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딸아이 나이만큼 흐른 시간 “‘소 잃고 외양간 못 고치는’ 사회같아”

[인터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유가족, 황명애 씨
추모사업 통해 희생자들 목숨 헛되지 않길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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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신천동 mbc네거리 주변 빌딩 숲을 뒤로하고 막다른 골목에 간판 하나 없는 오래된 건물. 방금 이사 온 것처럼 어수선하게 짐이 쌓인 입구로 들어서면 음식 조리 공간과 컴퓨터와 책상을 갖춘 사무 공간이 보인다. 한켠에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언뜻 마을회관처럼도 보인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영정 사진이 없었다면 그랬다. 2003년 2월 18일, 안타깝게 희생된 86명의 사진이다. 이곳은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실이다.

▲ 대구 동구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황명애 씨. 황 씨 너머로 그의 딸을 비롯한 지하철 참사 희생자 영정 사진이 놓여있다. 19년 전에 시간이 멈춘 사람들의 사진에서도 세월이 느껴진다.

우리에겐 제삿날이죠.

18일을 하루 앞두고 만난, 황명애(65) 씨의 첫 마디였다. 마땅히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2003년 2월 18일, 황 씨는 19살이던 첫째를 사고로 잃었다. 자식의 나이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가족’으로 살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그때를 설명하고, ‘유가족’으로서 일들을 한다. 황 씨는 대책위 회원들 평균 연령이 65세쯤 되는 거 같다고 했다. 세월만큼 유가족 모두 나이를 먹었다. 이들은 별일 없어도 시시때때로 사무실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많은 사건을 함께 겪으며 서로 ‘형님, 동생’ 하게 됐다. 이곳에서 같이 밥을 먹고 삶의 무게도 나눈다.

옛날에는 뭐 트라우마 같은 개념도 생소할 때고, 심리 치료할 시기도 놓쳤죠. 그때는 내 몸 생각하는 건 죄 짓는 거 같았어요. 오히려 우리 애를 그렇게 만든 죄인 아닐까 하면서 내 탓을 했죠. 내가 부자였으면, 그때 우리 애가 아르바이트를 안 다녔으면, 이랬으면 저랬으면 사고가 안 났을까 생각하면서···.

아르바이트 가던 딸과 나눈 마지막 인사
‘케미’좋던 딸,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개인 탓 말고, 시스템을 반성하고 바꿔야

황 씨의 딸, 한상임 씨는 수능시험을 치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동성로 식당에서 사회 경험삼아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날도 딸은 출근을 위해 나섰지만 식당에 이르지 못했다. 황 씨가 딸에게 건넨 “잘 다녀오라”던 말이 마지막 인사로 남았다. 황 씨는 “학교랑 또 다른 사회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밌어했다”며 “친구 같은 딸이어서 같이 저녁도 자주 준비했고, 그때면 딸이 미주알고주알 하루 있던 일을 제게 말해줬다. 요즘 말로 저와 ‘케미’가 좋던 딸”이라고 했다.

상임 씨 동생들의 말과 모습에서, 살아있었다면 이모와 조카 관계였을 황 씨의 손자에게서 딸의 모습이 겹쳐진다. 황 씨는 “그럴 때는 모르는 척하면서 아까 했던 말을 다시 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떨 땐 일부러 피하기도 한다”고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딸 이야기를 하는 황 씨의 눈가가 촉촉했다.

이제 황 씨는 ‘내 탓’이 아니란 걸 안다. 황 씨는 “내가 죄인이 아니고, ‘그들’이 잘못해서 내 딸이 사고를 당한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고 했다. 황 씨는 2009년 8월부터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황 씨는 “지하철 내부가 화재에 취약했고, 기관사와 상황실이 소통이 안 됐고 제대로된 사고 대처 매뉴얼이 부족했다”며 “사고 이후에도 현장 보존과 사고 처리 과정까지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처음 지하철에 불을 낸 사람, 마스터키를 들고 도망간 기관사 등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려요. 그런데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어요. 마스터키를 안 뽑았더라도 어차피 화재로 전기가 끊겨 상황은 달라질 게 없었어요. 저도 당시에는 그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랬죠. 이런 마음이 들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대형참사로 이어진 건 화재 대비가 안 된 지하철과 책임자들이 문제였죠. 그렇게 만든 ‘시스템’ 때문입니다.”  

▲ 대구 동구에 있는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전시된 불에 탄 전동차 1079호를 사람들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시민안전테마파크)

우리 사회가 ‘소 잃고 외양간 못 고치는’ 것 같아
추모사업 통해 희생자들 목숨 헛되지 않길

황 씨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을 못 고치는’ 것 같다며 유감스러워했다. 그는 “그때 이후에도 수많은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지않냐”며 “잘못된 제도를 바꾸고 사고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진작 시행됐어야 하고 여기엔 공무원도 포함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산업재해 뿐만 아니라 ‘중대시민재해’도 포함된다. 대중교통수단과 공중이용시설, 제조물 등에서 발생한 결함에 따른 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마찬가지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지난 2008년 대구 동구 팔공산 인근에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개관하면서 ‘추모 공원’ 명칭을 쓰려고 했지만, 주변 상인 반대로 무산됐다. 대구시와 여러 송사에 휘말리면서 갈등도 있었다. 황 씨는 “대구시에서 군인을 동원해 물청소를 하는 바람에 유족들이 차량기지에 가서 쓰레기 더미를 뒤져 뼛조각을 찾아내는 일도 있었다. (‘암매장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억울함이 풀려 소리 지르고 싶었다”면서 “유가족으로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움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며 토로했다.

특히 황 씨는 여전히 제대로된 추모시설 하나 없는 현실에 답답해했다. 황 씨는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지만 여전히 추모 사업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며 “저희들은 추모탑, 추모공원, 추모전시관을 만들었으면 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이 사건을 기억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이런 참사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으로서 못 다 이룬 일이 남은 셈이다.

우리는 공동묘지를 만들자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엄마와 아빠 손 잡고 도시락 싸와서 놀러오고, 부모님이 아이에게 여기에 이런 분들이 있다고 설명해줄 수 있으면 해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여기와서 희생자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았다고 그렇게 이야기 해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먼저 간 이들을 함께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