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르포] 2021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김상목

뿌리 깊은 나무처럼 성장하는 지역 독립영화를 확인하다

14:50

1_개괄: 2021년 대구독립영화 성과의 장

2021년 12월 18일부터 19일까지 양일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진행한 “2021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기획전에 다녀왔다. 장편 1편과 단편 20편(5개 섹션 구분)이 6회에 걸쳐 상영했고, 매 회마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가 이뤄졌다. 명칭 그대로 한해 지역 독립영화 결산이었다.

▲2021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포스터 이미지

2021년 지역 독립영화는 준수한 실적을 냈다.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박재현 감독의 단편 <나랑 아니면>이 한국단편경쟁 감독상을 수상했고, 6월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박찬우 감독의 단편 <국가유공자>가 한국단편경쟁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감정원 감독의 장편 <희수>는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 부문에서 첫 공개된 후 11월 전북독립영화제에서 옹골진상(대상)을 획득했다.

이 영화들은 수상 외에도 다수의 영화제와 상영회에서 기회를 얻었고 <희수>는 스페인 빌바오 국제 다큐&단편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국내외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3편의 ‘빅3’ 외에도 김선빈 감독의 단편 <고백할거야>는 정동진단편영화제 등에서, 장주선 감독의 단편 <장학생>은 서울여성독립영화제와 부산, 인천 등 지역 독립영화제에서 소개되는 등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2021 전북독립영화제 시상식_희수(감정원 감독)_수상소감 현장

그리고 한해 전국 독립영화의 총결산 성격의 행사인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나랑 아니면>, <국가유공자>와 함께 2019년, <입문반>으로 동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던 김현정 감독의 신작 장편 <흐르다>가 소개된 바 있다. <희수>가 새로운 선택 부문에, <장학생>과 정수연 감독의 <손끝>은 뉴-쇼츠 부문에 소개되어 관객들의 호평을 얻었다. 전국적으로도 대구에서 만들어지는 독립영화들을 향한 주목도는 상승일로다. 기대감 속에서 이틀간 극장을 찾았고, 영화 관람 및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2_발견: 올해의 몇 가지 특징

2017년을 전후로 대구에서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 행위를 단지 생존 확인 차원으로 보던 (주로 외부적 시선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지역 독립영화인들의 속사정과는 무관하게 그런 평가 지표는 ‘실적’, 상업영화라면 흥행 성적이겠지만 단편 위주 독립영화라면 아무래도 영화제 수상이 실적으로 간주된다. 최창환(<내가 사는 세상>, <파도를 걷는 소년> 외), 장병기(<맥북이면 다되지요> 등), 김현정(<나만 없는 집>, <입문반> 등), 고현석(<물속에서 숨 쉬는 법>), 유지영(<수성못> 등) 감독 등이 독립영화판 내에서 적지 않은 주목을 받으면서, 영화학과 하나 없는 대구가 ‘hot’한 지역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한국사회는 거의 모든 구성요소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음을 누구나 다 알지만, 영화의 편중은 특히 극심한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타 ‘지역’에 비해 대구의 조건이 한층 더 열악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첫 번째로는 ‘허브’ 역할을 할 중심축의 부재다. 서울 외에 비교적 영화 기반이 구축되어 있다고 언급되는 지역인 부산이나 전주는 20년 이상 축적된 국제영화제 급 지역 행사 기반이 있다. 대규모 행사를 치러내는 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요구와 수요로 영화 생태계가 지역 내에 생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게 마련이다.

대개
① 영화제가 탄생하고 안정화를 거치며 행사 자체는 유지되는 상황이 되면,
② 상영작품을 지속적으로, 추가적으로 상영하는 기획이 영화제와 지역사회 요구로 진행되고,
③ 상영을 위한 공간으로 독립예술영화 상영을 위한 극장 등이 마련된 후,
④ 지역 기반 영화제로서 지역 내 제작 영화 활성화가 화두로 떠올라 지원사업이 정비되고,
⑤ 지자체 차원의 공적 지원기구가 지역 영화단체와 상영관, 유관단위와 협력해 활동을 잇는
수순으로 자체 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게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례다.

