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9) 탄량골, 박산골의 호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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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연재>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1) 섣달그믐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2) 잠과 밥 / 설날 / 정월 초이틀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3) 피난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4) 청연학살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5) 인정마저 앗아간 학살과 네 번째로 다녀온 저승의 문턱 ①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6) 인정마저 앗아간 학살과 네 번째로 다녀온 저승의 문턱 ②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7) 다섯 번째 저승 문턱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8) 외갓집 / 봄은 왔는데

■ 탄량골, 박산골의 호곡성
군인들은 우리 가족을 죽인 청연에서뿐만 아니라
탄량에서 100명, 박산에서 517명, 기타 노지에서 18명
닥치는 대로 양민을 학살했다
1951년 2월 10일 아침 내동을 떠난 군인들은
신원면 소재지로 들이닥쳤다
중유리, 대현리, 와룡리 주민들을 신원초등학교로 끌고 갔다
대현리, 와룡리 주민 일부는 연행 도중에
탄량골 하천변에 밀어 넣고 학살하였다
중유리 주민들은 오는 길이 달라서 학교로 바로 끌려왔다
탄량골 학살은 생존자인 임분임 아주머니에 의해서 알려졌다
대현리, 와룡리 사람들이 탄량골 앞에 왔을 때
10여 명의 군인들과 마주쳤는데
그 속에는 지서주임과 앞면이 있는 경찰도 끼여 있었다
주민들은 은인이나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는데
그들의 행동은 달랐다
걸음이 더디고 꾸물댄다며
“처치해버리자”고 귓속말을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군인들은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주민들을 탄량골 계곡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주민들 주위를 빙 둘러서더니
군인과 경찰, 방위대 가족들은 나오라고 했다
문동한 씨는 군경가족도 아니면서 손을 들고
가족을 이끌고 나갔다
그때 대현리에 사는 문판대 씨는 손을 번쩍 들고
“대장님, 죽어도 말 한 마디만 하고 죽읍시다. 국민이 없는 나라가 무슨 소용 있소.”
“탕!”
대답 대신 총알이 날아갔다
“탕!”
문 씨의 딸이 맞고 쓰러졌다
동시에 콩을 볶는 듯이 총알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100명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논바닥이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그들은 총살로 그치지 않고 시신 위에 마른 솔가지를 올리고 불을 질렀다
생존자 임분임 아주머니는 옷에 불이 붙었으나
죽은척하고 참고 있다가
군인들이 떠난 다음에 불을 끄고 살아남아
탄량골 학살을 증언하고 군인들의 만행을 고발하였다
문충현 씨는 양부모와 아내가 그 자리에서 희생되었는데
아내는 몸의 앞부분이 다 타버렸다고 그때의 참상을 전한다

▲”군인과 경찰, 방위대 가족들은 나오라고 했다 / 문동한 씨는 군경가족도 아니면서 손을 들고 / 가족을 이끌고 나갔다 / 그때 대현리에 사는 문판대 씨는 손을 번쩍 들고 / “대장님, 죽어도 말 한 마디만 하고 죽읍시다. 국민이 없는 나라가 무슨 소용 있소.” / “탕!” / 대답 대신 총알이 날아갔다” 거창군이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자료=거창군)

