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마동석표 영화에 빠진 것 ‘악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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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데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돼 화제를 모은 <악인전(2019년)>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2005년 천안 일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이다. 그 해 10개월 동안 4인조 강도에 의해 9명이 살해당했다. 세상에 대한 한탄과 술로 소일하던 범인들이 크게 한탕 하려다가 벌인 사건이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사건과 연관성이 깊지 않다. 지역 배경과 접촉사고를 위장한 범행 수법,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는 것만 교점이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조직폭력배 두목 장동수(마동석)와 강력팀 형사 정태석(김무열)은 연쇄살인의 범인을 잡기 위해 손을 잡는다. 경찰과 깡패가 협력해 범죄자를 추격한다는 설정 자체는 낯익고 뻔하다. 더 나쁜 놈을 잡기 위해 나쁜 놈들이 뭉친다는 발상은 드라마 <나쁜 녀석들(2014년)>과 <나쁜 녀석들:더 무비(2019년)>을 통해 익숙하다. 게다가 배우 마동석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서사도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간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 늘상 보여준 모습인 탓에 기시감이 든다. 역할만 다를 뿐이다.

<악인전>은 초반부터 배우 마동석의 존재감을 강조한다. 동수는 사람이 든 샌드백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20인치에 이르는 팔뚝에서 비롯된 괴력은 사람의 치아를 뽑아버린다. 체격이 제법 큰 성인 남성을 쉽게 집어던진다. 이런 동수가 난데없이 연쇄살인마 강경호(김성규)의 칼에 찔린다. 병원으로 옮겨진 동수는 2시간 동안 수술받고 금세 회복한다. 그는 복수를 위해 경호를 쫓기 시작한다. 추격에 강력팀 형사 태석이 동참한다. 그는 승진하기 위해 범인 검거에 혈안이 돼 있다. 둘의 공조는 정의구현이 아니라 서로의 목적 달성을 목표로 한다.

하나의 장르가 돼버린 마동석표 영화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낯설지 않아 흥행하는데 유리하지만,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장점은 영화가 답답해질 무렵 배우 마동석이 모두 때려 부수면서 해결하는 전개가 통쾌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배우 마동석의 액션 외에는 볼 게 없다는 것이다. 카체이싱과 배우 마동석의 단독 액션은 그가 출연한 영화의 클리셰처럼 판에 박혀 있다. 최근 3년간 그가 주연으로 나온 9편의 영화 모두 마찬가지다. 물론 배우 마동석의 액션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홍콩 출신 중국배우 성룡이 롱런한 요인은 성룡 만이 선보일 수 있는 액션 덕분이다. 과감한 스턴트와 익살맞은 몸동작, 코믹 요소는 성룡의 브랜드다. 대중이 배우 마동석을 좋아하는 이유도 마동석만이 소화할 수 있는 액션과 우락부락한 외모에서 나오는 섬세함 등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우 마동석이 맡는 주연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먼저 형사 태석은 한국영화계에서 흔해빠진 캐릭터다. 그는 승진에 목말라 있고 상사의 명령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수사를 벌인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고, 조폭을 어린아이 다루듯 다룬다. 수십 년 동안 한국 범죄물에서 꾸준히 봐온 모습이다. 더 매력 없는 역할은 연쇄살인마 경호다. 그는 베일에 싸인 연쇄살인마로 등장해 잔혹하고 악랄한 모습만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갑자기 등장한 살인마의 서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살인의 이유를 어릴 적 학대 트라우마로 유추할 뿐이다.

심지어 경호는 이유 없이 살인을 벌이다가 동수에게 잡히고 나서는 맥락 없이 철학적 대사를 내뱉는다. 영화에서 경호가 동석과 태석에게 쫓기는 과정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정체를 숨기고 연쇄살인을 벌이던 경호는 난데없이 납치극을 벌이고 태석은 그 납치사건 수사를 맡는다. 이는 태석과 동수 측 세력이 범인인 경호를 추격할 실마리가 없어질 때쯤 전개된다. 때문에 작위성이 짙다.

마동석표 영화에는 매력 있는 악역이 필요하다. 잔혹하고 악랄하기만 한 악역은 지겨울 정도로 많다. 소름 끼치는 표정 연기 말고는 차별성이 없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년)>의 안톤 시거는 기존 악역과 차별성이 뚜렷하다. 특히 조커는 자기만의 특별한 수법과 장기로 뛰어난 전술가이자 격투가인 배트맨에 맞선다.

매력적인 악당은 영화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하지만 마동석표 영화에는 잔혹하고 악랄한 악당이 등장했다가 배우 마동석의 분노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언론 인터뷰에서 마동석은 “마동석 영화는 다 똑같다”는 비판에 대해 “배우 브랜드가 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영화는 배우 한 명의 매력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