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문화원 폭파 빌미 투옥됐던 2명, 37년 만 재심에서 무죄

37년 만에 무죄받았지만···피해자 2명 모두 이미 사망

17:16

법원이 대구미문화원 폭파 사건을 빌미로 억울하게 투옥된 민간인 2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37년 만에 나온 무죄 판결이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대구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이윤호)는 5일 오후 2시 故이경운(1912~1990), 故이복영(1929~2011) 씨의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재심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각각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 이후 이를 빌미로 불법구금됐고, 해당 사건과 무관하게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경운, 이복영 씨 모두 불법 구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았고, 불법 구금 기간에 수집된 증거 또한 위법수집증거로 증거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영장 없이 수사기관 임의동행으로 구금됐고, 이후 영장이 발부됐다 하더라도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받은 자백이나 증거 동의 등은 유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유죄 판결 증거로 사용된 목격자의 진술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다른 증거 또한 해당 진술자가 임의성 없는 상태에서 진술했다는 등의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로 판단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4월 재심재판 기일에서 故 이경운 씨에게 원심 선고 형량인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형을 구형했고, 故 이복영 씨에게는 무죄를 구형했다.

이경운, 이복영 씨는 각각 대구시 중구 공평동에서 의료품 판매점과 중구 동성로에서 골동품·고서화 판매점을 운영하던 상인으로 1983년 9월 말경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이후 공안 당국에 영장 없이 연행됐다. 폭파 혐의가 입증되지 않자 이들은 임시 석방됐다.

그러나 다시 북한을 고무찬양했다는 이유로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영장 없이 연행됐고, 1984년 2월 이경운 씨는 징역 4년·자격정지 4년 형을, 이복영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쌍방항소 후 항소심재판부는 1984년 7월 이경운 씨에게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자격정지 3년, 이복영 씨에게 징역 10개월·집행유예 1년·자격정지 1년 형을 선고했다. 이복영 씨는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1985년 기각돼 형이 확정됐다.

지난 2019년 10월 1일 대구지방법원은 박종덕(59), 함종호(61), 손호만(59), 안상학(57), 우성수(사망) 씨에 대한 재심 결과, 이들 모두에게 적용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죄는 면소 판결하고, 박종덕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죄는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