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이건희 미술관’? 뜨거운 찬반 논란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 20여 곳, 과열 양상
문화시설 수도권 집중은 문제···
대구시, "남부권에도 국립 문화시설 있어야"
시 예산 과다 책정 지적도

19:45

대구시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에 공식적으로 뛰어들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공직유관단체가 주도하는 범시민 성금모금운동까지 예고된 가운데, 미술관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권영진 시장은 1일 ‘이건희 미술관’을 포함한,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 건립을 위해 사업비 2,500억 원 전액을 대구시 예산과 시민 성금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에서는 권 시장이 공언한 예산은 너무 과하다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단일 사업 예산이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 한 해 예산(2021년 기준 2,880억)과 맞먹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권영진, “이건희 미술관 건립, 전액 시비·성금으로 하겠다”(‘21.6.1))

하지만 지역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 균형발전 측면에서 지역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와, 찬반 논란이 뜨겁다.

▲대구시가 제안한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 부지

‘전액 시비 편성’ 파격 제안 배경은?

이건희 미술관 논란은 이건희 회장 사후 그가 소장하던 미술품 1,488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면서 시작됐다. 해당 미술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 공간 마련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상황에서, 대구시도 내부적으로 이건희 미술관 입지에 선정되기 위해 공모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건희 미술관 위치를 수도권으로 시사하는 발언을 하거나, 문체부가 서울시에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문의했다는 보도도 나오면서, 대구시 입장에서는 조급한 상황이 됐다. 게다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든 지방자치단체도 20곳을 넘어서면서, 대구시는 타 단체와도 차별점을 보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시예산 전액 편성’이다.

대구시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 명분

대구시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지역 균형발전 필요성과 삼성과 대구의 인연을 강조한다. 대구시에 따르면 국립 문화예술 인프라 55%가 수도권에 있으며, 하나뿐인 국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그 전시관도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대구시는 이건희 미술관이 대구에 건립되면, 이번에 기증된 작품 외에도 국립 미술관이 소유한 미술품을 순회 전시하는 방법으로 남부권 시민에게도 골고루 개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 건립을 통해 단순 전시가 아닌 작품과 관련한 연구도 진행하고, 삼성상회터, 이건희 생가, 삼성창조캠퍼스 여행길을 개발 등 삼성과의 인연도 강조한다.

시민사회 비판 쇄도

하지만 대구시 바람과 다르게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을 정치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실제 나경원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하는 등, 지역 균형발전 보다는 선심성 공약으로 비칠 여지도 생겼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건희 미술관 사업은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는 치적 사업”이라며 “성사되지 않더라도 문책당할 가능성이 작다. 정치적 효과는 크고 부담은 적은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섣부른 과시형 정책의 일방적 결정에 우려하며, 이건희 미술관 관련 사업 원점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드는 예산 규모가 터무니없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대구시 보건예산은 2021년 본예산 일반회계 대비 3.19%에 불과한 2,343억 원이다. 재난·안전 예산은 1,278억, 상하수도·수질·대기 등 환경예산은 1,500억에 불과하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 4~5년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단일 사업으로 엄청난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민중과함께,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도 4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코로나 시기 어려움을 겪은 시민, 해고노동자, 사회적 약자가 고통받을 때 예산이 부족하다고만 하더니, 이건희 미술관에는 왜 이리도 적극적인가”라며 “노동자 피땀을 착취한 비자금 조성의 상징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하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 반대 기자회견

대구시는 투자하는 예산보다 이건희 미술관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도 설명한다. 대구시가 대구경북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더니, 이건희 미술관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효과 7,482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3,201억원에 이르며 그 중 매년 방문객 소비지출로 인한 생산유발효과만 1,239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 관계자는 “문체부가 이건희 미술관을 서울에 두고 싶어 하는 듯했고, 지방에 오기 어렵다면 파격적인 조건을 걸어야 했다”며 “5년 동안 연차적으로 하는 사업이다. 문화 균형발전 측면에서 남부권에도 국립 미술관이 필요한데, 부산보다 대구가 접근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건희 미술관 대구유치시민추진단(단장 김형기)은 7일 국립 이건희 미술관 대구 유치를 위한 시민단체 시미나를 열 계획이다. 이건희 미술관 대구 유치를 위한 범시민 성금모금운동 발대식 행사도 같은 날 개최할 예정이다. 발대식에는 이재하 대구상공회의소회장, 이창환 대구예총 수석부회장, 서병철 대구YMCA사무총장, 박영기 대구시체육회회장, 신동학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상임대표 등이 참석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