하지만 대구는 이 과정 자체가 축적되기보다는 특출한 감독들의 성과로 명맥을 유지해온 식이다. 거듭되는 좋은 소식에 고무되면서도 대구지역 독립영화인들은 최소한의 기반 마련을 위해 최근 몇 년간 노력을 경주해 왔다. 2021년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행사를 다녀오면서 그러한 시도의 성과와 보완해야 할 숙제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1. 여전한 극영화 절대우세 심화

총 21편(단편 20, 장편 1) 중에서 다큐/실험에 해당하는 단편 2편을 제외하면 모든 작품이 극영화로 채워졌다. 물론 독립영화 제작편수 중에서 극영화 비중이 어느 경우에도 많은 편이지만, 대구는 편중이 특히 심한 편이다.

일단 ‘영화’라고 하면 좁게는 극영화로 간주하는 보편적 통념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영화학과에서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밟으며 영화사나 장르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 기회가 제한된 지역 현실에서 가장 접근성이 높은 장르가 극영화이기에 자연히 해당 장르 우세는 크게 문제될 게 없어 보이는 측면이 다분하다.

하지만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지점 또한 존재한다. 극영화의 경우 아무리 소규모 단편이라도 일단 연출(감독)-배우-촬영-제작(PD)에다 음향, 조명, 조연출, 스크립터 등이 붙게 마련이다. 촬영 현장의 필요 인력과 장비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실습 겸 좀 더 자유로운 작업을 위해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도하거나 병행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은데 대구지역 독립영화의 경우 다큐멘터리 시도는 그 자체가 희소성을 띌 정도로 찾기 드물다.

여기엔 현재 지역에서 활동하는 주요 독립영화 감독들이 극영화에 집중한 창작 스타일을 갖고 있고. 후속세대 또한 앞선 감독들과 여러 경로로 교류하며 영화창작 길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탤 수 있겠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겠지만 영화의 역사에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등 다양한 장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류해온 사례에 비춰볼 때 편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기록영화 특성이 보다 강한 다큐멘터리 장르의 취약성은 대구 독립영화인들의 지역사회 밀착력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예시로도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지역 영화단체나 활동가들의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지점일 것이다.

#2. 뿌린 대로 거두리라: 지원제도의 성과

현재 중앙/지방정부 차원에서 여러 경로로 독립영화 지원사업과 제도가 있다. 이번 연말정산 21편 중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은 작품 비중 또한 압도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1) 영화진흥위원회 2021 일자리 연계형 온라인‧뉴미디어 영상콘텐츠 제작지원사업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는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독립영화인들의 생계와 창작 지원을 위해 330편의 단편영화(10-12분 내외)를 제작 지원했다. 이중 대구지역에서 만든 작품은 총 5편(<손끝>/<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오프 더 레코드>/<뚫어드립니다>/<프리즈마>)으로 전 작품이 이번 연말정산에서 상영되었다. 해당사업은 단편영화 제작 활성화는 물론 그동안 상대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던 인건비 지원도 고려되어 코로나19 시기 다양한 영화 제작에 활용되고 있다. 이중 2편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330편 중 엄선한 뉴-쇼츠 섹션에 선정되어 해당 작품군 중에서도 양질의 결과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프리즈마_장주선 감독_스틸 이미지

