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나의 죽음을 SNS에 올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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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왜적의 유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남긴 말이다. 만약 지금 상황이라면 “나의 죽음을 SNS에 올리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세계는 초연결 사회이기 때문에 SNS 즉 ‘소셜 미디어’에 올리면 전 세계에 다 알려지기 마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군 자신의 죽음 사실이 악용될까 우려해서 SNS에 올리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증명되고 있다. 전장에 있는 장병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페이스북, 틱톡,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황과 전쟁의 참상을 시시각각 알리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세계의 여론을 주도하면서 전쟁의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SNS에 본인 영상을 올렸다. [사진=usa today] 영상 갈무리

‘해외로 피신했다’는 루머가 돌던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셀카를 들고 “우리는 모두 여기 있다”고 외쳤다. 이 영상이 텔레그램에 올라왔다. 순식간에 세계시민들의 손안에서 우호적 여론으로 바꾸었고 국민들에게는 전투의지를 고취시켰다. 우크라이나 현지 주들도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러시아군의 만행을 여과 없이 소셜 미디어로 통해 폭로했다. 지금 러시아군이 세계시민들에게 악마처럼 보이는 이유다.

러시아는 현재까지 소셜 미디어 전쟁에서 연거푸 패배하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 독재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자, 처음엔 SNS를 차단했다가 부랴부랴 되살려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시민들의 민심을 돌리기엔 이미 늦은 것 같다.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도 치열한 미디어 전쟁이 있었다. 주요 수단은 방송매체였다. 미군은 미디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예 전투현장에 기자를 대동하기도 했다. 덕분에 세계는 하이테크 전쟁으로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는 미군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전쟁 이후 2004년 ‘이라크 자유작전’에서 뜻하지 않는 일이 군내부에서 터졌다. 바그다드 인근에 있는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미군 장병 2명이 이라크 군 포로를 성추행한 모습이 미 언론에 공개되었다. 이 영상물 하나가 이라크 전역에 반미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라크에 파병된 필자는 현장에서 그 싸늘한 기운을 직접 느꼈다. 것 잡을 수 없는 반미감정이 이라크에서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현재 소셜 미디어에는 우크라이나 관련 미담이 쏟아지고 있다. 온 국민이 결집하였기에 가능하다. 만약 사분오열되었다면 이미 소셜 미디어 전쟁에서 완전 패배했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 전쟁에는 전선이 없다.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가슴이 전장이다. 가슴을 울리는데 가장 큰 영향력은 구성원들이 구축한 신뢰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소셜 미디어에서 영향력의 원천은 세계시민들이 보내 주는 신뢰다. 러시아에 맞서는 의연한 리더의 모습을 세계시민들은 소셜 미디어에 감동을 더해 퍼 날랐다.

소셜 미디어의 강점은 자정능력이다. 가짜뉴스를 잡는 것도 균형 감각을 지닌 소셜 미디어이다. 우리 사회에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사람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에 언행이 다르고 시류에 영합하는 정치인을 찾아내어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강점만큼 약점도 드러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항복했다’는 가짜뉴스가 등장했다. 일반인은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외에도 소셜 미디어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쟁의 판도까지 바꾸는 소셜 미디어는 우리 사회를 전광석화처럼 변화시키고 있다. 여기엔 긍정과 부정이 뒤섞여 있다. 이 와중에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 본연의 삶을 추구하는 자세이다.

소셜 미디어는 진솔한 삶을 공유하는 매개체로서 공공의 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플랫폼으로서 ‘신뢰의 원천지’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전쟁의 판도까지 바꾸는 소셜(social) 미디어가 세계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