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가 기록하는 사람들

김운성, 김서경 작가, 독립운동가 기록 작업
19일, 대구 생존 독립운동가 장병하, 권중혁 작업 나서

18:34

“이렇게 오신다고 하셨으면 손도 씻고, 발도 씻고 했을텐데요.”
“아이구, 아닙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아흔넷, 장병하 애국지사가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김운성, 김서경 작가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평화의 소녀상, 징용공 동상을 제작한 김운성, 김서경 두 작가는 지난 9월부터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생존해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생존 모습을 남겨놓는 작업이 그것이다.

전국적으로 독립운동가로 등록된 인원은 올해 광복절 기준으로 1만 6,932명이다. 이들 중 생존한 이는 11월 현재 13명뿐이다. 대부분이 구순을 넘긴 고령이고, 100세를 넘긴 이도 많다. 두 작가는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고민하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고, 3D 프린터로 전신을 촬영하고 손과 발은 본을 뜨는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김운성 작가는 “이제 어르신들이 노쇠하고 돌아가시면 산 증거가 사라지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남길 수 있게끔 해보자 해서 3D 촬영해서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말씀하시는 내용도 알려줄 수 있으면 해요”라며 “발자취와 손길에 대한 이야기를 후세에 알려드리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운성, 김서경 작가는 생존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9일 낮 대구에 거주하는 생존 독립운동가 장병하 지사에 대한 기록 작업이 진행됐다. 왼쪽부터 노수문 광복회 대구지부장, 장병하 지사, 김서경, 김운성 작가.

19일 오후 2시 이들은 그 여섯 번째 작업을 위해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장병하 지사를 찾았다. 장 지사는 대구에 거주하는 생존 독립운동가 2명 중 1명이다. 장 지사는 192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43년 16살이던 해에 안동농림학교 학생으로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을 조직해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45년 3월에는 일본육군기념일에 총궐기할 계획도 세우고 거사를 추진했지만 사전에 계획이 유출돼 옥고를 치렀다. 광복 직후 8월 16일 기소유예로 출옥했고, 1999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장 지사는 “다시는 우리나라가 나라를 빼앗기는 슬픈 역사가 없어야 되겠는데, 후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국권을 지키기 위한 마음가짐을 새로 하도록 했으면 합니다”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왜 궐기를 해서 독립운동을 했느냐, 또 그때 우리가 어떠한 걸 했느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은데 친구들이 모두 다 죽고 가버리고 나니까 이제 남은 게 저 혼자뿐이라는 느낌이 듭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장 지사는약 20분 동안 진행되는 기록 작업에 묵묵히 몸을 맡겼다. 3D 프린터 촬영을 하는 동안에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잠시 책을 읽었다. 손과 발의 본을 뜨는 동안에는 노수문 광복회 대구지부장이 “벌을 서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불편한 자세였지만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작가에게 “젊은 사람들이 옛날에 어떻게 나라를 빼앗겼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하지 않아요”라며 “그런 차에 이렇게 좋은 기회에 얘기를 하고, 다시는 그런 슬픈 역사를 안 쓰도록 고민할 수 있게 해야 해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용으로 쓴다니 흐뭇합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장병하 지사가 3D 프린터 촬영에 몸을 맡긴 채 책을 읽고 있다.

두 작가는 이날 장 지사에 대한 작업을 한 후 대구에 거주하는 또 다른 생존 독립운동가 권중혁 지사에 대한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100세를 넘긴 권 지사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1년 태어난 권 지사는 보성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년 일본군 대구 24부대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됐다. 권 지사는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탈출했지만, 일본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2005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김서경 작가는 “그런 부분을 항상 느끼는 것 같아요. ‘늦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서라도 해내지 않으면 더 늦어지잖아요. 그래서 이 순간에, 더 늦기 전에 그분들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잖아요. 그 역사를 제대로 알려내기 위해서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