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일노동운동가 권오봉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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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민주통일노동운동가의 삶을 산 우경(愚耕) 권오봉 선생이 23일 경산공원묘원에 묻혔다. 고인은 향년 98세로 지난 1월 21일 별세했고, 빈소는 계명대학교동산병원 백합원 특9호에 마련됐다.

▲고 권오봉 선생의 빈소_계명대학교동산병원 백학원 특9호 (사진=정용태 기자)
▲우경 권오봉 선생 추모제_계명대학교동산병원 백학원 특9호 (사진=정용태 기자)

지난 22일 오후 5시에 치러진 추모제에는 고인의 가족과 한기명, 함철호, 장명재, 오규섭 등 동지들과 여러 후배들이 참여한 가운데 김병길, 백현국, 김찬수의 추모사와 발언이 있었다.

김병길은 추모사에서 권오봉 선생을 “이 어려운 세월에 태어나셔서 복잡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 한 몸을 던져 온갖 풍상 고초를 다 겪으셨다. 해방 이후 감격의 그때로부터 전쟁의 쓰라린 고통을 겪은 분”이라며 “처음 가졌던 마음, 일편단심 변함없이 한결같이 견지하고 이 험악한 세월을 통일, 해방을 염원하고 굳세게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노동운동 원로로서 최근까지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활동에도 참여했던 권오봉 선생은 1925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해방후 인민위원회 활동, 1946년 고향 영주에서 10월 항쟁 참여를 시작으로 한평생 민주와 통일, 노동운동의 길을 걸었다.

1953년 대한방직 노동조합 대의원을 거쳐 56년에는 7인의 교섭위원단에 들어갔다. 1958년 대구 섬유노조 쟁의부장으로 활동했고 이듬해는 김말룡 위원장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 참여했다. 1960년 제일모직 쟁의에 관여하면서 라경일과 만났다.

1961년 2대 악법(반공법과 데모규제법) 반대 관련 4.2데모사건으로 구속돼 1년 8개월 복역하고 1962년 출소했다. 이 과정에서 서도원, 도예종, 박상홍 같은 혁신계 인사들과 교유한다.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으로 연행되어 고초를 격었으나 구속을 면했다.

1989년 민족자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의 재건에 참여했고, 2013년 민주화운동원로회 회원이 됐다. 이후 최근까지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고문,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구경북본부 고문, 대구경북진보연대 고문,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고문으로 활동했다.

▲지난 2013년, 이일재 선생 1주기 추모제에 참여한 권오봉 선생(사진=정용태 기자)
▲2015년 10월문학제 준비행사에 참여한 고 강창덕 선생(사진 오른편)과 권오봉 선생(사진=정용태 기자)

정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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