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천국의 문’, 진정한 공포는 바로 현실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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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사회적 불안의 결합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이를 부정할 심리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중 발췌

‘코스믹 호러’, 흔히 ‘우주적 공포’로 번역되는 장르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는 호러 소설에 대해 쓴 문학 에세이에서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물론 러브크래프트는 다양한 역사적/신화적 소재들을 구사하면서도 순수하게 이를 공포를 불러오는 코드로만 활용할 뿐,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건 지양한 편에 가깝다. 그러나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의 해석은 독자에게 오롯이 넘겨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독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작품 속 인물이나 배경에 투영해 상상력을 배가하는 것으로 각자의 해석을 확장한다. 사실 작가들 또한 그 자신이 사회적 산물이기에 온전히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모든 걸 구성할 도리는 없다. 다만 자신의 창작물이 지나치게 현실과 비교당하는 것을 경계한 나머지 알레고리에 대한 거부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공포 장르는 문학이건 영화건 ‘B급’이란 낙인이 붙곤 한다. 대개 대중의 취향에 따라 시간 때우기용 흥밋거리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러브크래프트가 에세이에서 ‘선언’ 수준으로 천명한 것도 그런 폄하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테다. 하지만 조잡하게 양산된 공포물이 수준 이하인 것과는 별개로 수준 높은 공포 창작물은 원초적 각인과 확장된 해석 모두에서 강렬한 위력을 과시한다. 여기에 다양하게 SF와 마찬가지로 다양하게 현실에 대입해 해석할 거리가 추가될 경우엔 풍자를 넘어 하나의 ‘현상’에 가까운 개입 또한 가능한 잠재력을 가진다. 창작자가 순수한 감정으로서의 공포에 치중하느냐, 현실 풍자 혹은 은유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공포 장르는 다양한 변용과 해석의 우주로 대중을 안내하는 통로가 된다.

한국 영화, 특히 독립영화에서 공포 장르는 기존의 정치사회적 표현과는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곤 했었다. 영화 역사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해당 장르의 전통을 적당히 활용해 현실 문제와는 유리된 채 그저 재미만을 찾는다는 의구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장르 문법보다는 그러한 구성요소들을 활용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가가 관건일 텐데, 공포 장르는 한국처럼 압축성장 과정에서 부작용 많은 사회에선 창조적 응용 관련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는 장르가 될 수 있다.

대구지역 독립영화는 흔히 사회현실에 대한 시선이 특징인 것처럼 간주해 왔다. 과거의 독립영화들처럼 강렬한 정치적 의식을 표출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 나는, 현실의 단면에 대한 관찰과 세밀한 표현에 주목한 일군의 작품들이 분명 존재하고 현재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개별 창작자의 지향에 따라 다채로운 경향은 이미 탄생했고 조금씩 확장되는 중이다. 그중 지역에선 희귀한 공포 장르에 꾸준히 정진해온 김규태 감독의 <천국의 문>은 사회현실에 대한 풍자와 장르 문법을 결합하려는 시도의 선봉에 서 있는 작업이다.

2_제목이 던지는 역설: 영화 속 세계의 풍경

한 남자가 차 안에서 무엇인가 기다리며 방송을 듣고 있다. OECD 내 수위권 산업재해 대국(?!)인 한국에서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산업현장 인명사고 뉴스다. 심부름을 다녀온 후배가 돌아오자 그는 방송을 끄고 잡담을 나누기 시작한다. 변변찮은 소규모 흥신소 일을 하는 용배와 성태는 의뢰를 받고 어떤 고택을 찾아낸다.

수상쩍어 보이는 의뢰인은 그 고택에 심상찮은 기운이 괴여 있다며 기괴한 의식을 거행한다. 의뢰인은 오컬트 제의를 통해 초자연적 존재를 소환한다. 그 존재가 사역을 당한 끝에 ‘어쩌면 천국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를’ 이 세계의 입구가 그들 앞에 열린다. 그리고 귀부인은 용배에게 유혹적인 제안을 던진다. 그리고 용배와 성태가 제안을 거절하기엔 그 조건은 겉으로는 너무나 매력적인 내용이다.

<천국의 문>은 전형적인 ‘코스믹 호러’의 자장 아래 있는 작품이다. 이 소 장르에서 금단의 지식 혹은 영역은 절대로 인간이 다가가선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금기를 무시하고 다가가는 모험심 넘치는 종족이기에 불빛에 모여드는 나방 마냥, 다양한 형태의 유혹에 이끌린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만다. 하지만 그들이 금단의 영역에 접근하는 대가는 오직 파멸뿐이다. 코스믹 호러의 단순하지만, 지극히 효과적인 이야기 전개 패턴이다.

