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이야기] (1) 장마 / 황규관

10:44

이번 장마에는 안양천이 붉은 물로 넘실댈까, 지금 온다는 태풍은 둑에 줄지어 선 나무 중 몇 그루를 부러뜨릴까, 하는 기대를 해마다 한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말라가고 부러진다. 내게 심술이 가득해 자연재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언제인가부터 장마가 와도 비가 내리지 않고 태풍이 와도 변죽만 울리는 것이 이상하게 아쉬웠다. 물론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남해안은 그 피해가 있어 왔지만 그것은 내게 언제나 ‘뉴스’였지, 실질적인 두려움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간밤에 지나간 태풍이 집 근처에 있는 골프 연습장 철 기둥을 반으로 꺾어놨을 때, 나는 가학적인 기쁨을 느꼈다.

일곱 살 무렵 장맛비에 전주천이 불었을 때, 떠내려오는 돼지도 보았고 부서진 오두막도 본 적이 있다. 전주천은 내가 다섯 살 때 동생을 삼킨 곳이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지만 다행히(?) 동생이 물에 빠지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길모퉁이를 돌아 잠시 숨을 멈추고 동생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자 동생은 없고, 동생을 냇물에 떠밀었다는 악동 녀석들만 있었다. 분 물이 채 빠지지 않았던 때였다. 아마 그해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면, 아니 그즈음에 내가 동생을 거기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아마 동생은 무릎이 깨지거나 팔꿈치가 긁혔을 것이다. 그 시간 이후로 기억이 깜깜해졌다가 저녁 무렵에 두려움에 떨며 집에 가자 좁디좁은 마당에 가마니로 덮은 동생이 있었고, 경찰관이 서 있었고, 무너지듯 주저앉아 오열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지금도 전주천에 가면 오열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경찰관의 말이었는지 떠도는 소문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동생은 오목대 아래쪽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나보다 두 살 아래였으니 살아 있다면 나처럼 오십이 갓 넘었겠지. 가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상상하곤 한다. 아마도 동생과 나는 우애가 좋았을 것이다. 어릴 적에 혼자 노는 외로움도 덜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녀석이 나를 대신해 우리가 살아야만 했던 고약한 환경에 대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녀석을 뜯어말리면서 싸웠을까, 아니면 함께 울고 말았을까. 나 때문에 동생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도 어쩔 수 없이 힘들어지곤 한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동생 얼굴도 떠오르지 않지만 다섯 살 위 누이가 대신 그때를 말해준 적이 있다. 어머니가 며칠을 실성한 듯 우는 게 무서워 자신은 친구 집에 가서 잤다고. 그리고 그때 나는 다섯 살이었다고.

삼례에서 살 때는, 장마철만 되면 삼례들녘이 물에 잠기고는 했다. 동네의 아랫녘에 있던 집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지금은 노인회관이 들어서 있는데, 그 집이 무너지고 나서 다시 집을 올리지 않고 한동안 밭으로 남아 있었다. 그 집이 무너지던 그해 장마 때, 동네 형들은 큰 튜브를 들고 와서 다른 동네 사람들 구조 작업을 하러 갔다. 어른들이 말렸지만 도리어 어른들에게 대들던 고등학교 3학년짜리 영웅들. 거센 물줄기를 거침없이 헤엄쳐 건너오더니 다급하게 튜브를 찾았다. 그러자 그 형의 아버지가 큰소리로 말렸는데, 대뜸, 지금 사람들이 죽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으란 말예요? 하고 늙은 아버지를 쏘아붙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튜브를 들고 다급하게 뒷산 쪽으로 달려가던 벗어부친 등짝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장맛비가 퍼부으면서 밤새 벼락을 치던 어느 여름밤에 나는 잠에 들지 못하고 무서워서 뒤척이기만 했다. 모기장을 바른 뒷문으로 보이는 뒤란이 벼락이 칠 때마다 환해졌다가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군대를 막 제대한 동네 형이 강둑을 걸어오다가 벼락에 맞아 죽은 날 밤이었다. 외양간에서 끄집어낸 소의 배설물과 뒤섞인 지푸라기 덩어리를 두엄더미 위에다 막 퍼 올리는 순간 엄청난 벼락이 쳤다. 나도 모르게 순간 몸을 낮췄다. 남의 집 논에 김매러 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우산을 챙겨들고 회관 앞서 어머니를 기다릴 요량이었는데, 다른 집에서 어머니가 급히 나오시며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손짓부터 했다. 강둑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쓰러진 이의 동생이 신발을 벗어들고 뛰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건네는 우산을 받아들며, 그 형이 벼락 맞은 사실을 말해주면서 내 등을 떠밀었다. 하얀 공포가 어머니 얼굴에 가득했다.

