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청바지를 보내면 가방을 만들어 드립니다”

‘철학과 멋을 함께’ 기시히 대표 김승희 디자이너
온라인 커뮤니티 글 하나로 전국적 관심 얻어
원단 100% 청바지로 제작, 부자재도 폐플라스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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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승희에게 만나자고 한 건 순전히 가방이 예뻐서였다. 김승희가 디자이너이자 대표로 있는 브랜드 ‘기시히’의 가방은 ‘청바지를 업사이클링한 가방 치고 예쁘다’가 아닌, 데일리백으로 손색없으면서 디자이너의 감각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건 김승희의 원칙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업사이클링 제품은 디자인, 실용성, 가격 등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지만 환경을 위해서 구매하라고 홍보한다. 김승희는 ‘업사이클링이라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 서구에 위치한 기시히의 작업실. 이 공간에서 가방을 만들고 홈페이지 관리도 하며 ,직접 가방 제작 수업을 열기도 한다.

기시히는 ‘청바지를 보내주시면 가방을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운영 중인 패션 브랜드다. 김승희 대표 이름의 지음을 따서 ‘기시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김승희 대표는 고등학생 때부터 청바지를 분해해 가방 만드는 작업을 했다. 가방디자인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그런 과는 없었다. 당시 미술학원 선생님이 계명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를 추천했고, 재봉틀 수업이 있단 이유로 그대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입학 초, OT에 직접 만든 가방을 매고 갔던 신입생 김승희는 그대로 교수님에게 찍혀 버렸다. “우회적으로 창업을 권하던 교수님 덕분에 대학생 때 이미 학내 창업보육센터에 평당 1만 원짜리 작업실을 얻어서 창업을 했어요. 그때 이미 친구들과 농담처럼 말하던 ‘기시히’ 브랜드 이름은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옷가게 아르바이트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고민을 했죠”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고집도 그때 형성됐다. SPA브랜드 아르바이트를 해보니 버려지는 옷이 너무 많았다. 유행에 따라 구매한 옷은 대부분 한 철이 지나면 버려졌다. 그 옷을 만드는 공장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인건비가 싼 국가에 있다는 문제도 보였다. 낮은 임금을 지불하고 생산된 상품을 저렴하게 사기 때문에 쓰레기는 계속해서 늘었다.

2020년 하반기, 직접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시히의 작업실은 김 대표의 집 근처 3분 거리에 있다. 리스크를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온라인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크게 불편한 점도 없다.

▲패션잡지 얼루어코리아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을 주제로 찍은 화보. 기시히의 상품이 메인이 됐다. (사진=기시히 인스타그램)

온라인 커뮤니티 글 하나로 전국적 관심 얻어
원단 100% 청바지로 제작, 부자재도 폐플라스틱으로

대구의 기시히가 전국적인 관심을 얻게 된 건 작년 3월이다. 재정적으로 너무 힘들어 브랜드를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시즌이었다. 청바지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개되고, 네이버 포스트에 인터뷰 기사가 올라가면서 100명이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2,000명까지 급증했다. (2022년 6월 현재 기준 팔로워 수는 7,200여 명이다) 동시에 맞춤 제작의 주문도 예약창을 닫아야 할 정도로 폭증했다.

“처음엔 ‘이게 뭐지?’하고 얼떨떨했어요. 환경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던 시기이기도 했죠. ‘업사이클링 제품인데 촌스럽지 않고 세련됐다’는 디자인적인 요소 때문에 주문하는 소비자도 많았어요. 맞춤 제작 주문을 받고, 만들어 놓은 제품을 판매하기도 해요. 청바지 자투리로 만든 리유저블 컵홀더와 파우치, 손행주 같은 제품도 판매하고 있어요.”

기시히는 업사이클링에 꽤 진지하다. 가방 제작에 사용되는 원단 100%를 청바지를 뜯어서 제작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요한 플라스틱 부자재나 남는 자투리 천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바닥보강재는 폐PE를 찾아서 사용하며, D링·플라스틱 개고리·조리개 같은 부자재도 플라스틱 굿즈 브랜드 ‘노플라스틱선데이’와 협업해 제작하고 있다.

가방 제작 후 남은 자투리천은 전시회에 전시될 큰 공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자투리 끈을 모두 이어서 큰 원형 공, 혹은 삼각형 공으로 만들 계획이다. “엄청나게 큰 쓰레기 공을 본 사람들이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작품 제목을 패션 플랫폼 브랜드 이름으로 지을까 고민 중인데 소송이 걱정되긴 해요(웃음).”

▲사무실 한 가운데 있는 자투리 모음. 자투리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도 가방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김승희 대표에겐 중요한 작업이다.

일일이 손으로 가방을 뜯어서 이어 붙여 가방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익이 많이 나진 않는다. ‘0’에 수렴하던 수익이 작년을 기점으로 많이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하루 12~14시간 작업량만큼의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다. “장기적으론 B2C를 넘어서 B2B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 중이에요. 지구가 병들고 있는데, 지금의 빠르게 사고 버리는 패션 구조가 얼마나 갈까요. 패션 기업들도 제대로 된 가치에 돈을 쓰는 소비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거에요”

직접 기시히를 찾아 가방을 만들 수도 있다. 의외로 직접 재봉틀을 돌려 가방을 만드는 수업의 반응이 좋다. 수업 소개 페이지는 ‘직접 생산에 참여해봄으로써 SPA 브랜드의 기둥을 자처하는, 한 달 꼬박 재봉틀을 돌려야 월급 10만 원 받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떠올리며 재봉틀을 돌려 봅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업사이클링이야말로 소비가 아닌 경험이 중요해요. 업사이클링을 직접 하면서 내가 소비한 것들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보는 시간을 갖고, 앞으로의 소비 습관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수업을 만들었어요. 맞춤 제작과 비용은 비슷하지만 직접 만들기 위해 오는 손님이 의외로 있어요. 서울에서 오는 분들이 80% 이상이에요. 개인적으론 수업을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안 오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철학이 있는 상품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제품이 집 앞에 도착하는 시대에 기시히는 귀찮고 어려운 소비를 적극 권장한다. 기시히가 궁금한 이들에겐 홈페이지에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제작 수업인 ‘기시히 만나기’부터 김승희가 직접 제작한 한글 폰트, 저예산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가방 디자인 툴 ‘시히네 가방 부띠끄’, 군데군데 숨어 있는 김승희의 업사이클링에 대한 고민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의 ‘주접’을 구경할 수 있다.

기시히 홈페이지의 ‘기시히 소개글’ 상단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기시히는 업사이클링을 위해 청바지를 뜯어 가방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아니라, 원래 업사이클링과 상관없이 청바지 뜯어서 가방 만드는 브랜드인데 우연히 업사이클링이 유행하는 시대에 사는 것뿐입니다’. 업사이클링 제품까지도 넘쳐 나는 과소비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정의일지 모른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