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혼자 울면 외롭지만 함께 울면 견뎌지는 게 삶 ‘나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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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2018년)>는 방영 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주연배우 오달수의 성추행 의혹과 소아 성애(로리타),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논란이 불거졌다. 오달수의 배역은 배우 박호산으로 교체되면서 일단락됐지만, ‘로리타’ 논란은 숙지지 않았다. 극중에서 주인공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가수 아이유, 이지은)의 나이가 24살이나 차이 나는데다, 이지은은 2015년 발표한 <제제>란 곡에서 가사와 의상 등 콘셉트가 로리타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난 여론은 ‘여성 혐오’로 번져 드라마에 꼬리표로 따라붙었다. 특히 1화에서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이 지안의 배와 얼굴 등을 때리는 장면이 나오자, 데이트 폭력, 폭력 미화 논란에도 시달렸다.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 글이 쏟아졌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됐다.

하지만 드라마가 종영된 뒤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로 꼽는 이들은 꽤 많다. 배우 김윤진과 조진웅은 <나의 아저씨>를 “최고의 힐링 드라마”라고 밝혔고, 성유리와 오연수, 엄지원, 이준기, 엄정화, 박솔미, 수현, 송중기, 모델 한혜진, 가수 사이먼디는 언론 인터뷰와 SNS에 감명 깊게 봤다는 말을 남겼다. 중국 배우 고원원과 관지림도 <나의 아저씨>를 매회 챙겨보고 있다고 했다. <연금술사>로 유명한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찬사를 보냈다. 이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이유는 드라마 속 메시지가 감동을 주기 때문이었다.

<나의 아저씨>의 아저씨는 평범하다. 천재 의사나 변호사, 재벌 2세라서, 어려운 처지의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다. 탁월한 기억력 같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삼형제 중 맏형 박상훈(박호산)은 몇 번의 사업 실패로 돈을 잃고 아내와 별거 중이다. 어머니 변요순(고두심)의 집에 얹혀산다. 그래도 긍정적이다. 막내 기훈(송새벽)은 독립영화계에서 천재감독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장편 데뷔를 말아먹고 재기불능 상태다. 가진 건 없지만 언제나 당당하다.

둘째 동훈은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번듯한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대학 후배 도준영(김영민)이 대표이사가 된 뒤 한직으로 밀려났다. 준영은 동훈에 대한 열등감으로 동훈의 상무이사 승진을 방해한다. 아내 강윤희(이지아)는 준영과 외도한다. 사내에서는 권모술수의 도구로 동훈을 이용한다.

지안은 실패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다. 물려받은 엄마의 빚을 갚기 위해 온갖 고생을 겪고 범죄까지 저지르며 힘겹게 살아간다. 지안이 동훈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동훈을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준영의 지시로 동훈을 도청하면서다. 하지만 점차 동훈의 인간성에 감화돼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게 된다. 둘의 감정은 애정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에 가깝다. 동훈은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으면서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지안을 봐주고 지안은 동훈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혼자 울면 외롭지만 함께 울면 견뎌지는 게 삶이다.

하지만 동훈과 지안의 사이가 애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시선은 존재한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동훈이 지안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고 보호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의 편이 돼 준 것과 지안이 동훈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의 편에 서는 모습이 그려지는 탓이다. 어린 여성이 나이 많고 사연 많은 남성을 이해한다는 설정 자체가 아저씨들의 로망을 채워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희생하는 남성 ‘가장’에 대한 연민을 극대화하고, 남성의 권력을 지우고 아저씨들의 자기연민을 늘어놓는다는 이유에서다.

여성의 처지를 최악으로 그림으로써 평범한 아저씨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고, 후배이자 상사랑 바람을 피우는 아내 때문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아저씨에게 젊은 여성을 만나도 크게 나쁜 놈은 아니지 않느냐는 면피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나이 든 남성과 젊은 여성의 기울어진 권력관계를 낭만적인 판타지로 포장해 확대 재생산한다는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반대로 노년 여성과 젊은 남성의 사랑을 그린 <빛나는 순간>에 대해서는 <나의 아저씨>를 향한 논란을 찾아볼 수 없다. 아름다운 제주 중산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틱한 장면 때문이 아니고,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을 설득력 있게 그려서도 아니다. 영화는 둘의 특별한 사랑을 특별한 방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30대 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은 물속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70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을 카메라에 담다가 숙명적 사랑에 빠진다. 진옥은 TV 출연을 기피하는 까칠한 해녀다. 경훈은 진옥의 프로그램 섭외를 성사시켜야 하는 PD다. 물에 들어가 5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진옥을 구하기 위해 경훈은 물에 뛰어들었다가 익사 직전까지 간다. 진옥은 경훈을 구하고 그가 바다에서 연인을 잃은 사연을 알게 된다. 결국 진옥은 다큐 촬영을 허락하면서,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둘의 사랑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이를 진심으로 보듬는 위로에서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지워진다. 진옥은 제주 4·3사건에서 부모를 잃었고 딸마저 바다가 앗아갔다. 경훈은 세월호 참사에서 연인을 잃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바다에서 둘은 서로의 아픔과 상실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첫 키스를 나눈다.

영화를 향한 태도는 편견에 의해 불편하고 도발적인 비판을 쏟아내기보다, 염려하고 응원한다. 영화는 사랑의 본질을 말한다. 호르몬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상처를 공감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빛나는 순간>은 비극적 경험에 대한 위로로 사랑의 감정이 갈음되지만, <나의 아저씨>는 고달픈 삶의 위로로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나를 불쌍해하는 아픈 마음으로 상대를 불쌍해하는 마음이 아저씨들이 구조적 우위에 눌러 앉아 구조적 약자인 젊은 여성을 기만한다고.

해석은 자유다. 다만 드라마 말고 현실에서 비뚤고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을 보듬어주는 어른들이 얼마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빠지고, 젠더의 논리에 매몰돼 대척점에만 서 있는 게 안타깝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