20세기 초반,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크툴루 신화’를 창조한 이래 스티븐 킹에 이르기까지 이 전통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의뢰인의 제안은 한눈에 봐도 21세기 현실세계 잣대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미심쩍기 짝이 없다. 숫제 위험천만하다고 쓰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펼쳐지는 상황. 그럼에도 불길한 기운이 넘실대는 암흑 우주로 멀쩡한 사람을 뛰어들게 만드는 동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천국의 문>은 멀쩡한 이들을 눈멀게 하는 파멸의 드라마로 관객을 ‘모든 것은 계획대로’ 가이드하기 시작한다.

3_각자의 애환 탓에 파멸하거나 방관하고 마는 비극성

감독은 여기에서 전형적 코스믹 호러 장르영화에 21세기 신자유주의 지배하 한국사회와의 접속을 추가하려 시도한다. 서구 코스믹 호러 관련 창작물이 금단의 지식욕이나 보물에 대한 탐욕 혹은 영생이나 불사에 대한 금기를 주요인으로 삼는 데 비해 <천국의 문>에서 주인공들을 암흑 우주로 끌고 가는 건 너무나 소박한 목적에서다. 그저 각자가 처한 가난에서 조금 더 나은 삶으로 탈출하고픈 욕망이다. 그리고 이런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꿈을 부추기고 유혹하는 건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 그 자신은 책임과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기득권층의 사탕발림 유혹이다.

용배와 성태는 위험한 걸 알면서도 그 독주가 담긴 잔을 거부하지 못한다. 의뢰인 역시 처음부터 그걸 빤히 알고 있다. 용배는 부하인 성태를 암흑의 심연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 그리고 성태는 위험의 대가인 돈 가방을 바깥에 남은 용배에게 믿고 맡겨두지 않는다. 의뢰인과 그의 수하들은 그 문과 관련된 어떤 것과도 접촉하지 않으려는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누가 봐도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일이란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주인공들은 그 ‘천국의 문’으로 향해야만 한다. 애초에 현세에 열려서는 안 될 비정상적인 공간이다. 그런 관문을 개방하게 할 권능을 가진 존재마저 사역으로 부려 먹는 의뢰인들이 과연 영세 흥신소에 굳이 일을 의뢰할 이유가 있을까?

스크린 너머로 편히 의자에 앉아 관전하는 관객에게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어리석음이 그저 안타깝거나 자업자득으로 보일 테다. 하지만 자신이 영화 속 세계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면 과연 관람할 때처럼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리고 영화는 인물 각자의 상황을 여러 가지 장치들로 미리 관객들에게 제출해 둔 상태다. 그런 사전준비를 거쳐 단순하지만 흡인력 강한 괴담을 통해 영화는 일종의 우화적 효과를 자아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결국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장기말에 불과하다. 주인공들이 오랜 수고 끝에 찾아낸 후 이제 목숨을 걸고 탐험하게 되는 그 ‘천국의 문’은 의뢰인과 그의 고용주에겐 그저 “아님 말고”에 불과한 케이스일 뿐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에게 수고의 대가로 내건 돈 가방은 그들 자신이 겪어야 할 위험을 떠넘기는 대가로는 너무나 하찮은 몫에 불과하다. 더 으스스한 사실. 흥신소 직원들을 턱으로 부리며 이용하는 의뢰인 또한 그저 고용주의 주문을 받고 수행하는 에이전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진짜 의뢰인은 목소리조차 확인할 길 없는 휴대전화기 너머에 존재한다. 그런 몇 단계 걸쳐진 수직의 계급단계 밑바닥에서 의뢰인의 손바닥 안에 쥐인 것처럼 주인공들은 조종당해 놀아나고 만다. 그들을 파멸 위협에 노출하는 현대의 크툴루 혹은 이 세계의 잔혹한 변덕쟁이 신들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체제 그 자체이다.

▲천국의 문 스틸사진 [제공=호우주의보]
4_투박하고 직설적이지만 탄탄한 골격을 갖춘 장르영화

물론 <천국의 문>은 해당 장르의 고전들과 직접 일대일 비교할 정도로 정밀하진 못하다. 현실 사회모순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세련된 은유보다는 다소 직설적으로 연결고리를 표현하려 시도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떠올리게 될 도입부 장면, 의뢰인을 기다리는 차 안에서 듣던 라디오 뉴스 내용은 너무 빨리 영화의 숨은 주제의식을 끄집어낸다. 구조적으론 서로 잘 맞는 궁합이지만 표현은 좀 더 은밀하거나 중의적으로 갔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흥신소 사람들과 에이전트들 간의 자조어린 대사들은 주제에 대한 상상력을 암시하기보다는 주입식으로 관객에게 강제 설정해주는 느낌이 짙다. A는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처지이고 B는 희소질환을 병원에서 발견했으며, C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이지만 가족 병원비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고백하는 식이다. 개연성 상으로는 어긋나지 않지만, 관객에겐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되었다면 더 돋보였을 텐데 하는 그런 2% 부족한 느낌이 자주 튀어나온다. 장르영화의 문법과 사회적 배경을 녹여내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은 난이도의 작업이다. 하지만 감독은 크게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큰 방향은 좌표를 유지해내며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간다.

