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무투표 당선 양산 제도 앞에 국힘-민주는 ‘깐부’

09:42
Voiced by Amazon Polly

전국동시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가 494명에 달한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선거 없이 반장을 선출한 적이 있다. 담임교사가 성적 1등을 반장으로 지목하면서 선거가 없었다. 8~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이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무투표 당선 경험도 떠올랐다. 고등학교 전교부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2명이 등록했고, 두발자유화를 주요 공약으로 선거운동을 준비했다. 그러나 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학교가 입후보 신청을 받은 후 부회장을 2명 뽑는 것으로 바꿨다. 단독 출마에도 가까스로 당선된 적도 있다. 대학시절 단과대학생회 선거에 부회장으로 단독 출마했지만, 투표율 50%라는 벽을 겨우 넘어섰기 때문이다.

무투표 당선은 여러 측면을 살펴봐야 겠지만 핵심은 선거제도다. 1명만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은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단체장 무투표 당선자는 모두 거대당의 독주가 완연한 도시에서 났다. 6곳 중 3곳이 대구·경북(중구, 달서구, 예천군)이고, 3곳은 광주·전남(광산구, 보성군, 해남군)이다.

그러나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자가 106명은 선거제도의 문제다. 대구시의원은 32명, 이 중 지역구 선거에서 29명을 뽑는데 20명이 무투표 당선이다. 김대현 시의원(서구 제1선거구)은 두 번째 무투표 당선이다. 경북도의원은 61명 중 55명을 지역구로 뽑는데 17명이 무투표 당선이다.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광주시의원 11명, 전남도의원 26명도 무투표 당선인데,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위성정당으로 누더기가 됐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마당에 광역의원선거에도 1명 뽑는 소선거구제도를 그대로 두고 있다. 중대선거구제,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과 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의회 다양성 확보, 무투표 당선자 속출 방지가 가능함에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기초의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수도권 당원들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시민이 특정 정당에게 지지를 많이 보내줘서 그런 것 아니냐고 손가락질한다면 기가 찰 일이다. 2인 이상을 뽑는 기초의원 무투표 당선자는 수도권이 더 많다. 인천은 기초의원 지역구 무투표 당선자가 20명인데,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나란히 10명씩이다. 모두 2인선거구였다. 서울·경기의 무투표 당선자도 2인 선거구인 곳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나란히 1명씩 공천한 지역이 대부분이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에도 무투표 당선자가 대거 나왔다. 무투표 당선자가 나온 경북 고령, 군위, 문경, 봉화, 성주, 영덕, 영양, 예천, 울릉, 울진, 청도, 청송, 칠곡은 비례대표 기초의원이 1명이다.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 무투표 당선됐다.

대구 중구, 서구, 남구도 마찬가지다. 비례대표인데 1명만 뽑으니, 다른 정당은 후보자를 아예 내지 않는 것이다. 1등을 하지 못하면 1석도 가질 수 없으니 20%, 30% 득표가 가능한 정당도 총 의석수가 10석 미만인 기초의회에선 비례대표 당선자를 낼 수 없다. 기초의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한다면 지역구 의석을 다수 가져간 정당이 덤으로 비례대표 1석을 가져가는 무투표 당선은 안 볼 수 있다.

2명을 뽑는 대구 달성군의회 비례대표 선거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1명씩 등록해 무투표 당선을 확정했다. 3명을 뽑는 경북 경주시의회는 민주당 1명, 국민의힘 2명 등록해 무투표 당선을 확정했다. 극히 적은 수를 비례대표로 뽑는 현행 제도는 이렇듯 거대 정당의 담합을 가능하게 한다.

무투표 당선자를 500명 가까이 배출하고도 선거제도를 그대로 둔다면 현 제도의 수혜자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다. 양당은 서로를 향해 연일 핏대를 높이지만, 선거제도 앞에만 서면 ‘깐부’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