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즐기는 국어교사, 이동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몽실탁구장’

권정생 선생을 사랑한 저자의 헌시 '몽실탁구장'을 비롯한 시 60편
시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시인의 마음속 화가와 문인들의 이야기 담아

15:35

이동훈 시인이 지난해 가을 두 번째 시집 <몽실탁구장>(학이사)을 출간했다. 산문집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 출간 이후 3년 만에 낸 이번 시집은 표제시 ‘몽실탁구장’을 비롯한 작가의 신작 시 60편을 3부로 나눠 싣고, 산문 ‘고월 이장희를 찾아서’를 담았다.

정지창 문학평론가는 이동훈 시인이 그의 작품에 호출한 많은 작가·시인과 화가, 사진가들을 거론한 뒤 “그의 부지런한 발걸음은 우리가 관광지로만 아는 항구와 왕릉, 절집, 정자, 섬에서도 예술가들의 흔적을 더듬어 그 예술혼의 뿌리를 찾아낸다. 시와 그림과 사진을 읽고 보면서 인문정신을 맛볼 수 있는 푸짐한 잔칫상”이라고 평했다.

▲이동훈 시인_라일락 뜨락(사진=정용태 기자)

“詩도 / 탁구도 폼이다. // 걱정이라면 // 폼 잡다가 / 재미 놓칠까 하는.”
– <몽실탁구장> 머리말 전문

시를 탁구에 비유하며 형식을 지키는 것만큼 재밌는 글이 되기를 바랐던 시인은 시라는 형식을 지키면서 예술가와 시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집을 3부로 나누면서 그 제목을 ‘시인의 생가는 시일 뿐’, ‘복은 한 입 거리 수단일 뿐’, ‘실망은 기대의 후속일 뿐’과 같이 ‘뿐’으로 운율을 만들었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외투’는 외투를 소재로 삼은 5편의 이야기를 담은 시편이다. 러시아 작가 니꼴라이 고골의 ‘외투’로 시작해 유치환, 김소운, 김수영, 이소선, 전태일과 어느 착한 이웃을 소환한다.

1842년1 페테르부르크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장만한 외투를 강탈당한 사내가
그 후유증으로 죽고 만다.
죽어서 귀신이 되어 고관의 비싼 외투를 벗기고 말았다는.

1940년 농장 자금 문제로 일시 귀국했다가
다시 북만주로 떠나는 유치환을 김소운이 배웅한다.
영하의 날씨에 더 추운 곳으로 저고리 바람으로 떠나는 벗에게
눈빛으로나마 내내 외투를 입혀주면서.

1955년 겨울 초입, 아내가 중고 시장에서 사왔다는
미제 낙타 외투를 두고 김수영은 고민이 깊다.
밖에서 벗들을 만나면
술을 아니 마실 수 없고 그럴 때면
혼자 외투를 입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어찌 견딜까 하는.

1967년 헌옷 장사를 하던 이소선 여사가
남의 옷만 재단하는 아들을 위해 두툼한 외투를 내준다.
정작 재단사 전태일은
추위에 떨고 있는 시다에게 그 옷을 내주고
대신 소용없는 근로기준법으로 몸의 온도를 올렸다는.

2021년 벽두, 눈발 날리는 서울역
커피값을 구하는
노숙인에게 외투를 벗어주는 사내 모습이 사진2에 찍힌다.
새삼, 외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는.

– 이동훈, ‘외투’ 전문

시인은 표제시 ‘몽실탁구장’은 동네 탁구장에서 실제로 있을 법한 재밌는 이야기로 꾸몄는데, 등장인물이 권정생과 그를 작가로 이끌었던 이오덕, 그의 작품 주인공인 몽실이 셋뿐이다. 이 등장인물로 보건대 ‘몽실탁구장’은 권정생에 대한 헌시인 듯하다.

동네 탁구장에
몽실이를 닮은, 작은 체구에 다리를 조금 저는 아주머니가 있다.
상대의 깎아치기 기술로 넘어온 공은
되깎아 넘기거나 살짝 들어 넘기고
강하고 빠르게 들어오는 공은
힘을 죽여 넘기거나 더 세게 받아칠 줄 아는 동네 고수다.
하루는 권정생 닮은, 빼빼 마른 아저씨가 탁구장에 떴다.
허술해 보여도 라켓 몇 개를 지닌 진객이다.
몸 좀 풀 수 있냐는 요구에
몽실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공을 받아주는데
조탑동의 인자한 그분과 다르게
이분은 탁구대 양쪽만 집중 공략하는 극단주의자다.
이쪽으로 찌르고 저쪽으로 때리기를 반복하니
불편한 다리로 한두 번 몸을 날려서까지 공을 받아주던
몽실 아주머니가 공 대신 화딱지를 날렸다.
ㅡ 이렇게 몸 풀려면 혼자 푸시고요.
ㅡ 남 욕보이는 걸 취미 삼지 마시라요.
늙으면 곱게 늙으란 말도 보탰는지 어땠는지
사뭇 사나워진 분위기에
권정생 닮은 아저씨는 허, 그것참만 연발한다.
살살 치면 도리어 실례가 아니냐고
몇 마디 중얼거리긴 했지만 낭패스런 표정이 가시지 않는다.
이오덕처럼 바른 말만 하는 관장의 주선으로
다시 라켓을 잡긴 했지만
이전보다 눈에 띄게 위축된 아저씨는 공을 네트에 여러 번 꽂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탁구엔
이쪽저쪽을 삥 뽕 삥 뽕 넘나드는 재미가 있다.
몸 쓰며 기분 내는 일이란
사람 사이 간격도 좁히는 것이어서
탁구장 옆 슈퍼에서
몽실 아주머니와 권정생 닮은 아저씨가 우유로 건배를 한다.
아, 이 재미를
오줌주머니 옆에 찬 교회 종지기 권정생은
평생 누리지 못했겠구나.

– 이동훈, ‘몽실 탁구장’ 전문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시인은 이 시집에서 그림, 시, 소설, 사진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건을 버무리며 연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고,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감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고월 이장희에 관한 시인의 산문에서도 시인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고 서평했다.

이동훈은 대구에서 중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읽은 소월과 마크 트웨인이 작가의 밑거름이 됐다. 2009년 월간 <우리시>로 등단하고, 2014년 첫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문학의전당)을, 2019년 산문집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서해문집) 출간했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

  1. 고골, <외투>
  2. 백소아(한겨레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