(2) 대구단편영화제 사전제작워크숍 “딮하고 숏하게(딮‧숏)” 선정 작품

올해로 22회를 맞은 대구단편영화제는 대구 영화제의 대표 주자이자 지역별로 존재하는 독립영화제 중에서도 주목받는 행사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가 주관하면서 전국의 우수한 단편영화들이 경합하는 전국경쟁과 함께 대구경북지역에서 제작한 작품을 발굴, 소개하는 <애플시네마>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딮‧숏”이라 통칭하는 사전제작워크숍은 영화 제작 경력이 없는 이들을 모아 파트별 역할을 담당하고 멘토를 붙여 제작과정 전반을 수행하게 하는 실습 코스로 매년 2편의 단편 제작팀을 사전 모집해 작품 완성 후 그해 영화제에서 소개하고 있다. 올해 만든 2편(<유, 렉카>, <이웃에게>)을 만든 주요 인원들이 지속적인 영화 제작을 결의하고 있어 지역 영화인 발굴에 일조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올해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부문 상영작 대부분이 이번 연말정산에서도 재차 선보였다.

그 외 대구지역 다양성영화 제작지원사업(<아파트>, <오촌> 등)과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이천사담> 등) 등 사업을 통해서도 꾸준히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1편의 작품들 중 이채로운 건 <희망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공전한다>(이하 ‘희망공전’)의 정민우 감독 사례다. 일체의 제작지원 없이 비 영화전공자가 주변 지인들과 함께 제작한 시도는 지원사업 활성화 유도와 동시에 ‘독립영화’의 자율성과 표현범위 측면에서 생각해볼 주제다. 2022년에는 기존의 독립영화 지원사업에 추가로 지역문화재단의 영화 부문 지원책이 추가되고, 기존 사업 범위와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3. 특기할 만한 사례: 대구영화학교

지원사업+교육사업의 양 측면을 공유하는 “대구영화학교”는 2021년도 연말정산에서 가장 주목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2019년 1기를 시작으로 올해 3기에 이른 대구영화학교는 대학 영화학과가 부재한 가운데 수공업적으로 육성되고, 영화인들의 사적 관계로 유지되던 지역 독립영화계를 체계화-공식화하려는 노력으로 출발했다. 매년 약 반년간의 교육을 통해 기수별 12인(연출-제작-촬영 각 4인)의 신규 영화인을 배출하고 있다. 3기가 되었으니 36명의 졸업생을 낸 셈이다. 기존 소규모 인력풀을 고려한다면 물리적으로 만만찮은 ‘세’를 구축한 것이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발족한 대구영화학교는 영화 이론과 제작 및 편집과정 전반은 물론 비즈니스 클래스 등을 추가해 부족하나마 A-Z를 완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 모델을 수립했다. 과거 도제식으로 배우고 소모임을 자체적으로 꾸려 시나리오 연구 등을 수행하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고 이전부터 활동하던 지역 독립영화인들은 한목소리로 부러워하는 중이다. 대구 독립영화계가 해당 교육과정을 출발시키자 강원 등 타 지역 독립영화계도 유사한 형태의 교육과정을 수립해 전국적으로 대학 영화학과 외의 체계적 영화교육 모델 수립을 실험 중이다.

2021년 독립영화 연말정산에는 올해 초 완성된 4편의 2기 수료 작픔(<현주의 집>, <배웅>, <고백할거야>, <장학생>) 모두 상영되었고 이중 <고백할거야>와 <장학생>은 대구를 벗어나 전국적으로 상영 기회를 얻기도 했다. 더 고무적인 사실은 올해 대구 독립영화 대표작품이라 할 <나랑 아니면>과 <국가유공자>가 모두 1기 졸업생들의 차기작품이라는 점이다. 남들은 4년 걸리는 정규 커리큘럼을 6개월 만에 따라잡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이기에 후속 활동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두 감독 모두 지속적인 작품 활동과 교류로 기량을 갈고 닦아 올 한해 전국 단편 독립영화들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낸 것이다.

