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행복의 얼굴 ‘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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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음부터 행복하다고 말하기보단 슬프고 힘든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의 불행에 견줘, 나는 다행이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보잘것 없는 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이가 있으니 당신의 형편은 그나마 낫다고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딱히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서도 현재의 순간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해인 수녀가 말했다. “살아갈수록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새롭게 감사하는 일에서부터 행복이 시작된다.”

tvN 주말극 <우리들의 블루스>가 12일 종영했다. 시청률은 전국 가구 기준 평균 14.6%, 최고 17.3%를 기록했다.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다. 최종화에서 ‘살아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는 캐치프레이즈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이 땅에 괴롭고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주연과 조연은 따로 없다. 옴니버스 드라마라서 에피소드에 따라 등장인물은 주연 또는 조연이 되거나 단역이 된다. 이는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에피소드별로 크고 작은 역할을 맡던 인물들은 함께 엔딩을 장식한다. 드라마 인물들의 사연은 다양한 사랑을 둘러싼 행복을 그린다.

평생 엄마를 원망하며 동시에 그리워하던 트럭만물상, 우울증에 갇혀 있던 여성,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기러기아빠, 가난을 벗어나려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생선장수,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를 둔 것을 마음의 짐으로 삼는 해녀, 바다 같은 사랑을 보여준 순정파 선장, 아들과 남처럼 지냈던 시한부, 하나 남은 아들을 잃을 뻔했던 초로의 해녀, 절친한 친구에게 상처 입었던 중년 여성,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순대국밥 사장, 보란 듯 딸을 잘 키워보고 싶었던 얼음장수, 원수 아버지들 사이 사랑을 키운 딸과 아들, 동생이 그리울 때마다 그림을 그린 다운증후군 언니, 제주에 갑자기 떨궈진 해녀의 손녀까지 제주 푸릉마을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들의 각양각색 고단한 삶은 마을 안팎을 돌고 돈다.

은희(이정은)는 제주 푸릉마을에서 억척스럽게 살고 있는 생선 장수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은희는 마침내 부자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생선을 내다판다. 기러기 아빠 한수(차승원)는 은행 지점장이 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딸의 골프 유학 뒷바라지 때문에 은희를 이용하려는 한수와 다르게, 은희는 첫사랑을 30년 만에 마주하며 설렌다.

얼음장수 호식(최영준)과 순대국밥가게 사장 인권(박지환)은 앙숙이다. 건달로 살던 삶을 후회하는 인권도 도박에 빠졌던 호식도 시장 상인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이유는 아들과 딸 때문이다. 호식의 딸 영주(노윤서)와 인권의 아들 현(현성)은 사랑에 빠져 임신한다.

자유분방한 영옥(한지민)은 늘 사람들 사이를 겉돈다. 세상의 시선에 상처받은 탓이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쌍둥이 언니 영희(정은혜)를 숨기던 영옥은 정준(김우빈)이 흔들림 없는 사랑을 증명해내자,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해녀 춘희(고두심)는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잃을 위기다. 스스로 ‘더러운 팔자’라며 한탄한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손녀 은기(기소유)는 달 백 개에 소원을 빈다.

우울증을 앓는 선아(신민아)는 아이를 전 남편에게 빼앗길 처지다. 고향 제주로 돌아와서 동네 오빠 동석(이병헌)을 만난다. 동석은 자신을 외면한 선아를 보듬는다. 동석은 엄마 옥동(김혜자)과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낸다. 아들이 평생에 걸쳐 엄마를 원망하기 때문이다. 말기 암을 선고받은 옥동에게 동석은 모질게 대한 엄마에게 사과를 받아낼 심산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를 놓고 위안을 받았다는 감상평이 많다.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꼭 나 같아서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고 주변의 누군가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저 멀리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찾아야 함을 다시 묵상해보면 어떨까? 이해인 수녀가 쓴 시를 나직이 읊어보시라.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행복은 천 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어디에 숨어 있다
고운 날개 달고
살짝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행복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레임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

– 행복의 얼굴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