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람의 앞으로 Afro] 젬베와 유니크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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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베(Djembe)라는 악기는 역사가 오래되어 기원이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절구통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가진다. Djembe의 어원은 ‘Dje’는 ‘모이다’, ‘Be’는 ‘평화’란 뜻으로 사람들이 모여 평화를 기원하며 연주하는 악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젬베가 아프리카에서 온 악기라는 것을 이제는 아는 분들도 생겼지만, 그 넓고 방대한 대륙인 아프리카 전역에서 연주했던 악기는 당연히 아니다. 13세기 서아프리카 지역(지금의 기니, 말리,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등)에 세워진 옛 말리 왕국에서 젬베라는 악기가 드러나고 성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말리 왕국의 문화권을 만뎅(Mandingue)문화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젬베를 비롯한 그 시대 그 지역의 악기를 만뎅악기, 그때 연주되는 리듬을 만뎅리듬, 그때 추던 전통적인 춤을 만뎅댄스라 지칭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고 이해하도록 서아프리카 악기, 서아프리카 춤이라고도 지칭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앞으로 만뎅이라는 말을 이해하길 바란다.

▲기니(Guinea)산 젬베_ 13-14인치 사이즈의 악기가 제일 좋다.

연주는 손으로 하며 연주하는 위치와 손의 정교한 감각으로 가장 낮은 소리(Bass), 중간소리(Tone), 높은 소리(Slap)를 낼 수 있다. 젬베가 수백 년, 길게는 천 년 이상 걸쳐 온 만큼 이 악기가 온전히 자신의 소리를 가장 적합하게 내기 위한 연주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최소한 이 악기를 연주한다고 하면 기본적인 연주법은 알고 연주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젬베가 대중들에게 어쿠스틱 밴드의 리듬 악기로, 비교적 휴대가 간편한 장점으로 버스킹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나무라진 않는다. 다만,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연주법 정도는 제대로 알고 연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로 쳐도 잘만 치면 되지 않으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로 쳐서 비슷한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인정하도록 하겠다만, 그렇지 못하기에 이미 역사로 검증된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젬베 소리를 잘 내기 위해서는 배움과 인내, 노력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은 피아노나 기타, 바이올린이나 다른 악기들과 다르지 않다. 만약 젬베가 생각처럼 진짜 쉬운 악기였다면 나는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같이 유튜브로 많은 정보를 취득하기 좋은 세상은 비주류 악기를 대중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만큼 넘쳐나는 정보 중에 대중들이 올바른 정보를 골라내기란 쉽지 않다. 조회수가 매우 높은 영상들이 엉터리인 경우도 종종 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비판하지 말고 그럼 당신이 바른 젬베 교육영상을 만들어 올리시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나는 바쁘고 좋지 않은 영상에 대응하려고 영상을 만들고 싶진 않다. 그냥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배우시오. 젬베는 독학으로 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젬베 몇 분 만에 완성, 이런 썸네일을 가장 경계하라. 악기를 배우는 것은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다. 정석으로 갈수록 단단한 기초를 가질 것이고 단단한 기초는 결국 더 수준 높은 실력을 만드는 지름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젬베를 취미로 배우는 분들을 위한 클래스가 있다. 대체로 처음에는 대중가요에 맞춰서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노래 부르면서 가볍게 연주하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오시는 분들이 다수다. ‘내가 원하건 이런 게 아니야’하고 떠나는 분, ‘어? 이런 것도 있네. 해보니 이게 더 재미있네’하는 분들, 또는 기대하던 바가 이게 아니었지만 기초라고 하니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분들로 나뉜다.

알고 보면 참 까다롭고 어려운 악기가 젬베다. 어디서도 배우기 어려운 서아프리카 만뎅문화권의 전통 장단들. 취미로 배우는 악기면서 박자를 넘나드는 복잡한 폴리리듬과 어려운 리듬 체계를 배우는 사람들. 아예~ 씰라빌라요~ 발음도 어려운 만뎅문화권의 언어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나는 이런 분들을 존경한다. 유니크함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 그 유니크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대구젬베클럽_ 매주 화요일 젬베를 배우는 사람들

더불어 전문연주자들도 더 많아지면 좋겠다. 내가 기존의 커리어를 모두 그만두고 이 악기에 올인한 것을 보고 ‘열정이 대단하다’, ‘낭만이 있다’고 이하지만 사실은 낭만보다 (그런데 정말 낭만적인 악기임에는 분명하다.)는 계산이 우선이었다.

당시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대한민국에 젬베를 전문으로 연주하는 선생님이 몇 분 없었다. 대구의 연주자는 아예 없었기 때문에 ‘내가 빨리 먼저 시작해서 일등 먹어야지’, ‘내가 이 블루오션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깊게 몰입했다.

배우는 일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해외에서 훌륭한 선생님의 워크숍이 열리면 비행기 티켓부터 예매했다. 배우는게 너무 재밌어서 순간순간 벅차올랐다. 이건 정말 행운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나와 같은 열정적인 학생들과 친구가 되는 일도 좋았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전 세계적으로 이 씬의 네트워크는 정말 끈끈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젬베 치는 친구가 있었다. 비행기를 기차 타듯 다녔지만, 덤으로 여행의 묘미도 함께 누렸다. 그것은 정말 특별하고 낭만적인 일이었다.

비주류 씬을 개척하는 일은 외롭고 막막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유니크함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확실히 나는 그 덕을 크게 봤다. 배울 곳이 없다보니 멀리 거제도에서 대구까지 오는 학생도 있었다. 내가 창단하고 운영하고 있는 공연단체 ‘원따나라’도 유니크함이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서아프리카 공연예술그룹 원따나라
▲서아프리카 공연예술그룹 원따나라

이런 공연팀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버릴 수 없는 카드랄까. 배우는 과정, 팀이 연주자를 양성하고 호흡을 갖추는 것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기에 아무나 따라 만들 수도 없다. 저변확대를 위해, 이 씬의 발전을 위해, 지역에 한두 개쯤은 좋은 팀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장려한다. 만들려고 하는 제자들을 위해 선배로서 도움도 줬지만, 아직도 경쟁팀이 생기지 않았다.

그만큼 타문화권의 전통음악과 춤을 이수하고 실력을 갖추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 이 악기, 이 장르는 우리 지역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유니크하다. 전문 공연 악기로서 매력적인 사운드를 뽐내고 음악교육, 음악치료에도 너무나 활용하기 좋은 악기임에는 분명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덤벼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키운 소수의 젬베연주자는 나와 비슷한 세대다. (대구에 젬베연주자는 다 아기 엄마들이 되었다. 하하…)다음 세대는 누가 될까. 대구에서 다음 세대의 젬베 연주자는 아직 공석이다. 꼭 이 씬이 아니더라도, 희귀하고 특별한 것이 마음을 당긴다면 기꺼이 선구자가 되어 보라.

이보람 burst84@naver.com
‘공연예술가. 상세히는 서아프리카 공연단체인 원따나라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으로, 또한 타악기 연주자로 공연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젬베라는 악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사명감으로 교육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올해 6살인 에너지 끝판왕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