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故 심정민 소령이 남긴 충고

09:11

지난 1월 11일 고 심정민(29) 소령은 전투기(F-5E)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영원한 호국의 별이 되었다. 심 소령은 우리에게 “나에게 왜 죽었는지 묻기 전에, 그대는 지금 무엇을 하는지 자문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심 소령의 고귀한 희생을 두고 안타까워한다. 앞으로 심 소령 같은 희생이 없어야 한다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우리 공군의 노후 전투기를 완전히 폐기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우리 마음속에 와서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대한민국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던진 충고 같기에 울림이 더 크다.

심 소령은 전투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사고조사반이 비행 자동기록 장치에서 확인한 결과, 그는 ‘이젝션(Ejection 탈출)’을 두 번이나 외쳤고 10초 남짓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옹기종기 있는 주택가를 피하려고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국민을 살리고자 29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투기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졌다. 신혼인 아내와 부모, 형제를 두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호국의 별이 되었다.

20년 전, 필자는 육군 소령 때 전투기(제공호)에 탑승해 공중기동훈련을 체험했다. 이 귀한 경험을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 아니 꺼낼 수 없었다. 내내 전투기 후방석에서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이유는 심 소령이 가슴으로 전하는 울림을 듣기 위함이다.

필자는 전투기에 오르기 전까지 의기양양했다. 어렵고 힘든 항공생리훈련을 통과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심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아니, 그 보다는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체험이 낫다’고 뽐내기도 했다. 조종복을 입으면서 이 체험을 널리 알리겠다고 다짐도 했다.

작심 1분! 전투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 두려움에 떨고 말았다. 전투기가 급선회하거나 갑자기 솟구칠 때는 정신을 잃을 뻔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항공생리훈련 때 배운 비상탈출 순서를 속으로 반복해서 읊조렸다. ‘긴급상황 때 좌석 옆 레버(사출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캐노피(조종석 뚜껑)가 자동으로 개방되면서 조종석 의자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다음 낙하산이 자동으로 펼쳐진다.’

그 이후 상황은 생각조차 싫었다. 비상탈출을 생각하니 불안이 더 엄습해 왔다. ‘조종사가 먼저 탈출하면 나는 어떻게 하지, 주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으면 보조 낙하산을 어떻게 펼치지’ 등 온갖 불안에 사로잡혔다. 어릴 적부터 겁 없는 아이로 소문났었는데 겁쟁이 중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전투기 탑승체험은 공포체험이 되고 말았다.

조종사가 “기지로 복귀한다”고 할 때에야 조종사를 보았다. 1인 4~5역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복잡한 계기판을 보면서 조종하고 편대와 지상과 교신하는 것을 보았다. 실제상황에선 탑재한 무기를 다루어야 한다.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났다.

극한체험 50여 분이 지나고 원주비행장에 착륙할 때도 극도로 긴장했다. ‘롤러코스터’가 하강할 때 그 느낌 그대로였다. 안도감과 성취감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너무 긴장하여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군인정신이 투철하다고 자부했건만, 조종사 뒷자리에서 살 궁리만 한 것이다. 지금 돌아봐도 참으로 쑥스럽다.

심 소령은 비상탈출 레버만 당기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국민을 살리고 자신은 호국의 별이 되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없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대는 지금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전병규 kyu9664@naver.com
육군에서 33년 복무하고 2021년 예편했다. 소말리아, 이라크에서도 근무했다. 전역 직전에는 대구, 경북을 지키는 강철사단의 부사단장을 역임했다. 대구과학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