등록증이 있는 외국인만 마스크를 살 수 있고,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마스크를 살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얀(40) 씨는 동료 3명과 함께 마스크를 받으러 왔다. 그는 일회용 마스크에 방한용 마스크까지 두 겹을 꼈고, 비닐장갑도 끼고 나왔다. 얀 씨는 열 체크부터 했다. 노조 활동가가 열 체크를 하고, 온도계 숫자를 직접 보여주며 확인했다. 손 소독까지 마치면 가장 먼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다.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몽골 등 10개국 언어로 번역된 코로나19 안전 수칙을 여러 장 챙겨준다. 활동가는 회사, 기숙사, 친구들에게도 나눠주라며 당부한다.

▲마스크를 받기 전 열 체크를 하는 성서공단노조

얀 씨는 KF94 마스크 1장, 일회용 마스크 5장, 손 소독제를 받아 들었다. 그는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된 후 마스크를 한 번도 살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다이소나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평일에는 일하기 때문에 약국에 사러 갈 시간이 없고, 주말에는 문을 연 약국을 찾기 힘들었다. 회사에서는 지난 21일 처음으로 마스크 2장을 나눠줬다.

“회사에서 마스크 2장을 줬어요. ‘왔다 갔다 하면 안 돼요’, ‘친구 만나면 안 돼요’라고 했어요. 옛날에는 다이소랑 우체국에서 샀는데 약국에서는 못 샀어요. STU에서 준다고 해서 너무 좋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 얀 씨

이날 노조가 준비한 KF94 마스크 400개, 일회용 마스크 1,500장은 금방 동이 났다. 2시가 다 되어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나눠주는 성서공단노조

김용철 성서공단노조 상담소장은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마스크를 살 길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하라는 권고안을 내렸는데도 2주 동안 바뀐 게 없다”며 “가가호호 방문해 나누어주는 마스크도 이주노동자들은 제외됐다. 이주노동자들은 방역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주가 마스크를 대리 구매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다행히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 젊고, 회사에서 이동을 금하고 있어서 감염이 적을 수도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주지 않는 이상 마스크를 구할 방법이 없다. 장애인, 노인처럼 사업주가 마스크를 대리 구매해 나눠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마스크를 받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다음 주 일요일에도 꼭 와요”, “친구들도 같이 와요”라고 당부했다.

▲10개 국어로 번역한 코로나19 안내문

스리랑카에서 온 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 차민다(40) 씨는 “처음에 대구에서 코로나19가 위험하게 일어날 때 친구들이 답답한 마음, 무서운 마음이 컸다. 무서워서 출국한 친구들도 많다”며 “베트남 친구들이 가장 많아서 서로서로 안내해주는데,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친구들은 한국말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국가별로 안내를 만들고 마스크를 나눠주는 행사를 준비했다. 너무 기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몽골리안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짜뉴스였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게 맞나’ 너무 답답하다. 정확한 정보가 나오면 좋겠다”며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벌러 오는 거지만, 누구나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 이 순간에는 누구누구를 차별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게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마스크를 받기 위해 모인 이주노동자들

23일 오전 11시 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대구경북연대회의,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대구시의 인종차별적인 방역 대책을 규탄한다”며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대구시 방역 대책에 재난에 취약한 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이었나.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며 “정부와 대구시는 인종차별적인 방역 대책과 사후 수습책을 중단하고, 보편적 권리에서 배제된 이주노동자, 이주민, 수많은 소수자에게 권리가 고르게 전달되도록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