▲고백할거야_김선빈 감독_스틸 이미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 제작정보가 올라올 때 자리를 떠나지 않고 유심하게 살피는 편이다.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구영화학교 졸업생들이 서로 인연을 이어가며 서로의 작품에 스태프로 참여하고 협력하고 있음이 연말정산 상영작품 과반 이상에서 확인됐다. 대구영화학교가 단순한 물질적 지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교육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까지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했음이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3_작품별 품평: 올해의 경향

#1. 사회적 사실주의 VS 탈 리얼리즘

대구지역 독립영화의 경향은 흔히 장르적으로는 극영화, 소재나 표현에선 사회적 사실주의로 인식되곤 한다. 물론 획일화된 개념은 아니다. 창작자 개인이 지향을 갖고 스타일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속칭 ‘장르영화’라 불리는 경향보다는 사회적 의제와 연결되는 색채를 띤 작품이 적지 않았고, 유독 그런 작품이 전국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선입견이 더해진 바 있다.

작품 활동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노동과 이주민 등의 주제를 작품에 담아온 대구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 최창환 감독의 원심력이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촬영감독이자 지역 젊은 독립영화인들의 맏이 격으로 본인 작업 외에도 다방면으로 활약해온 그의 작품들이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실적과 함께 극장 개봉을 이뤄내면서 대구영화의 컬러로 인식된 측면이 존재한다. 영화 속에 담긴 ‘지역-로컬’적 배경의 활용 또한 매년 수백 편 넘게 쏟아지는 작품 중에서 자기 정체성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했다.

앞에서 언급한 기록 다큐멘터리 분야의 상대적 공백과 함께 독립영화인들이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운동과 결합하는 측면이 취약한 부분도 존재한다. 지역독립영화들 중 막상 개인적인 경험의 반영을 넘어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깊이나 완성된 세계관이 반영된 작업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사회적 소재를 다루더라도 해당 주제를 얼마나 작품에 녹여내느냐, 자기 시각을 넣어서 완성하느냐는 별개의 문제가 될 텐데, 아직 20대 중후반-30대 초 위주인 신진 독립영화인들이 상대적으로 전 세대에 비해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도 숙제로 남는다.

반면에 보다 자기 세대의 개성적 특징에 가까운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감독들도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첫 작품 <돌고래 마라톤>에 이어 <고백할거야>와 <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을 올해 선보인 김선빈 감독은 사회적 주제에 대한 강박 대신 개인의 경험 요소를 극대화하거나 사적 관계에 집중하면서 재기 넘치는 연출과 리듬감 넘치는 경향을 선보이는 중이다.

특히, <고백할거야>는 거시적 소재에 얽매이기보다는 작은 이야기 같지만 개인의 소중한 기억이나 소통에 천착하는 감독의 성향이 극대화된 작업이다. 내일 전학을 가는 이름이 같은 남학생에게 고백을 받은 주인공 성지원이 어떻게 답을 할지 고민하며 벌어지는 상황을 슬랩스틱과 복고풍 음악을 덧붙여 경쾌하게 전개하는 작품은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는 감독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장학생_장주선 감독_스틸 이미지

동 세대이지만 <장학생>과 <프리즈마>를 연말정산에서 상영한 장주선 감독이나 <손끝>을 상영한 정수연 감독은 보다 대구독립영화의 전통적 컬러에 가까운 작업을 선보였다. <장학생>은 한부모 가정 자녀에게 지원되는 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 고등학생 희원이 겪는 난관과 갈등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프리즈마>는 코로나19와 불경기 때문에 무급휴직 중인 한부모 가정의 하루 동안의 구직활동을 묘사한다. 사회파 예술영화의 아이콘인 켄 로치나 다르덴의 느낌에 가까운 결과물들이다. <손끝> 역시 ‘을’과 ‘을’의 의자 뺏기 비극을 노동자의 손으로 표현하는 섬세함과 주제의식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2. 지역독립영화 쿼터를 넘어: 웰메이드 작품들

