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이름은 비정규직, 아사히 투쟁과 함께한 노동자 문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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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이 글은 전국금속노동조합이 발행하는 <금속노조 문화소책자-노동자문화길찾기3>에 실렸습니다. 금속노조와 필자의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 싣습니다.]

내 이름은 비정규직, 아사히 투쟁과 함께한 노동자 문화 (1)

들꽃 공단에 피다
-우리가 책을 만들다니!

2016년 말에 연대했던 동지들이 ‘투쟁을 알리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2017년 1월부터 조합원들이 글 쓰는 작업을 시작했다. 신순영, 박현진, 안명희(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초희(삼평리송전탑공사반대투쟁), 천용길(뉴스민 편집장), 이경호(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동지들과 함께 만들었다. 아사히 투쟁을 담은 책 <들꽃 공단에 피다>는 2017년 5월 29일 발간됐다.

▲2017년 5월 29일 출간한 ‘들꽃, 공단에 피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음, 도서출판 한티재

책을 쓰는 것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투쟁하지 않았다면 살면서 책을 쓸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많은 동지들의 도움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전체 조합원들이 각자 직접 글을 썼다. 주제별로 그 당시 우리의 생각들을 잘 담았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책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만큼 힘든 건지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조합원들의 저항도 심하기도 했다. ‘글 쓰는 건 앞으로 절대 하지 말자’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도 책이 나왔을 때 서로가 뿌듯해했다.

조합원들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동지들의 진실하고 절실한 마음이 와 닿아서 좋았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 동지들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동지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것 같다.”, “전국에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더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동지들의 생각과 내면을 알 수 있었고, 조직의 굳은 결속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다시 한번 투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좋았다.”고 평가했다.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다. 승리한 투쟁은 투쟁대로, 패배한 투쟁은 또 그 투쟁대로 교훈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쓴 책들이 앞으로 더 나왔으면 한다. 이런 책들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고민을 나누는 것 역시 결국 함께하는 연대다.

책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대구지검 농성을 하면서, 어려운 시기였다. 지역을 넘어 진행하는 농성에서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며 결합하는 농성에서 빠지는 사람에 대해 서운해하기도 했고, 서로 불만이 생기던 때였다. 모두가 다 힘드니 나의 고민을 다른 동지에게 나누기도 어려운 때이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직접 쓴 글이 책으로 나오니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됐다. 이 책은 6천 부 정도가 팔렸다. 수익금은 모두 감사하게도 우리의 투쟁기금으로 돌아왔다.

내 이름 비정규직
-아사히의 노래

금속노조 백일자 문화국장이 아사히 투쟁을 다룬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우리의 투쟁 이야기를 과연 노래로 만들 수 있을까?’ 의문과 걱정을 안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첫 회의 때의 난감함이란! 그냥 글을 쓰는 것보다 가사를 쓰는 것은 더 어려웠다. 각자 우리의 투쟁 이야기를 써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번 회의를 거쳤다. 그중에 어떤 부분을 포인트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담을 것인지를 상의해서 노랫말을 만들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노랫말에 들어갈 것인가 아닌가를 놓고도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니 지회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가사는 우리 지회만의 투쟁에 한정하지 않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이야기를 담은 노래, 내 이름은 비정규직

최종 가사는 선언의 박현욱 동지가 멋지게 잘 다듬어 줬고, 작곡은 백일자 문화국장이 직접 했다. 처음에는 템포가 느렸고 트로트 같다는 생각도 했다. 노래의 느낌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했다. 이후 우리의 의견이 잘 반영된 약간 빠른 템포에 힘 있는 멋진 곡이 완성됐다.

선언 동지들과 함께 노래 녹음도 했다. 비록 2절 코러스 부분이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노래를 녹음해보니 ‘진짜 가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의 조언과 기술로 녹음을 잘 마무리했다. 동지들의 도움으로 더 완성도 높을 곡이 된 것 같다. 우리가 직접 정한 ‘내 이름 비정규직’ 제목도 정말 맘에 들었다.

이 노래가 금속노조 집회 때마다 올려지게 된 것은 몸짓까지 만들어져 문선대가 운영되었기 때문이다(몸짓도 선언 동지들이 창작했다). 정말 가사 하나 음정 하나 허투루 버리는 것 없이 몸짓으로 정말 잘 표현됐다. 멋있고 정말 맘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몸짓 곡 중에 제일 난이도가 높았다. 배울 때 정말 힘들었고 익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20년 7월 아사히투쟁 5년 승리 결의대회에서 문선을 하려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이날 금속 몸짓 문선대 동지들이 무대를 꽉 채웠다. 첫 무대라 부족했지만, 대오에 있던 아사히 동지들은 많이 감동했다. 아사히 집회에서 이렇게 많은 몸짓패가 합동 문선을 한 것이 처음이라 더 감동이었다. ‘내 이름 비정규직’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당당히 투쟁해 쟁취하리라!’는 이 가사 말처럼 우리도 당당히 투쟁해서 ‘온전한 승리를 쟁취하리라’고 매번 다짐한다.

그 이후 금속노조 주요 집회 때마다 해고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 곳에서 이 곡으로 문선을 한다. 2021년 3월 2일 진행한 금속노조 20주년 기념 공연에서도 비정규직 이야기를 다룬 연기와 함께 이 노래가 공연 곡으로 쓰였다. 문선대 덕분에 이 노래는 더 생명력을 얻게 됐고 노래가 불리는 곳마다, 공연이 진행되는 곳마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더 알려지게 됐다.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까지

아사히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김상패 감독이 촬영한 영화다(<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감독:김상패 제작년도:2020년 상영시간:73분 장르:다큐멘터리). 초기 기획은 허공 중심의 촬영이었다. 감독은 ‘젊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나서 어떤 마음으로 투쟁하는지’를 담고자 했다. 촬영은 2018년 3월부터 시작했는데(2019년 5월까지 촬영) 그해 12월에 김용균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김용균 투쟁에 많은 시간을 연대했고 함께 가슴 아파했다. 이런 장면들을 영상 하나둘 담다 보니, 영화는 비정규직의 삶으로 초점이 변경됐다.

감독은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님의 사망은 충격이었다. 하루에 6명, 1년에 2,000여 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현실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면서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는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쫓겨난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국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난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거대자본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의 거미줄을 만들어간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다큐멘터리다 보니 일상생활을 다 촬영하고자 했는데, 먹는 모습을 찍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하지지 않았다. 언젠가 뒤풀이 모습을 찍을 때, 감독도 취해서 나중에 영상을 확인하니 바닥만 찍혀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 촬영 덕에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이겼을 때, 그 기쁨의 순간이 영상으로 남았다. 감독도 그 자리에서 함께 축하해 줬다.

물론 우리의 이야기가 부족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2020년 5월 13일 대구 오오극장에서 진행한 시사회에서 조합원들은 ‘우리 투쟁보다 다른 투쟁이 많아서 아쉽다’면서도 ‘우리 투쟁 외에도 비정규직 투쟁과 현실을 잘 담았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는 우리에게 또 힘을 주었다.

시사회도 하고 전국적으로 공동체 상영을 하고자 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극장 대관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신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요청하면 지회가 직접 가서 관객과의 대화도 나누고 하는 소규모 공동체 상영을 진행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