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이름은 비정규직, 아사히 투쟁과 함께한 노동자 문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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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이 글은 전국금속노동조합이 발행하는 <금속노조 문화소책자-노동자문화길찾기3>에 실렸습니다. 금속노조와 필자의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 싣습니다.]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문자 해고, 투쟁이 시작되다

아사히글라스는 일본 전범 기업이다. 경상북도와 구미시로부터 ‘12만 평 토지 무상임대, 15년간 지방세 감면, 5년간 세금 전액 면제’ 등 많은 특혜를 받으며 구미 4공단에 유치한 기업이다. 아사히의 연평균 매출은 1조, 사내 유보금은 9,000억이다. 아사히가 한국에서 벌어들인 엄청난 수익은 외투기업에 대한 특혜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며 일한 우리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아사히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9년 동안 최저임금만 받으며 일했다. 입사가 오래됐든 신입이든 관계없이 저임금은 비슷했다. 식사 시간, 쉬는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 기계처럼 일했다. 사소한 실수에도 시말서를 써야 했고, 징벌 조끼인 붉은 조끼를 입는 치욕을 견뎌야 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를 만들기 전까지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던 관리자들의 욕설과 막말이 사라졌다. 작업 현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노동조합을 만든 우리의 요구는 세 가지였다. 도시락 질 개선, 작업복 질 개선, 임금 인상. 당시 우리가 먹던 도시락의 단가는 천 원대였다. 밥에서 냄새가 나서 못 먹을 정도였다. 20분짜리 점심시간도 교대로 먹어야 해서 마지막에 먹는 사람은 늘 식은 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비정규직들은 캐비넷에 항상 컵라면을 쟁여뒀다. 질 나쁜 작업복도 우리를 괴롭혀왔다. 어쩌다 주머니가 없이 나온 불량 작업복을 받게 되어도 ‘그냥 입어라’는 회사였다. 싸구려라 땀 흡수도 제대로 안 됐고, 작업할 때 팔을 제대로 들 수 없어 어깨가 결릴 정도였다. 항의해도 바꾸지 않던 회사는 노조를 만들고 첫 교섭 자리에서 작업복 샘플을 세 벌을 준비해 왔다.

첫 교섭 날, 한 조합원이 ‘오늘이 첫 교섭인데, 머리띠라도 묶고 일하자’라고 제안해서 머리띠를 묶고 일하기로 했다. 정규직조차 노조가 없던 상황이라 식당에서 머리띠를 묶고 밥을 먹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머리띠 하나도 심장을 두근거리면서 맸던 기억이 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구나’ 했는데, 한 달 만에 문자 한 통으로 178명이 해고됐다. 해고 통보 다음 날 회사에 가니 공장 안팎에 경찰 버스가 빼곡히 있었고 정규직들은 구사대로 우리를 막아섰다. 그날 바로 공장 앞에 천막을 쳤다. 어색한 팔뚝질을 시작으로 우리의 기나긴 투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6년 4월 21일 오전 구미시가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노조 농성장 2곳에 행정대집행을 했다.

몸짓패 ‘허공’의 탄생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 본 몸짓은 KEC지회 몸짓패 ‘창공’의 공연이었다. 몇 명이 같은 옷과 신발을 맞춰 입고 집회 때 몸짓을 했다. 뭔지 잘 모르겠으나 멋있었다. 2015년 9월 5일 아사히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진행 준비하면서 지회도 몸짓패를 만들게 됐다. 그 당시 조직부장이 비교적 젊은 막내급 조합원들로 몸짓패를 구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조직부장 외에 나머지 조합원들은 키가 다 작았다. 의도된 것인지 그냥 막내들이 다 키가 작은 것이었는지…) 처음에는 일회성 공연만 하는 줄 알았는데, 9월 5일 집회에 연대 온 울산과학대 동지들이 자신들의 투쟁문화제에 우리를 초청했다. 그렇게 연대를 한두 번 하다가 벌써 6년째 몸짓패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몸짓패 허공

패 이름 허공의 뜻은 ‘허를 찌르는 공연’ 그래서 허공이다(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허공이 결성되고 나서 처음에는 농성장 근처 다리 밑에서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시민들이 이상하게 쳐다봐서 창피했다. 지금은 KEC지회 대회의실에서 연습한다. 대형 전신 거울이 달려있어서 연습에 많은 도움이 된다. 몸짓선언 김정희 동지에게 체계적으로 강습받다 보니 이전보다 실력도 많이 늘었고, 회의하고 평가하는 문화도 잘 자리 잡았다.