장르문법이 지배적인 단편영화에선 사실 배우들의 연기력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캐릭터에 충실한-비명을 잘 지른다거나 해당 장르 법칙대로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한다거나, 관객도 초반부터 배역의 운명을 짐작 할 수 있는 그런 유형의-연기가 미션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변주하기엔 폭을 그다지 넓게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한계범위 내에서 <천국의 문> 배우들의 연기는 크게 모자람이 없고 일정한 개성까지 두른 채 활약한다.

흥신소 소장 용배 역의 손승택 배우는 이제 곧 닥쳐올 위기를 직감하지만, 자신이 가진 소박한 욕망, 건강과 돈을 놓지 못하고 제대로 선택 장애의 딜레마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그와 조수 성태 둘 다 우리 각자가 가진 소박한 꿈 그 이상을 욕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둘에게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 앞에서 관객은 그저 서구 스플래터 무비가 “픽션인데 뭘 그래요?” 식으로 마음껏 현실에선 불가능한 신체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체험하게 된다. 주인공이자 극 중 이용당하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 상위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의뢰를 수행하는 귀부인 역 송아경 배우의 캐릭터는 ‘질서악’의 상징처럼 묘사된다. 극 중에서 인간을 초월한 존재마저 부려 먹는 에이전트의 존재감은 연극과 독립영화에서 갈고 닦은 배우의 연기력에 (소품으로 준비된 콘텍트렌즈 빼면) 의해 온전히 영화 속 시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놓치느냐 마느냐 달린 운명의 밧줄처럼 미니멀 시공간에서 배우들의 적절한 캐릭터 소화 덕분에 <천국의 문>은 긴장감을 거의 끝까지 잃지 않는다.

5_지역영화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위한 씨앗

(CG 효과를 일부 활용했지만) 특수효과 처리보다는 설정의 힘에 기반을 두고 영화는 전개된다. 이건 사실 기본의 기본 같지만 장르 영화에서 근래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단편의 경우 장편처럼 기승전결 완벽한 정합적 구조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단편 역시 자체의 문법이 있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은 오히려 더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장르 영화’라는 개념이 오독되면서 이야기의 알맹이 대신 형식적 장르 문법이 반복되고 그 기술적 구현이 영화 완성도로 인정받는 모순적인 상황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천국의 문>은 지역에선 희소하게 시도하는 장르라는 점만으로 독자적 위상을 획득하지만, 독립단편영화들에서 흔하게 보이는 관성적 접근과는 궤를 달리하는 장르 영화에 대한 접근태도로는 전국적으로도 의식될 만한 시도라고 조금 응원을 보태서 언급하려 한다.

영화 완성까지는 곡절도 좀 있었다. 본래 2019년 연말 대구영화학교 1기 수료 작품으로 다른 3편과 함께 <천국의 문>은 완성된 형태로 등장했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미완성판으로 공개되었고 이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근 1년이 지나 재편집본이 지역 내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되었다. 새로 공개된 버전은 후반 4~5분이 더 추가되어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1년여가 지나 작품이 늦깎이로 영화제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편집구성은 두 번째 버전과 기본적으로 같지만, 군더더기를 덜어내 러닝타임은 처음 버전의 분량과 흡사하게 완성되었다. 그렇게 사연을 담은 작품은 이제 공식적으로 공개를 기다리는 중이다.

감독은 전작 <테이프의 비밀>부터 지역영화에선 드물게 공포 장르에 천착하는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작품들에서 텅 빈 회의실이나 대학 캠퍼스 민속촌을 이 세계 공간으로 변모시켜 버리는 솜씨를 선보인 감독이 이후 지역을 배경으로 현실 소재와 장르 문법을 결합한 후속 작업을 계속 선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작품정보>

천국의 문 Heaven’s Door
2021 | 미스터리 | 27’50”
감독 김규태
주연 손승택(용배), 송아경(귀부인), 이준상(성태)
출연 소우진(산신), 김현빈(경호원1), 김길범(경호원2), 윤진(목소리)
프로듀서 윤진
각본/편집/미술 김규태
촬영장은우
녹음/DI 전상진
음향안호성
배급 호우주의보

2022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