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대선판을 흔드는 ‘문제적’ 국민 정서와 가족 프레임 / 박충환

16:11

제21대 대통령 선거판이 양대 정당 후보의 이른바 ‘가족리스크’와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추하게 일그러지고 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볼썽사나운 네거티브 소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 와중에 12월 21일 아침 뉴스에서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들의 비위로 전격 경질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 수석의 아들이 몇몇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내면서 아버지가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적시하는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김 수석의 즉각적인 경질로 사태가 수습되긴 했지만, 고위공직자 가족리스크로 중상을 입은 문재인 정부에 다시 한번 작은 생채기를 낸 사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비천한’ 가족 배경과 사생활 문제로 덜미가 잡혀 있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부인과 처가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이 가족 문제로 낙마하는 사례는 이제 드문 일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만도 아니다. 일찍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이회창이 대다수의 예상을 뒤집고 낙선하게 된 원인은 소위 ‘병풍 사건’으로 알려진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었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낙마시키고 그 가족을 멸문지화로 이끈 것도 다름 아닌 가족리스크였다. 한국 사회에서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의 가족 문제는 그 진위와 경중에 상관없이 한 번 빠지면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개미지옥인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김 수석이 아들 문제로 경질당했다는 소식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수석의 아들은 평소 불안과 강박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인물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신적 문제로 자기조절 능력을 상실한 아들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쳤고, 그의 아버지는 통제 불가능한 아들이 저지른 문제적 행위에 대해 공적영역에서 무한 책임을 진 셈이 된다. 김 수석의 입장에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듯 그야말로 부모의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것이 자식인데, 하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식이라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보편적 인권의 시대에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 뜻대로 통제하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자식도 엄연히 독립적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김 수석은 아비로서의 불찰과 부족함을 읍소하며 머리를 조아렸고, 청와대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서 그를 즉각 경질한다고 발표했다.

청와대가 김 수석의 경질을 위해 호출한 국민 정서는 최근 발생한 또 다른 낙마 사건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었던 조동연 교수가 ‘문란한 사생활’ 논란에 휘말려 영입 며칠 만에 눈물을 흘리며 사퇴했다. 조 교수에게 덧씌워진 혐의는 한 개인과 가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명백한 젠더 폭력의 성격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조 교수의 거취에 대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정서에 떠밀려 서둘러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다. 젠더적 관점에서 명백하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조 교수의 사퇴에 대해 한국 여성계조차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의아함을 넘어 낯설기까지 했다. 한국의 여성계도 어쩔 수 없이 국민 정서를 의식했던 모양이다.

이 문제의 국민 정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청와대를 움직이고 여성계를 침묵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까? 국민 정서는 워낙 중의적이고 맥락에 따라 천의 얼굴로 호출되는 터라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김진국 수석과 조동연 교수의 낙마를 통해 적어도 두 가지 담론적 층위는 유추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공인은 사생활과 가족이라는 사적영역에서 발생한 문제라 하더라도 공적영역에서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 둘째,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적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공인은 가족 구성원의 행위를 임의로 통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한국의 국민 정서는 뚜렷한 공사 구분을 부정하는 층위와 가부장의 절대권력을 인정하는 층위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구미사회에서 공인의 사생활과 가족관계는 그녀/그가 공적영역에서 수행하는 일에 전혀 혹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는 결혼 전 숱한 연예계·정제계 인사들과 염문을 뿌렸고, 모델 시절 촬영했던 누드사진이 유출되는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의 결혼은 그가 미성년이던 15세 때 무려 24세 연상 여교사와 지극히 위험한 연애를 통해 맺어진 인연이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복잡한 가족관계와 지저분한 혼외 관계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자 없을 것이다. 이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들의 사생활과 가족 문제는 한국의 공적영역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사생활과 가족 문제가 세간의 가십거리는 되었을지언정 공적영역에서 치명적인 악제로 작용한 적은 없었다.

한국은 유독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경계가 모호하고 두 영역 간 상호침투가 현저한 사회이다. 이는 비단 정계나 관료계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심지어 연예인조차 공인으로 간주되어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사생활이나 가족 문제가 폭로될 경우 언제든 방송계에서 퇴출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회적 공인에게 공사를 초월한 수준의 철저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국민 정서는 한편으로 그들에게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고 모범적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압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매우 심각한 부작용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운명공동체적 성격이 강하고 가부장의 절대권력을 축으로 하는 가부장제 가족의 제도적·문화적·정서적 프레임이 국민 정서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은 법률과 제도적 차원에서 이미 폐지되었지만, 그 문화적·정서적 프레임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듯하다. 조국 일가의 비극은 이 가족프레임이 전도된 공정담론과 만났을 때 더욱 강력한 독성을 뿜어낸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현대적 공화국의 근간을 제공하는 공공성 담론은 한편으로 공익과 사익의 명확한 제도적·법률적 구분을 통해 사적 이해가 공적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라는 이념을 통해 공적 권력이 사적영역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 정서는 건강하고 합리적인 공사구분의 경계를 허물어 개인과 가족의 사적 욕망이 공화국의 공공성을 침해하고 농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념적·실천적으로 열어주고 있기도 하다. 이는 박근혜 정부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 바 있다.

이 문제적 국민 정서와 가족프레임은 제21대 대선 정치판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비천한’ 가족 배경과 사생활 문제로 덜미가 잡혀 있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부인과 처가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양대 정당의 두 후보 모두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안고 대선에 임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 국민이 가족프레임에 포획되어 대선 후보의 사생활과 가족리스크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정작 대통령 선거에서 중심이 되어야 할 정책과 비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국민이 대통령 후보들에게 바라는 건 사생활과 가족 문제를 두고 서로를 헐뜯는 모습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당장이라도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네거티브를 멈추고 훌륭한 정책과 비전을 통해 성실하게 경합하는 모습으로 어필해야 할 것이다.

박충환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 경북대학교민주화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