탄량학살을 저지른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대대장 한동석 소령은 미쳐 날뛰었다
대현리, 와룡리, 중유리, 주민 8백여 명을
신원초등학교 2개 교실에 감금하였다
또한 권도술, 이방화, 이상재, 이경수, 이창화, 박동운, 이소갑, 이금중 외 2명을 포함,
장정 10명을 차출하더니 학교 뒷산에 큰 구덩이를 파게 하였다
교실에 가두어놓은 주민들을 그곳으로 끌어내
죽여서 파묻을 작정이었다
땅이 얼어서 인력으로는 불가능해서 포기하였다고
권도술 씨가 전했다
그들은 어차피 죽을 것,
자기 무덤 자기가 팔 수 없다며
구덩이 파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실에 감금된 주민들은 추위와 공포에 질려있었고
군인들은 긴 막대기를 들고 들어와
칠판을 쾅, 쾅, 치면서
군가 불러봐라, 인공가 불러봐라, 하며
주로 아이들과 여자와 노인들을 적성분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젊은 여자들을 어디론가 끌고 가서
욕정의 도구로 삼았다
여자들의 흰 광목 치마가 벌겋게 물들었다
권도술 씨는 구덩이 파는 작업을 그만두고 돌아올 때
옆으로 빠져 남의 집으로 들어갔다
빈 가마니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채워가지고
군인들 심부름 가는 척하며 아랫동으로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돌이 갓 지난 조성제는 학교 교실에 부모와 갇혀 있을 때
너무 울어서 시끄럽다고 쫓겨났는데,
덕분에 두 모자는 살고, 아버지는 빠져 나오지 못해 죽었다
탄량골에서 군경가족이라고 죽음을 면한 문홍한 씨 가족은
그 와중에 부인이 아이를 낳으려고 진통을 했다
국군 가운데도 선한 군인이 있어
교장 사택으로 옮겨 사내아이를 순산하였다
그 군인은 밥과 소고깃국까지 가져다주며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며
산후를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
문 씨의 부인은 학살 이후에도
그 군인을 잊지 못한다는 말을 마을 사람들에게 하다가
유족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한날한시에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 교실에서 악몽 같은 밤을 보낸 수백 명의 주민들은
박영보 신원면장과 신원면 지서의 박대성 주임이 나타나자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주민들은 이제 집으로 가는가 싶어 안도했다
하지만 박영보와 박대성은 마을 사람들을 싸늘하게 외면하였다
군인들은 군인과 경찰, 방위대 가족만 나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나가니
웬 군경가족이 이렇게 많냐며 교실 문을 막아버렸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살 길로 갔고
교실에 갇힌 사람들은 추위에 떨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잠시 후, 군인들은 그들을 학교 운동장으로 내몰았다
이제 드디어 집으로 가려나 생각했던 사람들을 박산골로 내몰았다
계곡 위에는 기관총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계곡을 내려다보며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남녀노소 530명이 박산 계곡을 까마득히 메웠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폭음이 터져 나왔다
따다닷! 따르르! 따르르르!
태풍같이 몰아치는 총알은
계곡물을 순식간에 붉게 물들였다
살점이 튀고 피가 솟구쳤다
창자가 터지고 머리가 박살났다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계곡은 피를 안고 흘렀다
군인들의 광란은 계속 되었다
그 많은 사람을 살육하고도
뽑아 놓은 장정들에게 마른 나무를 해오게 하여
나무를 시신 위에 깔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휘발유를 머금은 마른 나무는 517명의 시신을 한꺼번에 삼켰고
살이 타는 냄새가 온 면을 뒤덮었다
아, 그리고는
마른 나무를 해온 열 명의 장정들을 총으로 쐈다
사정거리 안에 있던 장정들이 쓰러졌다
군인 가까이에 있던 문홍준 씨와 신현덕 씨는
군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문홍준 씨와 신현덕 씨는 조상 묘를 명산에 써서 그런지,
운이 좋아서인지,
잠시 전의 끔찍한 살육을 보지 못한 것으로 군인들과 약속하고
군인들의 짐꾼 노릇을 하다가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신현덕 씨는 살육을 지켜본 이후 외지로 나가
다시는 신원 땅에 오지 않고
울산 어딘가에 살다가 작고했다
문홍준 씨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박산골의 살육은 개미 한 마리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총으로 쏘고 불로 태웠지만
그 속에서도 생존자는 있었다
인간의 목숨은 이리도 질겨서
억울한 죽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정방달 씨 총알은 바위가 막아주었다
작은 불은 모래가 막아주었고
큰 불길은 바위가 막아주었다
불이 옷에 옮겨 붙으려 하면 모래로 몸을 덮었다
아들 정영규 씨의 증언에 따르면
정방달 씨는 그때 받은 충격으로 오래 살지 못하고
금방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