▲나랑 아니면_박재현 감독_스틸 이미지

박재현 감독의 <나랑 아니면>은 코로나19 창궐 초반 일자리를 잃은 노부부의 일화를 다룬다. 원하지 않은 실업과 외로운 노부부의 결합이라면 대개 음울한 분위기로 사회적 비극을 이야기할 것이라 상상할 테지만 박재현 감독은 색다른 접근경로를 취한다. 노부부는 비록 자녀와 떨어져 그리움을 삭히지만 의도하지 않게 자신들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비록 성사되진 못하지만 바쁘고 형편이 어려워 치르지 못한 결혼식을 시도하거나 이참에 방역장비를 구입해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등 낙담하고 좌절하기보단 시련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따뜻한 시선으로 주인공 노부부의 일상을 재구성한 <나랑 아니면>은 심각하게 사회문제를 고발하지 않으면서도 코로나19 판데믹 관련 배경을 잘 녹여내어 큰 주목을 받았다.

▲국가유공자_박찬우 감독_스틸 이미지

박찬우 감독의 <국가유공자>는 가족 간 갈등과 세대별 박탈감, 거기에 국가의 역할 등 다양한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한다. 훈장과 연금을 받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지만 호국원에 안장을 거부당한다. 주인공은 항의를 거듭하지만 해결은 요원하고 그 과정에서 자식과의 갈등, 자부심의 상처 등으로 점점 힘을 잃어 간다. 그런 노인을 지켜보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딸의 시선과 설명보다는 이미지 묘사로 표현되는 노인세대의 그림자가 다양한 해석의 흥미를 선사한다. 소재를 텍스트 해설보다는 이미지 연출로 풀어내는 영화문법의 완성도가 심상치 않다.

유일한 장편으로 소개된 감정원 감독의 <희수>는 첫 장편임에도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독특한 작품이다. 대구 비산산업공단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희수’의 마지막 여행길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판타지적 몽환으로 관객을 끌고 가는 것은 물론, 지역 배경과 노동 의제를 고루 녹여내고,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희수_감정원 감독_스틸 이미지

단편영화 제작이 과거에 비해 다양한 기술적/제도적 지원으로 수월해졌지만 장편의 경우 여전히 난이도가 장벽처럼 높은 편이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같은 독립영화라 해도 10배가 넘는 예산을 투입한 작품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개성과 완성도 양자를 모두 충족하는 작업을 첫 장편으로 선보인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극장 개봉을 기존 배급과는 다른 형태로 시도한다고 하니 여러모로 <희수>의 이후 행보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이다.

4_무에서 유를 넘어: 독립된 생태계 구축을 향해

2021년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은 비록 코로나19 재차 악화 등으로 단출하게 치러졌지만 수확의 결실을 느낄 수 있는 행사였다. 또한 행사 전후로 관계자들에게서 공유된 2022년 지역독립영화 창작환경 관련 전향적 소식 또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대구의 독립영화 생태계의 폭과 깊이는 얕아서 자급자족 순환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모자란 게 잔뜩 남아 있다.

물질적 지원도 태부족한 게 현실이지만 독립영화의 비교우위 강점인 자유로운 표현과 사회현실에 대한 반영과 해석 측면에서 아직 젊은 지역영화인들이 보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교하게 다듬고 각자의 개성을 세계관으로 확장해나가는 진화과정 또한 기획되고 조력 받아야할 상황이다. 꾸준한 보수교육과 건전한 상호경쟁, 생산적 협업체계 마련은 아무리 확충되어도 부족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독립영화를 올림픽 메달 획득처럼 단기 실적이나 가시적 성과로만 측량하는 게 아니라 지역 시민들의 문화예술 접근 권리로 바라보고 지속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 현장에 절실히 필요한 부분에 대한 포인트 지원 대책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실용적인 협력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물론 선의의 노력을 고무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와 함께 지역 내에 상존하는 다양한 분야와 역량의 조력과 교류 또한 꾸준히 시도해야 마땅하다. 2022년이 지속 가능한 지역독립영화 생태계 구축의 큰 그림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소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