며칠 동안 마을은 슬픔에 휩싸였다. 아들 다 키워놓자 하늘이 데려갔다고 다들 가슴 아파했다. 그 형은 군대를 제대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유머가 많았고, 또 꼬맹이들 놀리기를 좋아했다. 전주공단에 있는 어느 공장의 취직 결정을 듣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유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매사에 느긋했고 낙관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화를 불렀다. 비가 몰려와서 다들 종종걸음을 치는데 혼자 여유를 부리며 강둑을 걸어오다가 벼락이 혁대의 벨트를 때린 것이다. 어머니는 착한 사람은 하늘이 먼저 데려간다고 슬퍼하셨는데, 어쩌면 7~8년 전에 잃은 아들 생각을 하셨을지 몰랐다. 그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분명히 그러셨을 것만 같다. 그 형을 하늘로 데려가고 이틀을 종일 비만 내렸다. 죽음을 모르던 나이라서 그런지 죽음은 언제나 무서웠고 상여만 나가도 속이 울렁거렸다. 벼락이 번쩍번쩍 할 때마다 그 형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장가를 안 갔으니 상여가 나가서는 안 된다는 마을 어른들의 반대에 스물 셋, 넷의 청년들이 맞섰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대신 꽃을 얹지 않기로 타협을 봤다. 죽은 아들을 화장 안 하고 밭 귀퉁이 묻었다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그 아줌마는 자식 무덤을 끼고 살 모양이네. 왜 모르겠는가, 안타까워서 하시는 말임을.

마을을 떠나 도시 생활을 하면서 장마나 태풍은 이제 창밖 풍경이 되고 말았다. 피해 소식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어김없이 흘러나오지만 이제 내 몸에 감기던 두려움도 나를 떠난 지가 오래되었다. 자연은 인자하지 않다는 말도 있으나 우리는 이제 그런 금언도 책을 통해서 배운다. 인자하지 않다는 말은 잔인하다는 뜻이 아니다. 장마나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또 다른 풍요를 주기도 했다. 강물은 풍성해지고 전주 시내에서 흘러나온 이런저런 것들을 싹 쓸어가 맑게 빛났다. 꼬맹이들은 그 강물을 헤엄쳐 건너가서 아직 간신히 붙어 있는 참외 쪼가리들을 주워 먹었다. 두어 개는 헐렁한 속옷 안에 욱여넣고 다시 강을 건넜지만 빨라진 물살에 자꾸 속옷이 벗겨져서 참외를 버려야만 했다. 그렇게 두려움과 또 다른 풍성함을 몸에 둘러주던 장마였다.

정말 한동안 안양천은 역동성을 잃었다. 장마가 와도 비가 내리지 않고, 태풍이 닥쳐도 모두가 안전하니 냇물도 힘이 빠진 모양새다. 있었던 모래섬이 지워지고 새로운 모래섬이 생기는 과정을 나는 알고 있는데, 불었던 물이 조금씩 줄면서 모래 무더기가 만들어지면 그다음에는 푸르스름한 이끼나 곰팡이들이 모래밭에서 뒹굴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자라고 무성해진다. 그다음 해에 내린 비로 모래섬이 다시 물에 쓸려가면 이제는 허리가 꺾인 풀들이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물론 이런 공식이 똑같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치지 않는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작은 것들을 떠올리고는 했다. 반대로 그 작은 것들이 자연을 반복시킨다고 해야 할까. 자연은 이런 반복의 바퀴를 스스럼없이 굴릴 뿐, 다른 뜻을 가지지 않는다. 어쩌면 자연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인간의 자의식이 두려움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말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두려움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악마적인 주술인가? 그 두려움이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고, 또 다른 목적을 노리는 것이라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에게서 얻는 두려움이 사라지자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나는 여기에서 세세하게 그것들을 불러낼 생각은 없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공동체를 만들고 급기야 도시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추방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를 지금 엄습한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시베리아 동토층이 사라지고 있는 데서도 증명된다. 이렇게 우리의 발밑이 붕괴되고 나면 우리는 어디를 딛고 살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빌딩과 잘 짜진 도로망도 결국 발밑이 붕괴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의미의 반대쪽에는 무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찾는 의미는 언제나 허무와 비탄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전을 위해서 밀쳐두지만, 자연은 두려움을 통해 그것을 가르쳐준다.

올 장마는 남몰래 울어도 들키지 않을 만큼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