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신뢰는 모든 문제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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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 벽두에 강원도 22사단 지역에서 월북자가 발생했다. 침투가 아니라 월북이다. 험준한 산악 고지대에서 영하 20도 날씨에 고생하는 장병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계 실패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침투를 막지 못한 것은 국방의 문제이다. 월북을 막지 못한 우리 사회에도 문제가 있다. 1년 전 목숨 걸고 철책을 넘어 온 귀순자가 다시 목숨 걸고 월북했다. 때문에 누구를 탓하기보다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면서 근본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

▲사진=춘천MBC 뉴스 갈무리

필자는 군 복무 중 대침투작전 현장에 세 번이나 참가했다. ’92년 철원 비무장지대(DMZ) 무장공비 침투사건,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05년 연천 북한군 귀순사건이다. ’92년 DMZ에서 작전은 수색중대장 진두지휘아래 무장공비 3명을 현장에서 일망타진했다. 완전 작전으로 평가받았다. ’96년 사건은 택시기사의 신고와 초병의 보고를 신뢰하지 못해 확인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49일 만에 작전을 종결했다. ’05년 연천에서는 북한군이 철책을 넘어왔다. 이틀이 지나서야 주민 신고로 작전이 종결됐다. 경계는 실패했지만, 부대와 지역주민 간 신뢰관계는 인정받았다. 직접 참가한 작전이기에 필름을 돌려 보는 듯 생생하다.

월북자가 발생하고 10여 일이 지났다. 각계에서 경계 실패를 질타했다. 이제 여러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작년 7월말에도 서해에서 탈북자가 월북한 사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경찰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1년 전 귀순자가 월북 징후가 있다는 보고를 신뢰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단 한 사람도 귀순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여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앞으로 구조적인 경계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은 기본이다. 인공지능(AI)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병들의 전투 의지를 높이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의 승패는 전투 의지에 달렸다고 했다. 나폴레옹은 전투 의지와 무기의 비중을 7:3으로 보았다. 아무리 무기체계가 뛰어나도 결국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다.

군은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보강하기 위해 ’21년에만 2,042억 5,600만 원을 투자했다. 장병들의 전투 의지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전투 의지는 구호를 외친다고 높아지지 않는다. 필자는 장병 상호 간 신뢰기반에서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굳게 뭉칠 때 전투 의지가 높아짐을 증명한 바 있다.

장병 상호 간 신뢰를 구축하면 확인하거나 감독하는 인력을 경계의 공백을 메우는데 투입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회의나 보고서를 확 줄일 수 있다. 회의를 준비하거나 보고서를 쓰는 시간에 생산적인 업무를 할 수 있다.

9년 전, 육군에서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때로는 불필요한 일을 줄이자고 불필요한 회의를 했지만 장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참모총장이 바뀌자 불필요한 관행이 다시 불타올랐다. 정책은 연속성이 중요하다. 신뢰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 이유이다.

군인들은 ‘조국은 너를 믿는다’를 문구만 보아도 가슴 뭉클해 한다. 전우들이 자신을 신뢰할 때 지칠 줄 모르고 임무를 수행한다. 어찌 군인만 그러한가,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도 신뢰의 힘을 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뢰를 쌓을수록 확인하는 비용이 줄어 든다. 협력이 잘되어 일의 속도가 빨라진다. 불필요한 일을 안하니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신뢰는 막힌 곳을 뚫고 잠긴 것을 푸는 만능키이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속에 있기에 보이지 않는다. 첨단 장비를 활용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신뢰를 증진하는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첨단 장비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지만 신뢰증진에는 한계가 없다. 첨단 장비를 다루는데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신뢰증진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신뢰가 모든 분야의 초석임을 강조하고 있다. 신뢰수준이 15% 높아지면 경제성장이 1% 증가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월북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신뢰를 다진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신뢰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공자는 무신불립(無信不立)! 즉, 신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고 했다. 신뢰를 세우면 다 세워진다. 신뢰는 모든 문제의 답이다.

전병규 kyu9664@naver.com
육군에서 33년 복무하고 2021년 예편했다. 소말리아, 이라크에서도 근무했다. 전역 직전에는 대구, 경북을 지키는 강철사단의 부사단장을 역임했다. 대구과학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