투쟁하는 동지들이 부르면 가능하면 무조건 달려가는 게 허공의 연대 기조이다. 특히 비교적 힘이 없는 작은 사업장, 소외되고 고립된 투쟁을 하는 동지들에게 먼저 연대하고 있다. 힘을 주러 가지만 오히려 힘을 받아 오는 것이 연대의 ‘진짜 힘’ 같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몸짓패 허공

한주가 멀다 하고 허공의 공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2019년 톨게이트 동지들의 김천 도로공사 농성 투쟁에 연대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지들의 투쟁도 대단했지만,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전체 조합원이 거의 매일 연대했다. 한번은 동지들이 ‘허공’에게 율동을 가르쳐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해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나중에 한 조합원이 “조합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분열도 생기던 시기였는데 함께 몸짓을 배우면서 단합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굉장히 고마워하기도 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도 투쟁사업장이라 없는 살림이지만, 우리의 예산을 끌어모아 톨게이트 동지들의 연말 문화제를 연 적도 있다. 톨게이트 동지들이나 아사히 동지들에게 이날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우리가 시작했을 때 춤을 추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투쟁을 알리기 위해, 연대를 위해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문화패 활동은 투쟁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 왔다. 몸짓패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대표하는 활동이 됐다. 몸짓 문선을 통해 우리의 투쟁을 많이 알려냈다. 조합원들은 투쟁하면서 많은 면에서 성장했다. 허공도 문선 연대를 하면서 성장했다. 투쟁 속에서 근로자에서 진짜 노동자로 변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허공을 보면 우리의 투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거울을 보며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허공은 아사히 투쟁이고 아사히 투쟁이 곧 허공이다. 그래서 몸짓패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수요 투쟁 문화제

2015년 7월, 지회는 아사히글라스를 노동부에 불법파견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노동부가 불법파견 기소 의견으로 송치해도 다시 재조사 명령을 내렸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2년 넘게 시간을 끌었다. 노동부·검찰에 수사 진행 상황을 문의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노골적으로 자본 편향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검찰이 고의로 시간을 더 끌 것이 분명했다.

▲2018년 11월 5일 오후 2시 아사히비정규직노조가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있다.

우리는 2017년 8월 29일 대구지검 앞 천막 농성장을 설치하고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기소’와 ‘대구지검장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자 2017년 8월 31일, 노동부는 ‘불법파견 기소 의견’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단한 6천 페이지의 증거자료를 무시했다. 고소인들을 적극적으로 조사하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아사히글라스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부실 수사였다. 2017년 9월 22일 노동부가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해고된 노동자 “178명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2017년 12월 22일, 아사히 글라스 불법파견을 ‘무혐의’로 처분했다. 즉시 항소하고 검찰을 대상으로 한 투쟁을 끈질기게 이어갔다. 결국 검찰은 2019년 2월 15일 불법파견을 기소했다. 2021년 8월 9일 법원은 아사히글라스 대표 하라노타케시 징역6월(집행유예 2년), 법인 벌금 1,500만 원의 선고를 내렸다. 제조업 최초의 징역형이었다. 아사히글라스를 불법파견으로 고소하고 6년 만에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였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매주 수요일 문화제를 열고 있다.

대구지검 앞 천막을 설치한 다음 날인 2017년 8월 30일 수요일에 문화제를 시작했다. 농성 중에 꾸준하게 수요문화제를 진행했다. 농성이 끝나고 나서, 연대를 확장하기 위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지역의 활동가 동지의 제안으로 2018년 3월부터는 공장 앞에서 문화제를 시작했다.

우리의 분명한 투쟁 전선은 아사히글라스다. 공장 앞에는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천막 농성장이 있다. 그 자리에서 매주 수요일 수요문화제를 연대 동지들과 함께한다. 장기 투쟁 사업장에 고정적인 문화제(또는 집회)가 있다는 것은 ‘꾸준하게 우리가 싸우고 있다’를 알려내고 ‘언제든지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열어 놓는 의미가 있다. 이런 실천은 자본에 승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기세와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연대 동지들의 기세를 보여준다.

고립되지 않고 연대를 확장하기 위해 문화제를 이어오고 있다. 수요문화제를 할 때마다 ‘우리가 연대를 잘하고 있구나’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서로 위로하고 힘을 주고,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톨게이트 투쟁이 끝나고 나서, 구미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톨게이트 동지들이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주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아사히글라스

물론 매주 문화제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름이 문화제다 보니 매번 공연을 섭외하기도 어렵고, 새롭게 컨셉을 잡아 진행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문화제 준비는 임원 회의에서 우리의 투쟁 상황이나 정세에 맞게 큰 틀을 논의하면, 기획팀에서 구체적인 실무를 한다. 현재 기획팀은 몸짓패 3인(현재 사무장, 조직부장, 문체부장을 맡고 있다)과 수석부지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제를 할 때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조합원들은 몸짓을 하나 배우더라도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먼저 한다. 하지만 땀 흘린 만큼 좋은 무대를 했을 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이 자신감은 우리 투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